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만능 생산력 본문
소설 <붉은 별>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빨갱이 SF'(…)입니다. 사회주의 SF 소설은 많지만, 보그다노프는 러시아 혁명에 참가한 볼셰비키 당원이죠. 블라드미르 레닌과도 가까운 사이였고요. 그러니까 <붉은 별>은 정말 빨갱이 SF 소설인 셈입니다. 그만큼 고전적인 사상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의 공산주의 화성인들은 개발과 발전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개발과 발전과 확장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소설 속의 화성인들은 유토피아를 이룩했으나 커다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지구인 주인공은 화성인들에게 잠시 물러나라고 조언합니다. 계속 앞으로 나가면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화성인들은 이미 충분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잠시 쉬거나 뒤로 물러나도 하등 잘못될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그런 조언을 물리칩니다. 그들은 진보와 개발만을 진리로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 멈출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소설 속에서 흐지부지 끝나고, 소설 자체가 뭔가 좀 시원하지 않다는 느낌을 풍깁니다.
소설의 재미를 떠나서, 고전적인 공산주의는 진보와 발전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부터 자본가들의 업적을 침이 마르도록 찬양했으니까요. 아, 물론 생산력 증대는 중요합니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고 생산량이 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겠어요. 흔히 공산주의를 '모두가 평등하게 가난해지는 사상'으로 오해하지만, 그건 정말 심각한 오해죠. 엥겔스 같은 사람은 자본주의 산업의 막대한 생산량을 좋아했고, '모두가 평등하게 부유해지는 사상'을 꿈꿨습니다. 현실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내전과 시장 개방과 기타 문제가 겹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가난해 보일 뿐이죠. 여하튼 생산력 증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고 막대한 동물들을 죽일 만큼 생산량이 늘어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요. 이미 생산량이 충분하다면, 기를 쓰고 개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개발 그 자체는 목표가 아닙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목표죠. 하지만 고전적인 공산주의는 생산량 증대에 심취한 나머지 본질을 혼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건 똑같이 빨갱이 SF 소설인 예프레모프의 <안드로메다 성운>에도 나오는 문제입니다. 상어를 죽이고, 아나콘다를 멸종시키고, 문어의 씨를 말리고…. 그게 인간의 승리이고 진보이고 발전이라고 생각하죠. 글쎄요, 그런 생각은 생물 다양성을 없애고 결국 인류의 다양성마저 해칠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게 자본주의와 뭐가 다르겠어요. 왕년의 공산주의 사상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런 부분을 좀 다시 고민했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