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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유토피아 소설과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풍요롭고 평등한 세상을 노래하고, 다른 하나는 비참하고 폭력적인 지옥을 보여줍니다. 흔히 디스토피아가 유토피아의 반대라고 생각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야말로 유토피아의 극단일지 모릅니다. 디스토피아에서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끝나니까요. 물론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문명의 끝을 이야기할 뿐이고, 그 자체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작품에 따라 긍정적인 멸망도 많습니다. 이나 은 분명히 대규모 멸망을 이야기하지만, 그리 부정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건하고 신비롭죠. 반면, 디스토피아는 예외 없이 부정적입니다. 애초에 디스..
을 보면, 온갖 차원의 별별 희한한 존재들이 등장합니다. 작가는 소설 속의 도시를 수많은 존재들이 복잡하게 어울리는 곳으로 설정했습니다. 그 중에 외계 거미(?)도 있는데, 이 거미는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나열합니다. 이 거미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밑도 끝도 없이 웅얼거립니다. 그래서 외계 거미의 대사는 다른 인물들의 대사와 다릅니다. 아니, 그냥 설정만 다르지 않고, 아예 문장 부호와 글자체까지 다릅니다. 다른 인물들은 이야기를 할 때 큰 따옴표("")를 사용하지만, 외계 거미는 말줄임표(……)를 사용합니다. 다른 인물들은 명조체를 사용하지만, 외계 거미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글꼴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평범한 명조체를 사용하지 않아요. 그리고 을 보면, 유전자 개..
소설 시리즈는 내용만큼 독특한 삽화로 유명합니다. 이 소설은 생체 병기와 보행 병기를 소재로 삼았고, 소설의 삽화가 키스 톰슨은 독특한 화풍으로 그런 병기들을 묘사했습니다. 육상 드레드노트의 웅장하고 복잡한 구조, 베헤모스의 기괴하고 흉측한 몸뚱이, 고풍스럽거나 딱딱한 문양과 장식 등이 그러합니다. 화보를 만들어도 좋을 듯한 그림들이죠. 아니, 사실 이라는 화보집이 있군요. 그런데 한 가지 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키스 톰슨은 소설의 주연 함선인 레비아탄을 향유 고래처럼 그렸습니다. 직사각형 머리통은 어디로 보나 분명히 향유 고래입니다. 레비아탄이 실제 향유 고래라는 뜻이 아닙니다. 향유 고래와 그만큼 닮았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레비아탄은 굉장히 빠른 함선입니다. 소설 속의 영국군은 각종 생체 함선들을..
는 청소년 교양 잡지입니다. 이런저런 사회 문제들과 철학을 이야기하는 잡지죠. 이번 4월호의 기사 중 하나는 영화 더군요. 드니 빌뇌브 감독이 테드 창의 소설을 영화화했죠. 해당 기사는 영화를 설명하면서 사이언스 픽션을 함께 이야기하는데…. 사이언스 픽션의 인기 요인을 '보편성'으로 꼽았습니다. 그러니까 사이언스 픽션이 아무리 외계인과 우주와 낯선 시대를 묘사한다고 해도 그 안에 인간들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인기를 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볼 여지가 있겠으나, 저는 왜 사이언스 픽션에서 결국 인간의 이야기를 강조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웹진 알트 SF가 지적했듯 사이언스 픽션은 유일하게 인간 이외의 존재를 이야기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에는 수많은 외계인, 인공지능, 돌연변이 등이 등장합..
[게임 의 한 장면. 이런 외계 생태계는 지구 생태계의 뻥튀기입니다.] 데비앙아트 같은 사이트에서 외계 생명체를 검색하면, 아주 다양한 그림들을 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재미있습니다. 물론 그런 외계 생명체 그림들은 지구 생명체의 과장이나 짬뽕입니다.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아무리 우리가 외계 생명체를 상상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겠죠. 아무도 외계 생명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지구 생명체만을 볼 수 있을 뿐이고, 그걸 바탕으로 외계 생명체를 연상합니다. 우주 생물학자들은 좀 더 과학적으로 상상할 수 있겠으나, 그림 동아리의 회원들은 우주 생물학자가 아니죠. 따라서 화가들은 최대한 상상력을 짜내지만, 기괴한 절지류를 그리거나 파충류와 절지류를 뒤섞거나 두족류를 뻥..
여느 장르처럼 SF 장르는 소설에서 출발했습니다. 그야말로 고전적인 토마스 모어, 초기 작가들인 메리 셸리와 쥘 베른과 허버트 웰즈, 휴고 건즈백과 에드거 앨런 포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등등 SF 계보는 소설 쪽으로 계속 이어졌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SF 분야에서 제일 유명한 상은 휴고나 네뷸러, 로커스일 겁니다. 사람들은 '휴고 수상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소설을 떠올리곤 합니다. 영화나 게임을 떠올릴 수 있겠으나, 그런 사람들보다 소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다른 소설들처럼 SF 소설에는 큰 장벽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언어의 문제입니다. 소설은 텍스트 매체이고, 따라서 글을 모르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영화나 게임은 다릅니다. 영화는 영상과 음향이 있기 때문에 관..
[우주 진출은 장엄합니다. 인류는 평등하게, 함께 우주로 진출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아서 클라크의 단편 소설 전집을 보면, 장대한 우주 항해가 자주 등장합니다. , , 등이 그렇습니다. 모두 인류의 웅장한 우주적 확장을 찬미합니다. 지구는 생명의 보금자리지만, 인류는 지구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달에 정착하고, 화성을 개척하고, 태양계에 각종 식민지를 세우고, 기어코 다른 항성계로 향합니다. 바야흐로 인류는 여기저기에 퍼지고, 더 머나먼 우주로 계속 진출합니다. 아마 SF 독자들이 아서 클라크에게 바라는 장면은 이런 것들이겠죠. 광대한 우주, 인류의 진출, 장엄한 항해, 무한한 확장. 아서 클라크는 겨우 지구에 시선을 두지 않습니다. 이 작가의 시선은 훨씬 먼 곳을 바라봅니다. 만약 이나 ..
SF 작가들은 종종 인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네, 말 그대로 인류 전체가 사라집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외계인이 침입하거나,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거나, 치명적인 전염병이 번지거나, 환경이 급속도로 오염되거나, 기타 등등. 당연히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정적이거나 비관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모든 작가들이 인류 멸망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바라보는 작가도 있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이런 작가들은 인류가 사라지는 대신 좀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할 거라고 설정합니다. 그런 존재들은 사실 인류가 아니겠으나, 인류의 다음 세대이고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죠. 어쨌든 인류 자체는 없어지기 때문에 인류 멸망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어떤 작가들은 수많..
예전에 어떤 팟캐스트를 듣던 중이었습니다. 팟캐스트 진행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몇몇 SF 창작물을 늘어놓는데, 하필 죄다 블록버스터 영화였습니다. 그 중에 소설은 하나도 없었어요. 어차피 그 팟캐스트는 사이언스 픽션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행자가 아주 짧게 언급했을 뿐이지만, 왜 하필 블록버스터 영화들만 늘어놨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진행자는 '블록버스터 영화 =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만으로 SF 장르를 평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죠. 예전에 그런 기사를 봤습니다. 나 가 크게 흥행하자 어떤 기자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
은 플레이어가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온라인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우주 한 켠 어딘가에 검은 모놀리스가 있다고 합니다. 검은 직사각형 구조물이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의 오마쥬입니다. 비디오 게임을 살펴보면, 이런 오마쥬를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는 슈팅 게임입니다. 주인공 기술자는 폐쇄된 우주선에서 각종 외계 괴물과 싸웁니다. 이 주인공이 우주선의 라운지에 도달하면, 어떤 홀로그램이 나타나고 창문으로 우주를 바라봅니다. 이 홀로그램은 "세상에, 별들이 가득하다!"고 감탄합니다. 이것 역시 의 오마쥬입니다. 데이빗 보웬이 별의 관문(스타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저렇게 말했죠. 비단 이런 것만 아니라 리메이크 은 아서 클라크의 문구로 시작합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이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