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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설 은 무인도 생존 이야기입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무인도에 난파했고, 여기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처음에 그들은 간신히 먹거리들을 얻고, 초라한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하지만 점차 도구들과 무기들과 주거지를 발전시키고, 초라한 보금자리는 작은 마을로 성장합니다. 비록 몇몇 사람이 사는 마을일 뿐이나, 생존자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서 작은 문명을 일구었습니다. 이렇게 문명을 일구는 소설들은 많습니다. 는 제일 대표적인 작품이겠죠. 하지만 은 그저 무인도에서 작은 마을을 만드는 상황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이성과 과학, 논리, 진보를 향하는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전망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감성이고, 생존자들은..
흔히 사이언스 픽션은 공상 과학으로 번역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공상 과학이 올바른 용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공상은 논리적이지 않은,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SF 소설을 '사변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고, 적어도 사이언스 픽션에서 핵심은 공상이 아니라 '상상 과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가 앞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부터 지식인들까지, 다들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거리끼지 않고 사용합니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SF 소설들을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허버트 웰즈나 쥘 베른이나 조지 오웰을 대충 읽고, 블록버스터 영화들이나 비디오 게임들만 보고, 대충 사..
펄프 사이언스 픽션에서 비니키 여자들을 구경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적어도 펄프 SF 잡지들은 아슬아슬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표지 그림으로 내세웠죠. 이유는 뻔합니다. 성적 환상을 꿈꾸는 남정네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죠. 온갖 우주 활극들은 남자들이 활약하는 전투적인 놀이터이고, 따라서 남자들이 꿈꾸는 성적 환상 역시 포함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른바 펄프 SF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 정말 펄프 SF 소설들이 성적 환상들을 질펀하게 떡칠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표지 그림들만 요란할지 모르죠. 하지만 앙가슴과 허벅지를 자랑하는 여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표지 그림을 장식하지 않았을 겁니다. 펄프 SF 소설에서 비단 성적 환상만 문제까요. 인종 차별 역시 심각한 문제일 테고, 전통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을 비..
수많은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강조합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 좋은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은 무엇을 뜻할까요? 아마 사람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떠올릴 겁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지키는 것. 양쪽을 똑같이 저울질하고 똑같이 비판하는 것. 사람들은 이런 자세를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좌파와 우파를 똑같이 비판하고,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좌파에 속하고 좌파를 두둔한다면, 이건 객관적이지 않고 당파적인 것처럼 보이죠. 저는 이런 시각이 꽤나 지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는 태도가 공정하다는 시각이..
전쟁이 없는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마 누군가는 그게 공상이라고 주장할 겁니다. 네, 그래서 SF 작가들은 정말 전쟁이 없는 세상을 묘사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공상 과학이 아니라 상상 과학이나, 어쨌든 SF 작가들은 전쟁이 없는 설정을 구상했어요. 방법들은 다양합니다. 어떤 작가는 인류 문명을 다시 시작합니다. 대재앙이 인류 문명을 덮치고, 찬란한 첨단 문명은 멸망합니다. 사람들은 과학 기술들을 잃고 고대나 중세 수준으로 돌아가요. 하지만 진짜 고대나 중세와 달리, 이 '새로운 중세'에는 노예나 하인이 없습니다. 귀족이나 왕족 역시 없습니다. 새로운 중세 사람들은 첨단 문명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 지배 계급이 없는 문명을 이룩합니다. 지배 계급이 없기 때문에 소소한 갈등들은 벌어질지 모르나..
가끔 저는 '빼앗긴 자들'이라는 소설 제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은 사회주의 공동체(무정부적인 노동 조합주의)를 묘사하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 아나레스 사람들은 소유하려는 욕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자기 중심적이라거나 소유적이라는 말은 모욕이 됩니다. 아나레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기 중심적으로 굴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은 서로 욕할 때, 소유주의자라고 욕해요. 따라서 저는 이 소설에게 '빼앗긴 자들'보다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소설 내용에 어울려요. 어쨌든 아나레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하지 않습니다. 서로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기 때문에 사적인 소유를 최대한 멀리할 수 있죠. 그게 과연 바..
"나는 부분적으로 오도니안입니다. 노동 조합주의자이고, 자유주의자이기도 하죠. 우리는 주체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 노동 조합과 함께 일하지만, 중앙 집권에는 반대해요." "너 같은 자유주의자들이란 마음이 물렁해서 실제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이지. 자유주의는 현실에서 잘 작동하는 중이지. 자유주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긴 시간 동안 가혹한 노동을 한 후에야 겨우 미약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지. 나디아, 지구는 완벽한 자유주의 세상이야. 그곳의 절반은 지금도 굶주리는 곳이야. 그렇게 자유로운 곳이지." 위의 두 대사는 소설 과 에서 나왔습니다. 전자는 이고, 후자는 입니다. 에서 주인공은 어느 노동 조합주의자와 만나고, 그 사람은 자신을 조합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라고 소개합니다. 에서 다양한 과학자들은 화성에서..
마법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아마 검마 판타지에 익숙한 사람들은 불덩어리를 날리고 로브를 입은 신비로운 사람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가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가 정립한 마법사 역시 마법사라는 표준을 만들었어요. 에서 마법사는 넓은 범위를 공격하거나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마법사를 굉장히 파괴적인 인물로 생각하기 쉽죠.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마법사를 불덩이나 날리는 파괴자로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많은 판타지 소설들에서 마법사는 그런 파괴자보다 현자로 등장합니다. 마법사는 현자입니다. 지성인이죠.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탑에서 꾸준히 역사와 철학과 자연 법칙을 연구합니다. 대륙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군주나 귀족이..
예전에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카를 마르스크가 옳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기술 혁신은 막대한 생산량을 자랑하고, 자본주의를 촉진한다. 언젠가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인류는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따라서 분배는 넘칠 것이다. 그때 당연히 인류는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 아마 비단 이 사람만 그런 논리를 펼치지 않을 겁니다. 예전부터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은 이런 기술적 유토피아를 예상했습니다. 게다가 정보 통신 기술은 이런 기술적 유토피아를 부채질할 수 있어요. 정보 통신 기술은 무형 제품이기 때문에 무한한 공유가 가능하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공유가 사회주의로 가는 계단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정보 통신 혁명과 기..
[외계 식생과 새로운 문명은 공상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공상이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 역시 마찬가지죠.] 비단 우리나라만 그렇지 않으나, 우리나라는 SF 장르를 꽤나 많이 무시합니다. SF 소설을 유치하다고 모욕하거나, SF 소설이 뜬구름만 잡는다고 괄시하거나, SF 영화는 돈을 잘 버는 블록버스터라거나, 기타 등등. 아마 그 중에서 제일 흔하고 기초적인 오해는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일 겁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지식인들마저 공상 과학 소설이라는 용어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SF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공상 과학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습니다. 김보영, 듀나, 박상준, 홍인기, 고장원, 미러 창작 사이트, 알트 SF, 조이 SF…. 이런 작가들이나 비평가들이나 동호회들은 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