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실천하고 행동하는 인간 소설가들 본문
작가들은 종종 자신의 사상을 작품에 집어넣습니다. 수많은 소설들은 그 소설가들의 사상을 반영합니다. 심지어 <구토>나 <유리알 유희>처럼 이게 소설인지 철학 서적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슐라 르 귄은 단편 소설 <혁명 전날>의 후기에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철학 중에서 무정부주의에 끌리고, 그래서 <빼앗긴 자들>을 썼다고 말했죠. 르 귄은 이 소설에서 무정부주의를 깊게 탐구하고, 요모조모 뜯어봅니다. 무정부주의 역시 인간의 사상이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르 귄은 인류가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건 그저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르 귄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거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과 연합합니다. 르 귄은 <샘레이의 목걸이> 후기에서 <어둠의 왼손>을 쓸 때 인칭 대명사를 잘못 서술했기 때문에 동료 페미니스트들에게 욕을 먹었다고 고백했죠. 이렇듯 소설은 작가의 실천적 운동과 깊은 연관을 맺습니다.
저는 저런 작가들의 실천을 볼 때마다 과연 기계 소설가는 실천적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자문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인공지능은 발전을 거듭했고, 이제 소설까지 쓸 수 있습니다. 아마 미래에는 기계 소설가가 반드시 등장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계 소설가들은 통속적인 인간 소설가들의 자리를 모두 차지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기계들이 비주류적이거나 반골적인 사상을 논할 수 있을까요. 킴 스탠리 로빈슨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착취하고 생태계 환경을 오염시킨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작가입니다. 과연 기계 소설가가 주류적인 자본주의를 대놓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어쩌면 뉴로맨서처럼 정말 혁신적인 인공지능이 탄생할 수 있겠죠. 그런 인공지능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를 지지할지 모르죠. 그 인공지능의 소설은 사회주의 소설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인공지능이 등장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모프가 자기 소설들에서 강조했듯 기계는 인간의 하인일 뿐입니다. 기계가 기득권들의 심리를 거스를 수 있을까요. 기계가 시위에 참여하고 집회에 나가고 당당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외칠 수 있을까요. 저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아마 기계 소설가들이 대거 등장해도 우리는 인간 소설가가 필요할 겁니다. 이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 멸종되는 야생 동물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인간 소설가가 필요하겠죠. 그런 소설가들은 소설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싸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