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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상상 과학을 힘으로 전환하는 노동 가치 본문

감상, 분류, 규정/생태 사회주의, 에코 페미니즘

상상 과학을 힘으로 전환하는 노동 가치

OneTiger 2017. 11. 5. 19:55

마법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요. 아마 검마 판타지에 익숙한 사람들은 불덩어리를 날리고 로브를 입은 신비로운 사람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던전스 앤 드래곤스>가 사람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던전스 앤 드래곤스>가 정립한 마법사 역시 마법사라는 표준을 만들었어요. <디앤디>에서 마법사는 넓은 범위를 공격하거나 강력한 일격을 날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마법사를 굉장히 파괴적인 인물로 생각하기 쉽죠.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마법사를 불덩이나 날리는 파괴자로 여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많은 판타지 소설들에서 마법사는 그런 파괴자보다 현자로 등장합니다. 마법사는 현자입니다. 지성인이죠.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탑에서 꾸준히 역사와 철학과 자연 법칙을 연구합니다. 대륙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은 군주나 귀족이나 장군에게 귀중한 조언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숨은 인재를 발굴하거나 중요한 물품을 감정하거나 잊혀진 지역을 방문하거나 각종 세력들을 규합할 수 있어요. 이런 연구와 지식과 조언은 불덩이보다 훨씬 중요한 힘입니다. 마법사는 지식이 힘이라는 격언을 증명하죠.



<던전스 앤 드래곤스> 역시 마법사를 저런 지식인이라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디앤디>는 던전 탐험 게임입니다. 게임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만든 모험가들이 던전을 탐험하고, 해골 병사들이나 좀비들을 물리치고, 위험한 함정들을 피하고, 보물들을 발견하기 원합니다. 마법사 역시 이런 탐험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래서 마법사는 사람들에게 현명하게 조언하기보다 해골 병사에게 마법 화살이나 불덩이를 날려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마법사가 뭔가 파괴적이고 신비로운 인물이라고 여깁니다. 탑에서 열심히 고서를 읽고 연구하는 모습 역시 마법사를 구성하나, 좀비들에게 마법 화살이나 불덩이를 날리는 모습 역시 마법사를 구성하죠.


게다가 (테이블 게임이든 비디오 게임이든) 게임들이 널리 영향력을 끼치는 덕분에 마법사라는 인물들은 저런 파괴적인 면모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종종 판타지 게임들은 판타지 소설들을 밀어낼 수 있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마법사는 탑과 고서보다 불덩이와 마법 화살에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있겠죠. 영화 <반지 원정대>가 개봉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왜 간달프가 마법으로 고블린들을 쓸어버리지 않는지 물었어요. 아마 그 사람들은 판타지 게임 속의 마법사를 간달프에게 대입한 듯합니다.



이처럼 판타지 속의 마법사는 현자가 아니라 신비로운 파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마법사라는 인물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이언스 픽션 속의 과학자는 어떨까요. 판타지에 마법이 있다면, 사이언스 픽션에는 (상상) 과학이 있습니다. 판타지에 마법사가 있다면, 사이언스 픽션에는 과학자가 있어요. 마법과 (상상) 과학이 대결한다는 주제는 오랜 떡밥입니다. 폴 앤더슨이나 렌달 가렛이나 로저 젤라즈니나 테리 프래쳇 같은 작가들은 이런 주제를 자신들의 소설 속에 집어넣고요. 장르 소설 독자들이 이런 떡밥을 풀기 시작한다면, 아마 논쟁은 끝없이 이어질 겁니다.


누군가는 마법이 과학보다 더 풍부하다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과학이 마법보다 합리적이라고 말할 테죠. 뭐, 정답은 없을 겁니다. 여기에서 해답을 내리지 못할 테고요. 중요한 점은 그만큼 많은 장르 소설가들과 독자들이 마법과 (상상) 과학을 비슷한 위상으로 취급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과학자가 마법사와 비슷하다고 말해도 그 말은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해요. 그렇다면 대중들의 인식 속에서 마법사가 신비롭고 파괴적인 인물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사이언스 픽션 속의 과학자 역시 신비롭고 파괴적인 인물로 자리를 잡았을까요.



솔직히 저는 사이언스 픽션 속에 '신비롭고 파괴적인 과학자'를 가리키는 유형이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미치광이 과학자가 그것이죠. 메리 셸리는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열어젖혔고, 덕분에 SF 소설은 초기부터 미치광이 과학자를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미치광이 과학자와 파괴적인 마법사는 서로 위상이 다릅니다. 미치광이 과학자는 부정적인 뭔가를 연구하거나 실험하는 인물입니다. 반면, 파괴적인 마법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비로운 폭력을 휘두르는 인물이죠.


마법사는 전장에 직접 나서고 적들을 직접 쓰러뜨리나, 미치광이 과학자는 전장에 나서거나 적들과 직접 싸우지 않아요. 그저 그들이 부정적인 뭔가를 연구하기 때문에 사방에서 사고들이 터질 뿐이죠. 네모 선장이나 시간 여행자나 챌린저 교수처럼 어떤 과학자들은 직접 적들과 싸우나, (미치광이 과학자들을 포함해) 대부분 과학자들은 전장에 직접 나서지 않습니다. 심지어 (테이블 게임이든 비디오 게임이든) 게임 속의 과학자들 역시 전장에서 직접 싸우지 않아요. 마법사는 전투적인 인물이나, 과학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치광이 과학자들은 많으나, 전투적인 과학자는 드뭅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마법과 달리 과학은 그 자체로 힘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과학은 개념과 지식일 뿐이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힘이 아니에요. 마법은 그럴 수 있으나, 과학은 그러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지식을 힘으로 곧장 전환할 수 있어요. 마법사는 마법책을 읽고 곧장 불덩이를 날릴 수 있죠. 하지만 과학은 지식일 뿐입니다. 과학자는 그 지식을 응용해 뭔가를 조작하거나 만들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마법과 과학이 그렇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상 과학 역시 다르지 않고요. 상상 과학은 진짜 과학이 아니라 '과학처럼 보이는 뭔가'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어떻게 바뀔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학은 이렇게 저렇게 발전했습니다. 그걸 바탕으로 사람들은 과학이 이렇게 저렇게 변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어요. 아울러 과학이 변하면 사회 구조와 인식이 변할 거라고 예측할 수 있죠. 물론 그런 예측은 얼마든지 틀릴 수 있으나, 예측한다는 과정은 논리적이죠. 상상 과학은 이런 논리적인 과정을 가리킵니다. 상상 과학은 사변적인 논리 과정입니다. 덕분에 상상 과학은 현실 속의 진짜 과학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상상 과학은 사변적인 논리 과정이나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진짜 과학과 담을 쌓지 못합니다.



그리고 현실 속의 과학은 지식이나 개념 이상이 아닙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 힘이 아닙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론이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으나, 이론은 직접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학자가 이론으로 사물을 조작하고 사람들을 설득할 때, 이론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화학자가 열심히 화학 이론을 떠든다고 해도 손가락에서 불덩이가 날아갈 이유는 없습니다. 화학자가 불덩이를 날리고 싶다면, 누군가가 플라즈마 방사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생물학자가 열심히 유전자 공학을 떠든다고 해도 유전자 조작 생명체가 공중에서 반짝~☆ 나타날 이유는 없습니다.


생물학자가 유전자 조작 생명체를 이용하고 싶다면, 누군가가 그런 생명체를 배양하거나 조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다르죠. 마법사는 마법을 발현하기 위해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조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법은 그 자체로 힘이고, 그래서 마법사가 마법책을 읽고 주문을 외우고 손을 휘저을 때, 불덩이는 마법사의 손가락에서 날아갑니다. 그렇다고 해도 모든 판타지가 이런 설정을 따른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건 그저 전형적이고 대중적인 설정일 뿐입니다. 어떤 판타지 소설에서 마법은 그 자체로 힘이 되지 못할 겁니다. 저는 그런 마법이 (상상) 과학과 별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천하지 않는 이론이 무기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실천과 설득을 통하지 않는 과학은 힘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법사는 즉석에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과학자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과학을 힘으로 발현하고 싶다면, 실천과 설득을 통과해야 합니다. 과학이 복잡하고 큰 힘을 발휘할 잠재성이 있을수록 그런 실천과 설득에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과학이 힘이 되야 한다면, 인간이 직접 노동을 해야 합니다. 크고 복잡한 과학은 더 많은 노동 시간을 요구할 테고, (과학자가 작업하든 노동자가 작업하든) 과학은 노동을 거쳐 힘이 됩니다.


마법은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는 자신의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필요로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탑(연구실)과 고서와 자신의 온전한 몸뚱이만 필요할 뿐입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과학자가 만능 잠수함을 설계한다고 해도 노동자들이 조선소에서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는다면, 그 설계는 진짜 잠수함으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과학은 노동 없이 힘이 되지 못해요. 하지만 마법사는 노동 없이 마법진만 그리고 어마어마하고 거대한 악마를 소환할 수 있을 겁니다. 흠, 어쩌면 수많은 제물들이 필요할지 모르나, 희생양과 노동은 서로 다르죠.



그래서 검마 판타지의 마법사와 달리 사이언스 픽션 속의 과학자들은 전투적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전투를 내세우는 액션 게임들이나 전략 게임들 역시 전투적인 과학자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어쩌면 누군가는 <하프 라이프>의 고든 프리먼이나 <데드 스페이스>의 아이작 클라크를 언급할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고든 프리먼이나 아이작 클라크는 죽은 노동,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만든 과학 설비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고든 프리먼이나 아이작 클라크는 허공에서 플라즈마 소총을 뚝딱 소환하지 않았어요.


<타임 머신>의 시간 여행자는 몰록들과 치열하게 싸운 과학자였으나, 사실 과학 지식 자체는 그 전투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쇠파이프나 휘두를 뿐이었죠. 시간 여행자는 (문명이 무너졌기 때문에) 노동력을 이용하지 못했고, 시간 여행자의 과학 지식은 힘이 되지 않았어요. 네모 선장이나 챌린저 교수가 거대한 가재나 공룡을 처치할 수 있는 이유는 잠수복이나 소총처럼 산업 문명의 죽은 노동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요. 그래서 저는 (현실 속에서든 SF 소설 속에서든) 첨단 구축함을 볼 때마다, 과학 기술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력을 떠올립니다.



SF 소설과 상상 과학에서도 노동 가치설은 중요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상상 과학과 노동이 맺은 관계를 보여주는 소설들 중 하나가 <안드로메다 성운>일지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장거리 항해 우주선을 날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설계해도 허공에서 장거리 우주선이 뚝딱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야 장거리 우주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노동만 아니라 인내와 단결과 설득과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했죠.


만약 과학이 그런 노동과 설득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장거리 항해 우주선은 등장하지 못했을 겁니다. 뭐…. 어쩌면 이런 무수한 노동이나 설득 없이 원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가 올지 모르죠. <듄>이나 <타이거! 타이거!> 같은 소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인류가 초능력을 발달시킨다면, 우리는 노동이나 설득 없이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할지 모릅니다. 음, 어쩌면 정말 인류가 초인으로 각성하는 시기가 올지 모르죠. 누가 미래를 알겠어요. 하지만 그런 시기가 오기 전까지, 아무리 대단한 이론도 노동이나 설득 없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죠.



그래서 마법사들은 손에서 불덩이를 날리고 좀비들을 태울 수 있으나, 과학자들은 외계 괴물을 무찌르는 플라즈마 방사기를 만들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세우지 않는다면, 아무도 플라즈마 방사기를 만들지 못할 테고, 과학자의 설계도는 그저 휴지 조각에 불과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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