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인민이라는 단어와 지배적인 관념 본문
자연 환경을 이야기하는 소설답게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어떤 생태주의 정당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정당 구성원들은 자신들을 생존자 정당이라고 불러요. 이 이름을 정하기 전에 정당 구성원들은 몇몇 다른 이름을 고려했습니다. 그것들 중 'People Party'가 있었죠. 피플 파티. 우리나라 번역본은 이걸 '인간의 정당'이라고 번역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인민당'이 좀 더 올바른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는 People's Party라는 용어를 인민당이라고 부르는 중입니다. 아니면 민중당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이미 우리나라의 좌파 정당들 중 민중당이 존재하고요. 아마 우리나라 번역본이 인민당이라는 용어를 피한 이유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빨갱이 냄새를 심하게 풍기기 때문일 겁니다. 북한 덕분에 남한 사람들은 인민이라는 단어에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그래서 번역자는 일부러 인민 대신 인간이라는 단어를 골랐겠죠. 하지만 저는 남한 사람들이 인민이라는 단어에 심한 거부감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유일무이한 집단이 아니고, 수많은 좌파 단체들 역시 인민이라는 단어를 중시합니다.
어쩌면 남한 사람들이 공산주의나 좌파 그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인민이라는 단어가 미움을 받는지 모르겠습니다. 남한은 세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반공 국가죠. 아마 남한은 미국 정부의 세뇌가 가장 크게 영향력을 끼친 나라들 중 하나일 겁니다. 공산주의는 좌파 사상들 중 가장 주도적인 사상이고, 여전히 좌파와 공산주의는 함께 붙어다니는 중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북한이나 소비에트 연방, 무장 봉기로 이어지고, 그래서 다들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인민이라는 단어 역시 미움을 받죠.
문제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관해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운동권조차 소비에트 연방에서 더 멀리 나가지 않아요. 공산주의가 뭘까요. 공산주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상이고 사회 구조입니다. 저는 이걸 생활 양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자치적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를 이루는 것. 공산주의 정신, 코뮤니즘은 바로 이걸 뜻하죠.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국 공산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블라디미르 레닌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 줘야 한다고 말했고, 마오쩌둥은 인민 공사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마오쩌둥의 인민 공사가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아, 물론 인민 공사는 비참하게 실패했죠. 우리는 숲을 불태우고 자연 환경을 망친 그런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절대 안 될 겁니다. 일반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마오쩌둥은 꽤나 농민 친화적이었고 서구적인 산업화에서 멀어지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인민 공사 역시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체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사정이 워낙 열악했기 때문이겠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마오쩌둥은 잿더미에서 뭔가를 시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인민 공사를 밀어붙였고, 환경 재난과 비참한 실패로 끝났죠. 수많은 사람들은 역시 인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집단이 사악하고 폭력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왜 인민이라는 단어만 욕을 먹어야 할까요. 사실 자본주의는 수직적인 위계 구조를 인민 공사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요.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은 소수 자본가들에게 저항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는 기후 변화 같은 행성적인 재난을 낳았죠. 자본주의는 아예 행성 하나를 망쳤어요. 인민 공사와 달리 풍족한 상황에서 발전했음에도 자본주의는 그런 짓거리를 저질렀죠. 그런 행성적인 대재난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뭔가를 오염시키고 부를 쌓는 것은 쉽습니다. 그게 정말 성공일까요. 오염시키고 부를 쌓는 게 생산력 발전인가요. 인민 공사는 제국주의 침략이 남긴 잿더미에서 시작해야 했습니다. 저는 인민 공사가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민 공사만 비난할 뿐이고, 제국주의를 비판하지 않죠.
인민 공사가 혼자 북치고 장구쳤나요? 아닙니다. 대부분 공산당들은 지배 계급에게 저항하는 반작용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인민 공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국주의가 휩쓴 잿더미에서 인민 공사는 새로 시작해야 했고 숱한 어려움들에 부딪혀야 했습니다. 사실 수많은 공산당들은 그저 고고하게 떠있는 섬이 아니었어요. 지배 계급들이 계속 물어뜯는 상황을 버텨야 했죠. 그래서 공산당들은 폭력을 저질러야 했어요. 이런 폭력은 비단 공산주의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배 계급이 권력을 내놓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약자들은 처참하게 저항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돌치노 파벌 같은 수도사들조차 그랬죠.
하지만 유독 공산주의만 욕을 먹습니다. 아마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사상이기 때문이겠죠. 저는 공산당들이 폭력적이라는 사실을 옹호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정말 공산당들을 비판하고 싶다면, 자본주의 기득권들을 먼저 비판해야 합니다. 하지만 누가 자본주의 기득권들을 비판하나요? 부를 쌓기 위해 자본주의는 어마어마한 환경을 오염시켰으나, 누가 그걸 진짜 반성하나요? 누가 자본주의 너머에서 해답을 찾기 원하나요? 별로 없어요. 사회 구조를 정말 바꾸고 싶다면, 우리는 비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기득권들은 그게 사악한 방법이라고 세뇌하고, 그래서 인민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미움을 받죠. 다들 자본주의 기득권들이 무슨 폭력을 휘둘렀는지 알아볼 마음이 없고, 그래서 죽자 살자 인민이라는 단어만 미워하죠.
게다가 왜 자꾸 인민이라는 단어를 소비에트 연방이나 중국 공산당과 연결해야 할까요. 공산주의가 자치적인 공동체와 공동 생산 및 공동 분배를 뜻한다면, 북미 부족민들이나 태평양 부족민들 역시 공산주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청빈 사상을 주장한 수도사들과 자치 정부를 세운 코뮨 정부들 역시 공산주의가 될 수 있겠죠. 제3세계의 여러 농민 공동체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른바 운동권조차 태평양 부족민들이나 청빈 수도사들이나 파리 코뮌에 관심이 없어요. 사실 인민 공사조차 관심을 받지 못해요. 공산주의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람들 모두 소비에트 연방에만 매달리죠.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은 소비에트 연방의 옵션 취급을 받고요. 왜? 아마 소비에트 연방이 제일 크고 멋지기 때문일 겁니다.
코뮨의 빈민들이나 태평양 부족민들 따위는 폼이 안 나죠. 이는 순진한 망상일지 모르나, 어쩌면 인민 공사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부족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지식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뭐라고 확실히 장담하지 못하겠군요. 어쨌든 저는 인민이라는 단어가 공산주의로 이어지고 공산주의라는 단어가 소비에트 연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인민과 공산주의는 소비에트 연방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하지만 운동권이나 특히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들조차 코뮨 정부나 농민 공동체나 부족 공동체를 주목하지 않아요. 그들이 생태적인 양식을 실천해왔고, 지금도 실천하는 중임에도.
가끔 저는 운동권들조차 제국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크고 멋진 소비에트 연방만 좋아하고, 북미 부족민들이나 파리 코뮌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게다가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심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진보적인 학자들이 한 마디를 떠들면, 다들 그걸 떠받듭니다. 그게 무슨 우주적인 진리라고 떠받들죠. 하지만 정말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관심조차 받지 못합니다. 누가 파리 코뮌에 관심이 있나요? 누가 북미 부족민들에게 관심이 있을까요? 제국주의가 그들을 쓸어버렸으나, 누가 그걸 비판하죠? 지식인들은 민중의 자발성 운운합니다. 하지만 생태적인 민중들이 죽어나가는 사건을 정말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비판하나요?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이 정말 진보적인가요?
하지만 유럽과 미국 군대가 북미 부족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유럽과 미국이 그런 과거를 조금이라도 반성하나요?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그런 과거를 조금이라도 언급하나요? 유럽은 중국과 인도가 탄소를 뿜는다고 욕하나, 자신들이 무슨 짓거리를 저질렀는지 반성하지 않아요. 지식인들이 그런 사안을 이야기하나요? 아, 뭐, 미국이나 유럽, 좋습니다. 나오미 클라인이나 미국 녹색당은 기후 변화가 북반구 강대국들이 제3세계에게 저지르는 폭력이라고 이야기하죠. 왜 그런 의견은 널리 퍼지지 않을까요.
솔직히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화려하고 거대한 뭔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서구적인 근대화를 아주 좋아했고, 유럽 중심적인 사고를 예찬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소비에트 연방 역시 서구적인 근대화에 매진했고, 중국 공산당 역시 거기에 영향을 받았죠. 마오쩌둥 같은 인물은 거기에 반발했으나, 마오쩌둥 역시 위계 질서를 완전히 깨뜨리지 못했고 실패했어요. 여전히 사람들은 서구적인 근대화와 급속한 산업 발전을 핵심적인 과제로 바라봅니다. 그것은 핵심적인 과제가 분명히 맞겠으나, 저는 이런 경로가 자본주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넘어서는 어떤 사상이 필요할지 모르겠어요. 그건 앙드레 고르가 이반 일리치를 사회주의에 덧붙인 이유일 겁니다. 앙드레 고르가 이반 일리치를 참고했다면, 왜 우리가 다른 생활 양식들을 참고하지 말아야 할까요.
제3세계의 여러 공동체들은 참고 사항이 될지 모릅니다. 국가를 타파하기 위해 마오쩌둥은 인민 공사를 만들었습니다. 똑같이 국가를 타파하기 위해 인류학자 클라스트르는 부족민들을 연구했고요. 두 가지를 대조하면 어떨까요. 북미 부족민들이나 태평양 부족민들을 들먹인다면, 그건 성급하거나 낭만적인 사상에 불과할지 몰라요. 하지만 적어도 뭔가를 배우거나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죠. 경제 구조를 적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문화적이거나 사상적인 측면을 적용할 수 있을지 몰라요. <에코토피아 비긴스> 역시 그런 부분을 살짝 언급하죠. 물론 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좌파에게 수많은 영감들을 남겼고 그것들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완전히 부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을 다른 것과 조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코뮨 정부들이나 북미 부족민들이나 농민 공동체들이 아주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시적이거나 현대적이거나 공산주의 집단들은 모순투성이었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들 역시 인간이고, 인간은 불완전한 동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폭력을 비판하고 싶다면, 정말 인민이라는 단어를 비판하고 싶다면, 어떻게 밑바닥 사람들이 제국주의와 지배 계급에게 저항했는지 살펴야 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농민이나 부족민이 무지렁이라고 외면하고, 유럽이나 미국의 학자들만 숭배하죠. 저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저 역시 미국이나 유럽 학자들을 읽고, 미국이나 유럽 SF 소설들을 읽습니다. 하지만 지식인들이 비자본주의적이고 생태적인 삶을 연구할 때, 저 같은 무식쟁이 역시 뭔가 좀 더 공부하지 않겠습니까.
지식인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인민이라는 단어를 미워하고, 누가 인민들을 쓸어버렸는지 이야기하지 않죠. 인터넷 뉴스에 북한이나 중국 기사가 나오면, 다들 열심히 욕설들을 내뱉을 겁니다. 평소에 그런 사람들은 가난한 농민들이나 부족민들이 유럽이나 미국 제국주의에 얼마나 힘겹게 저항했는지 고민할까요. 글쎄요, 저는 꽤나 회의적입니다. <아바타> 같은 영화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현실에서 누가 정말 부족민들의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다들 그저 경제 성장과 급속한 발전과 자본주의를 숭배할 뿐이죠. 정치적 올바름?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부르짖는 사람들 역시 자본주의에 찬성해요.
물론 저는 대부분 사람들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죽어라 공산주의만 비판하는 이유는 이미 자본주의 기득권들이 언론이나 교육을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산주의가 나쁘다고 배운 사람들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근대적인 산업화를 숭배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생태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을까요. 대단히 어려울 겁니다. 운이 좋은 몇몇 사람은 그럴 수 있겠죠. 우연히 좌파적인 환경에서 자랐거나 우연히 불평등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지배적인 관념을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아마 인민이라는 단어는 계속 미움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