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SF 소설의 표지 그림들 본문
SF 소설은 비일상적인 소재들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최첨단 우주선, 인공지능과 로봇, 생체 괴수 병기 등이 주된 소재입니다. 하지만 SF 소설의 표지 그림은 이런 소재를 항상 반영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 시장의 표지 그림을 둘러보면, 소설 내용이랑 별반 상관이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아마 표지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들도 여러 모로 고민이 많을 겁니다. 어떤 하드 SF 소설이 최첨단 우주선을 이야기한다면, 그 소설의 표지를 그리는 삽화가는 그 우주선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작가의 묘사와 달리 엉뚱한 그림을 그리면 곤란하겠죠. 하지만 삽화가는 소설 설정을 자세히 탐구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설정을 표지 그림에 그대로 반영하기 힘들 겁니다. 저는 출판계의 상황을 잘 모르지만, 아서 코난 도일과 시드니 파젯 같은 관계는 상당히 드물겠죠. 때때로 SF 소설마다 설정을 달리 해석합니다. <듄>의 표지 그림에는 모래벌레가 자주 나오지만, 모래벌레의 모양은 각 출판사마다 서로 다르게 생겼습니다.
종종 표지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거나 추상적인 상징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쪽이 훨씬 편하겠죠. 괜히 삽화가에게 비싼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인쇄 비용도 아낄 테고, 소설 설정을 반영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고…. 하지만 이런 소설 표지 그림을 볼 때마다 좀 섭섭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최첨단 우주선이 외계 행성으로 항해하지만, 소설 표지에 그냥 추상적인 별 하나만 덜렁 떠있으면…. 물론 소설은 텍스트 매체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표지 그림이 썰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그런 점에서 <라마와의 랑데부>는 표지 그림의 선례를 보여줍니다. 출판사마다 그림이 다르지만, 어떤 출판사는 라마 우주선의 압도적인 내부 경관을 그려놨습니다. 그야말로 표지 그림 하나로 소설 한 권을 설명한다고 할까요. 뭐,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이런 표지 그림이야말로 SF 소설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주류 문학에서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논리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아마 출판사들도 저렇게 멋진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하기 원할 것 같습니다. 저는 출판사 관계자가 아니지만, 출판사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싶습니다. 멋진 그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멋진 표지 그림은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쇄 비용이나 삽화가의 비용이나 그런 것들이 문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