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기울어진 운동장과 당파적인 시각 본문
수많은 사람들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강조합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 좋은 말처럼 들립니다. 그렇다면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은 무엇을 뜻할까요? 아마 사람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를 떠올릴 겁니다. 오른쪽과 왼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를 지키는 것. 양쪽을 똑같이 저울질하고 똑같이 비판하는 것. 사람들은 이런 자세를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좌파와 우파를 똑같이 비판하고,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좌파에 속하고 좌파를 두둔한다면, 이건 객관적이지 않고 당파적인 것처럼 보이죠. 저는 이런 시각이 꽤나 지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는 태도가 공정하다는 시각이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좌파와 우파를 똑같이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다들 좌파와 우파를 똑같이 비판하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네, 맞아요. 양쪽을 똑같이 비판하는 태도는 객관적일지 모릅니다. 만약 좌파와 우파가 비슷하게 균형을 맞춘다면, 그런 태도는 객관적이에요.
문제는 인류 역사가 그렇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좌파와 우파는 비슷하게 균형을 맞춘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우파는 압도적인 힘으로 수탈했고, 좌파는 그걸 간신히 막아내곤 했습니다. 심지어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이 봉기하고 귀족들이나 자본가들을 끔찍하게 처형할 때조차 우파가 훨씬 압도적이었습니다. 인류 역사는 온갖 수탈들이 누적된 역사입니다. 거대 문명은 거의 예외가 없이 수탈을 누적했습니다. 거칠고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왕들과 귀족들과 자본가들과 강대국들은 노예들과 소작농들과 임금 노동자들과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학살하고 수탈했습니다.
인류 문명을 6천 년이라고 계산한다면, 그런 역사는 6천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6천 년 동안 노예들과 소작농들과 임금 노동자들과 원주민들은 치열하게 저항했으나, 기득권들은 그들을 번번이 짓밟았어요. 그런 역사는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고,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만 봐도 그렇습니다. 흑인들이나 북미 원주민들이 백인 기득권들에게 제대로 사과와 보상을 받은 적이 있나요? 아니죠. 오히려 인종 차별이나 보호 구역 침범 문제가 심각하죠.
만약 흑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한 위상을 누리고, 북미 원주민들이 백인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그런 상황은 좌파와 우파가 비슷하게 균형을 맞추는 상황이 될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흑인들은 두들겨 맞고, 북미 원주민들은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미국 기득권들은 별로 사과하고 보상할 생각이 없고요. 이런 문제들과 함께 더욱 큰 문제는 자본주의 체계입니다. 생산 수단, 가령, 토지나 하천이나 해안을 소유하는 주체가 누구일까요. 누가 더 많은 땅을 가졌을까요. 누가 더 많은 농장이나 공장이나 어선을 가졌을까요.
재벌 자본가들인가요?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인가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경영진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야기할 수 있나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장이나 공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나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똘똘 뭉친다고 해도 거대 자본들에게 쉽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가난뱅이 농부들은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느라 죽어납니다. 반면, 거대 자본가들은 떵떵거리며 살아가죠. 이런 상황에서 좌파와 우파가 똑같다고 할 수 있나요?
여기에서 시야를 더 넓힐 수 있겠죠.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이 정말 자신들의 공동체를 제대로 만든 적이 있나요? 왜 북미 원주민들은 학살을 당했고, 왜 파리 코뮌은 짓밟혔을까요. 왜 우리나라 동학 운동은 엄청난 살육을 당했을까요. 왜 조선의 지배 계급이 외국의 군사력을 빌려 조선의 피지배 계급을 학살해야 했을까요. 도대체 생산 수단을 소유한 기득권들은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을까요? 어떻게 그들은 생산 수단을 차지했나요? 왜 그들이 생산 수단을 차지해야 했죠? 그들이 생산 수단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몇 천 년 동안의 노예 제도나 식민지 제도는 아무 일도 아닌가요? 자, 정말 좌파와 우파가 똑같나요?
어쩌면 좌파와 우파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좌파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들 소비에트 연방이나 북한을 떠올리겠죠. 소비에트 연방은 분명히 여러 장점들을 내세웠으나, 그렇다고 해도 좌파가 아닌 것을 좌파라고 부르지 못할 겁니다. 좌파와 우파는 바라보는 대상이 서로 다릅니다. 우파가 기득권을 옹호한다면, 좌파는 수탈을 받는 피지배 계급을 옹호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선 시절에 문재인 후보는 나라를 내세운 반면, '심상정 후보는 노동'을 내세웠어요. 저는 정의당이 이 노동이라는 홍보 문구를 내세우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들었습니다. 노동은 무시를 받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의당은 그래야 했습니다. 정의당은 좌파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좌파는 우파에게 전혀 균형을 이루지 못합니다. 언제나 인류 역사에서 우파는 압도적으로 좌파를 짓눌렀습니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모든 것이 우파에게 기울어졌죠. 좌파가 아무 잘못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역사 속의 균형이 언제나 압도적으로 삐뚤어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정말 공정해지고 싶다면, 굉장히 당파적이 되어야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똑바로 맞추고 싶다면, 당연히 무게가 없는 쪽에 서있어야 할 겁니다. 중앙에 서있는다고 해도 기울어진 운동장은 평행을 이루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