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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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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유토피아

피조물들, 로봇과 개조 동물의 유토피아

OneTiger 2017. 4. 8. 20:00

SF 작가들은 종종 인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네, 말 그대로 인류 전체가 사라집니다. 이유는 다양합니다. 외계인이 침입하거나,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거나, 치명적인 전염병이 번지거나, 환경이 급속도로 오염되거나, 기타 등등. 당연히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동정적이거나 비관적이어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모든 작가들이 인류 멸망을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냥 덤덤하게 바라보는 작가도 있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이런 작가들은 인류가 사라지는 대신 좀 더 나은 존재로 진화할 거라고 설정합니다. 그런 존재들은 사실 인류가 아니겠으나, 인류의 다음 세대이고 좀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죠. 어쨌든 인류 자체는 없어지기 때문에 인류 멸망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어떤 작가들은 수많은 생물들이 그랬듯 인류도 진화 과정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수많은 생물들이 사라진 것처럼 인류 역시 영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우리 인류만 이 지구에서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게다가 인류가 사라지면, 각종 전쟁과 오염과 착취도 함께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작가들도 있고요.


문제는 우리의 또 다른 동반자입니다. 여러 SF 소설에서 인류는 혼자 살아가지 않습니다. 인류는 또 다른 지성체를 만듭니다. 그건 특이점을 지난 인공지능이거나 개조된 동물일 수 있습니다. 가령, 아이작 아시모프는 다양한 로봇들과 인공지능들을 창시했습니다. 데이빗 브린은 똑똑한 개조 돌고래와 개조 침팬지를 선보였죠. 아니, 이미 19세기부터 <프랑켄슈타인>이나 <미래의 이브>는 인조 인간을 말했고, <모로 박사의 섬>이나 <시리우스>는 개조 동물을 보여줬죠. 만약 우리가 정말 이런 로봇이나 개조 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면? 만약 우리가 사라진다면, 저런 로봇이나 개조 동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겁니다. 결국 로봇과 개조 동물은 인류의 피조물이고, 창조주가 사라진다면 피조물 또한 사라지겠죠. 하지만 SF 작가들은 인류만 사라진 세상을 설정하고, 인류의 피조물들이 인류 이후 시대를 살아가도록 이야기하곤 합니다. 로봇과 개조 동물은 인간 못지않게 파괴적이고 착취적인 세계를 만들 수 있으나, 한편으로 좀 더 나은 세상을 이룩할지 몰라요. 아이작 아시모프도 그렇고, 클리포드 시맥도 그렇고, 그런 방식의 유토피아를 썼죠.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지만, 그 건설자들은 인류가 아닙니다. 인류의 피조물이죠. 흠, 뭐, 인류가 개조 동물을 만들고, 그 개조 동물이 유토피아를 이룩한다면, 인류는 유토피아를 '간접적으로' 이룩한 셈이 될까요.


저런 유토피아를 보면, 비록 행복한 세상이 등장했으나, 씁쓸하고 비관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런 소설들은 인류에게 기대를 걸 수 없기 때문에 인류의 피조물에게 기대를 겁니다. 인류가 하지 못한 것들을 인류의 피조물들, 로봇과 개조 동물이 이룩합니다. 이런 소설에서 인류는 그야말로 자기 피조물만도 못한 존재가 되죠. 서글픈 일입니다. 뭐, 우리가 정말 특이점 인공지능이나 똑똑한 개조 동물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류가 기술적 특이점을 반드시 지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똑똑한 개조 동물을 만들지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피조물을 만든다면, 우리는 그 피조물을 보기 부끄럽지 않도록 세상도 함께 바꿔야 할 겁니다. 착취나 오염이 없는 세상 말이죠. 혹시 누가 압니까. 우리가 좋은 세상을 만들고 사라진다면, 로봇이나 개조 동물이 "인간들은 그래도 평등한 세상을 이룩했다."고 기억해줄지 모르죠. 적어도 피조물한테 욕을 얻어먹는 창조주는 되지 말아야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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