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단편 소설의 강렬함 본문
SF 단편 소설들은 강렬합니다. 가끔 단편 소설의 충격이 장편 소설의 장대함을 뛰어넘을 때가 있습니다. <네메시스>와 <파운데이션>과 <강철 도시>는 멋진 소설이지만, <최후의 질문>은 그런 소설들을 뛰어넘는 충격이 있습니다.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과 <빼앗긴 자들>과 <어둠의 왼손>은 감동적이지만, 때때로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뒷통수를 때리는 감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을 꿈꾸는가>와 <닥터 블러드머니>와 <시간의 미로>는 좋은 책이지만, <사기꾼 로봇>은 정말…. 왜 필립 딕이 천재 작가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죠. 아시모프와 필립 딕은 단편에 강한 작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편 소설의 자체적인 특성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기나긴 여정을 좋아하고, 그래서 단편 소설보다 장편 소설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각종 단편 소설들은 느닷없이 고정 관념을 깨뜨리거나 오함마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차가운 고드름으로 뇌를 긁는 듯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런 반전 덕분에 단편 소설을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단편 소설들의 강점은 짧고 강한 여운입니다. 장편 소설처럼 이것저것 늘어놓지 못하고, 그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뇌리에 남기려고 합니다. 기나긴 여정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굵고 짧은 인상이라도 확실히 남겨야 하겠죠. 그래서 여러 단편 소설들은 막판 반전을 찍기 위해 애씁니다. 모든 단편 소설들이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유명한 단편 소설들은 특유의 반전으로 유명합니다. 비단 SF 소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겠죠.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모파상의 <목걸이>는 이런 반전을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소설이죠. 당연히 SF 소설들도 일반 주류 문학처럼 단편 소설의 반전을 놓치지 않아요. 하지만 SF 소설은 그 자체로서 고정 관념을 타파하고 인식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습니다. SF 소설은 거의 유일하게 인간 이외의 존재를 표현하는 문학이기 때문에 고정 관념 타파는 SF 소설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SF 소설의 특성과 단편 소설의 특성이 만났을 때, SF 단편 소설은 엄청난 시너지를 내뿜을 수 있겠죠.
그래서 SF 단편 소설들은 때때로 잊지 못할 충격을 마음 속에 남깁니다. 단편 소설은 짧은 분량을 극복하기 위해 강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SF 소설은 인간과 지구와 현재의 시각을 벗어나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합치면, 그야말로 온 세상이 돌아버릴 듯한 반전을 맛보게 되죠. (개인적으로 이런 필력이 가장 강한 작가는 역시 필립 딕이 아닌가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