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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만 한 장르 소설들 본문

사회주의/형이상학 비판

그저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만 한 장르 소설들

OneTiger 2017. 12. 29. 20:17

펄프 사이언스 픽션에서 비니키 여자들을 구경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적어도 펄프 SF 잡지들은 아슬아슬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표지 그림으로 내세웠죠. 이유는 뻔합니다. 성적 환상을 꿈꾸는 남정네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죠. 온갖 우주 활극들은 남자들이 활약하는 전투적인 놀이터이고, 따라서 남자들이 꿈꾸는 성적 환상 역시 포함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른바 펄프 SF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 정말 펄프 SF 소설들이 성적 환상들을 질펀하게 떡칠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표지 그림들만 요란할지 모르죠.


하지만 앙가슴과 허벅지를 자랑하는 여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표지 그림을 장식하지 않았을 겁니다. 펄프 SF 소설에서 비단 성적 환상만 문제까요. 인종 차별 역시 심각한 문제일 테고, 전통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을 비롯한 장르 소설들은 편견을 드러냈습니다. 잔인하고 야만적인 원주민들은 스페이스 오페라나 검마 판타지에서 아주 유용한 소재가 됩니다. 여전히 온갖 스페이스 오페라들과 검마 판타지들은 원주민들을 신나게 써먹는 중입니다. 예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에라곤> 같은 판타지 소설에서 인간은 오직 유럽 백인입니다. 아무리 우락부락한 종족들이 명예를 중시한다고 해도 그런 종족들은 인간이 아니고 유럽 백인이 아니죠.



그래서 오늘날 정치적 올바름은 장르 창작물에서 간과하지 못할 요소가 됩니다. 만약 요즘 누군가가 <드라큐라> 같은 이야기를 쓴다면, 그 소설은 엄청난 비판을 받을 겁니다. <드라큐라>에서 아브라함 반 헬싱은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멍청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미나가 드라큐라에게 맞서는 이유는 남자처럼 똑똑하기 때문입니다. 남자처럼 똑똑하지 못했기 때문에 루시는 드라큐라에게 감히 맞서지 못했죠. 아마 요즘 장르 소설가가 남자처럼 똑똑한 여자 운운한다면, 어마어마한 혹평들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저는 이런 관념이 더욱 넓게 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성 차별과 인종 차별을 장르 창작계에서 멀리 쫓아내야 합니다. 아예 다시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우리는 그런 차별을 모두 걷어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를 아주 지겹게 취급하나,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장르 창작가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용어를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 차별과 인종 차별은 너무 지배적인 고정 관념이고, 따라서 이것들을 걷어내기는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단어가 지겹나요? 하지만 기득권들이 여자들을 강간하거나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낫겠죠.



문제는 정치적 올바름만 강조하는 행위가 금방 장벽에 부딪힌다는 사실입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누군가를 차별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은 누군가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조건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대기업 명예 회장과 가난한 시골 농민은 모두 먹고 살아야 합니다. 유럽 백인과 남아메리카 원주민은 모두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성애자와 레즈비언과 트랜스잰더 역시 먹고 살아야 합니다.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땅에서 살지 않는 사람이 있나요?


아니, 그런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밥을 먹어야 합니다. 누구나 숨을 쉬어야 합니다. 누구나 땅에서 살아야 합니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땅에서 살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요. 생산 수단이 필요합니다. 밥을 먹고 싶다면,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숨을 쉬고 싶다면, 공장이 공기를 오염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집을 짓고 싶다면, 집터가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농사를 짓고 공장을 짓고 집을 지을 땅이고, 땅은 생산 수단의 일종이죠. 결국 누가 이런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지 따져야 할 겁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정치적 올바름을 부르짖는 사람들조차 이런 사실을 쉽게 간과합니다.



왜 대기업들이 원주민들을 고향땅에서 쫓아낼까요? 왜 대기업들이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에 폐기물들을 흘릴까요? 대기업 회장이 원주민들을 증오하기 때문에? 백인 기업가가 유색 인종들을 혐오하기 때문에? 어쩌면 누군가는 원주민들을 증오할지 모르죠. 하지만 그건 본질적인 이유가 아닙니다. 정말 본질적인 이유는 자본주의 체계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은 언제나 더 많은 자본을 순환하기 때문에 더 많은 자원과 토지를 원합니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이 원주민들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대기업은 원주민들을 고향땅에서 내쫓거나 거기에 폐수를 부어야 합니다.


이런 폭력을 막고 싶다면,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토지와 자원을 소유해야 할 겁니다. 대기업들이 엄청난 토지와 자원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정치적 올바름만 부르짖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만 추구하는 사람들은 독점적인 상황을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주민 여자라고요? 당신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굶어죽어도 우리는 상관하지 않을 거에요. 대기업들이 생산 수단을 차지하는 상황에 우리가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저는 정치적 올바름이 중요하지 않다고 무시할 마음이 없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만 중요시한다면, 여자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성형 수술에 매달리고 원주민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굶어죽을 겁니다. SF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서 여자들이나 원주민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면, 그건 분명히 반가운 변화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합니다.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사람은 생산 수단을 가져야 합니다. 그건 아주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장르 창작물들이 정치적 올바름에만 매달린다면, 그건 아직 갈 길이 멀었다는 반증일 겁니다.  장르 창작물은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면모까지 바라봐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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