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SF & 판타지 (1269)
SF 생태주의
SF 소설은 비일상적인 소재들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최첨단 우주선, 인공지능과 로봇, 생체 괴수 병기 등이 주된 소재입니다. 하지만 SF 소설의 표지 그림은 이런 소재를 항상 반영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 시장의 표지 그림을 둘러보면, 소설 내용이랑 별반 상관이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아마 표지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들도 여러 모로 고민이 많을 겁니다. 어떤 하드 SF 소설이 최첨단 우주선을 이야기한다면, 그 소설의 표지를 그리는 삽화가는 그 우주선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작가의 묘사와 달리 엉뚱한 그림을 그리면 곤란하겠죠. 하지만 삽화가는 소설 설정을 자세히 탐구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설정을 표지 그림에 그대로 반영하기 힘들 겁니다. 저는 출판계의 상황을 잘 모르지..
작가들은 종종 자신의 사상을 작품에 집어넣습니다. 수많은 소설들은 그 소설가들의 사상을 반영합니다. 심지어 나 처럼 이게 소설인지 철학 서적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슐라 르 귄은 단편 소설 의 후기에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철학 중에서 무정부주의에 끌리고, 그래서 을 썼다고 말했죠. 르 귄은 이 소설에서 무정부주의를 깊게 탐구하고, 요모조모 뜯어봅니다. 무정부주의 역시 인간의 사상이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르 귄은 인류가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건 그저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르 귄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거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과 연합합니다. 르 귄은 후기에서 을 쓸 때 인칭 대..
은 SF 개론서입니다. 제목처럼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책은 대재앙의 원인에 따라 다양한 SF 작품들을 분류하는데, 1970년대에는 생태학적 재앙 소설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근미래의 생태학적 위기'입니다. 그 이전에도 생태학적 재앙 소설이 없지 않았으나, 1970년대 시점부터 이런 소설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사례로써 시어도어 토마스와 케이트 윌헬름의 , 윌리엄 왓킨스와 진 스나이더의 , 존 브러너의 등을 꼽습니다. 각각 1970년, 1972년에 나온 소설들입니다. 저자는 이런 소설들이 등장한 이유를 국가와 기업 등의 환경 오염으로 꼽는군요. 환경 파괴와 공해, 인구 폭증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고, SF 작가들도 거기에 동참했다는 뜻이겠죠. 사실..
어슐라 르 귄은 에 단편 소설을 실을 때, 작가 이름을 U.K.르 귄으로 썼습니다. 사실 르 귄 본인은 그걸 별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편집부가 여자 작가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어슐라'라는 이름을 숨겼죠. 아마 편집부는 독자들이 여자 작가의 SF 소설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긴 제임스 팁트리처럼 가명을 쓰는 작가도 있었고, 여러 작가들과 독자들은 제임스 팁트리의 성별 정체성을 두고 논란을 벌였죠. 그런 역사를 고려하면, 왜 'U.K.르 귄'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는지 이해할만합니다. 르 귄은 에 소설을 낼 때, 저런 이름을 별 생각 없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이 바뀌었고, 이게 성 차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저런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무조건 '어슐라 르..
[게임 의 한 장면. 이런 풍경은 비경 탐험의 매력을 멋지게 드러냅니다.] 이반 예프레모프는 의 후기에서 자신이 역동성, 활동, 모험에 관심이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예프레모프는 모험 소설에 관심이 많았고, 이야기 속에 역동성과 활동을 집어넣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배경은 충분히 이국적이어야 했고, 인간들을 둘러싼 자연 중에서 뭔가 특이하고 희한한 것들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예프레모프는 여행가이자 학자였기 때문에 이런 자료들을 수집하기가 어렵지 않았죠. 아니, 어쩌면 이런 자료들을 자주 접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탐험이나 활동, 희한한 자연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을 겁니다. 만약 열대 우림을 연구하는 생태학자가 글을 쓴다면, 그 학자는 대도시의 일상을 이야기하기보다 밀림 속의 동식물이나 벌레들의 삶을..
SF 단편 소설들은 강렬합니다. 가끔 단편 소설의 충격이 장편 소설의 장대함을 뛰어넘을 때가 있습니다. 와 과 는 멋진 소설이지만, 은 그런 소설들을 뛰어넘는 충격이 있습니다. 과 과 은 감동적이지만, 때때로 이야말로 정말 뒷통수를 때리는 감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와 와 는 좋은 책이지만, 은 정말…. 왜 필립 딕이 천재 작가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죠. 아시모프와 필립 딕은 단편에 강한 작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편 소설의 자체적인 특성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기나긴 여정을 좋아하고, 그래서 단편 소설보다 장편 소설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각종 단편 소설들은 느닷없이 고정 관념을 깨뜨리거나 오함마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차가운 고드름으로 뇌를 긁는 듯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런 반전..
소설 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빨갱이 SF'(…)입니다. 사회주의 SF 소설은 많지만, 보그다노프는 러시아 혁명에 참가한 볼셰비키 당원이죠. 블라드미르 레닌과도 가까운 사이였고요. 그러니까 은 정말 빨갱이 SF 소설인 셈입니다. 그만큼 고전적인 사상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의 공산주의 화성인들은 개발과 발전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개발과 발전과 확장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소설 속의 화성인들은 유토피아를 이룩했으나 커다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지구인 주인공은 화성인들에게 잠시 물러나라고 조언합니다. 계속 앞으로 나가면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화성인들은 이미 충분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잠시 쉬거나 뒤로 물러나도 하등..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이런 작품을 만든 창작가의 속내가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인터뷰와 후기는 요긴한 참고 자료입니다. 그런 인터뷰나 후기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더 깊게 이해하거나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아차리거나 오해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스타니스와프 렘은 여러 인터뷰에서 가 그저 비유적인 소설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 둘이 서로 다퉜다는 일화가 유명하죠. 작가가 소설에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적거나 편집자나 번역자가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면, 독자는 해당 작품을 한층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겠죠. 독자 자신만의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
[영화 의 한 장면. 미래에도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는 로망은 사라지지 않겠죠.] 소설 에는 토시오라는 우주 승무원이 나옵니다. 항해를 동경하는 소년이죠. 이 소년은 자신이 언제나 항해를 원했다고 생각하고, 한 번은 수상선을 타는 꿈을 꿉니다. 희한하죠. 우주선 승무원이 수상선을 타는 꿈을 꾸다니요. 하지만 우주선과 수상선은 똑같은 배입니다. 사실 SF 창작물을 살펴보면, 우주선과 수상선의 비유를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는 인데버 우주 탐사선이 나오는데, 원래 인데버는 제임스 쿡 선장의 탐사선이죠. 소설 속의 우주 탐사대 대장은 자신을 제임스 쿡과 비교하고요. 를 보면, 사람들은 메이플라워 우주선을 타고 가니메데로 날아갑니다. 메이플라워는 미국 이주의 첫 발을 장식한 배입니다. 가니메데 개척자들을 항..
[이런 드루이드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드 엘프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크게 거리가 있습니다.] 검마 판타지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종족들은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죠. 가령, 사람들은 드워프를 보고 든든한 방패 전사와 노련한 기술자를 떠올립니다. 드워프들은 판금 갑옷과 철벽 방패를 두르고, 적의 공격을 단단하게 막아냅니다. 아니면 깊고 깊은 광산 속에서 다양한 금속들을 채굴하고 증기 기관들을 작동시킵니다. 드워프는 검마 판타지에 증기 기관을 도입할 수 있는 유용한 종족이죠. 호비트는 유쾌하고 발랄하고 호기심이 많습니다. 호비트를 보고 단단한 판금 전사와 능숙한 공학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호비트는 뛰어난 도적이나 쾌활한 음유 시인이 될 수 있고, 행복한 정원사나 농부가 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