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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아마 누구나 어렸을 적에 인상적으로 읽은 책들이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책들 중 하나가 과 입니다. 이 글에서는 을 이야기하고 싶군요. 에드워드 에반스가 쓴 소설이죠. 저는 그걸 이른바 'SF 세계 명작' 시리즈를 통해 접했습니다. 지금은 저 책들을 구하기 어렵고, 직지 프로젝트를 통해 볼 수 있죠. 은 일종의 우주 탐험 소설입니다. 청소년 소설처럼 보이고, 내용은 간단합니다. 우주 항해가 일반화된 시대, 어느 가족이 우주선을 타고 탐사를 떠납니다. 이들은 새로운 행성을 발견하고, 그 행성에 자신들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만약 이 가족이 행성을 탐사하고 흔적을 남기면, 정부는 그걸 인정하고 보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조로울 것 같은 여정은 사고에 부딪히고, 이 가족은 여러 갈등..
[게임 의 한 장면. 문자 그대로 이건 생물학보다 생태학에 어울리겠죠.] 소설 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자 주인공은 생물학자입니다. 사실 생물학자는 이 소설 시리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일 겁니다. 과 에서 생물학자는 주인공이 아니나, 주인공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죠. 소설 3부작이 전반적으로 생물학자를 이야기한다고 봐도 될 겁니다. 작가 제프 밴더미어가 생물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마 생물학자가 울창한 야생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겁니다. 공룡 소설에 고생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울창한 야생을 탐험하는 소설에는 생물학자가 제격일 겁니다. 만약 소설 속에 공룡이 등장한다면, 작가는 그 공룡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등장인물을 배치해야 할 겁니다. 독자들은 그 등장인물을 통해 공룡들에 ..
[공룡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공룡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아득하고 신비롭고 재미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SF 작가들은 공룡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기지개를 한창 폈을 때, 이미 아서 코난 도일이 를 썼죠. 이 소설은 초기 SF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고, 덕분에 SF 소설이 초기부터 공룡을 이야기했음을 보여줍니다. SF 작가들에게 공룡은 여러 모로 매력적인 소재일 겁니다. 일단 공룡은 거대합니다. 뭐, 수많은 공룡들은 닭보다 크지 않았다고 하나, 분명히 집채만한 동물들이 존재했습니다. 알로사우루스는 몇 톤짜리 육식동물이었고,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아주 거대한 초식동물이었죠. 이른바 현대 문명인은 그런 동물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고래나 고래상어를 볼 수 있으나,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육지..
[이런 같은 비경 탐험 이야기들은 실존 탐험가들에게서 비롯했을 겁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SF 소설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외계인, 인공 지능, 돌연변이, 기타 등등 수많은 미지들과 SF 소설 속에서 조우합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죠. 미지가 인간에게 찾아오거나 인간이 미지를 찾아가거나.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거나 방문한다면, 미지가 인간에게 찾아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외계 행성에서 기이한 생명체를 만난다면, 인간이 미지를 찾아갔다고 할 수 있겠죠. 흠, 만약 인간이 지구에서 의도하지 않게 차원문을 열고, 외계인들이 그 차원으로 나왔다면, 이건 어떤 방법일까요. 미지가 인간에게 찾아왔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이런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인간이 미지를 ..
제프 밴더미어의 는 서던 리치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 에 이은 세 번째 소설이고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소설이죠. 에서 12차 탐사대는 X 구역이라는 원시적이고 기이한 야생을 떠돌아 다닙니다. 은 누가 탐사대를 조직했고 왜 탐사대를 그 기이한 야생 지역으로 보냈는지 설명합니다. 물론 아무리 이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도 모든 의문이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문은 더욱 높이 쌓입니다. 는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그 모든 것들을 망라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뭔가를 제시하는 대신 전작의 여러 인물들을 불러옵니다. 에서 주인공은 생물학자였습니다. 에서 주인공은 신임 국장이었습니다. 반면, 에서 특정한 주인공은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전 소설들의 여러 인물들이 번갈아 등장하고,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
[영화 에 나오는 노틸러스. 바다의 시미터. 고증은 다소 어설프나, 모양은 독특합니다.] 흔한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 함대를 해군 체계처럼 구성하곤 합니다. 함재기, 고속정, 호위함, 구축함, 순양함, 전함, 모함 등이 우주 함대를 이루죠. 때때로 우주 고속정이나 구축함은 '어뢰'를 쏩니다. 우주의 발사체를 그저 미사일이라고 부르지 않고 어뢰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게 뭔가 해군다운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우주 함대가 해군의 체계를 모방한다고 해도 '잠수함'이라는 이름을 우주선에 붙일 수 없을 겁니다. 잠수함의 주된 역할은 말 그대로 잠수이지만, 우주에서 잠수할 수 없기 때문이죠. 아무리 우주가 또 다른 바다처럼 보여도 우주는 바다처럼 수중과 수면으로 나뉘지 않아요. 따라서..
소설 은 서던 리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입니다. 이야기는 전작에서 이어지고, 여전히 X 구역의 비밀을 다루죠. 전작 에서 12차 탐사대는 X 구역의 적막한 자연 환경을 떠돌았습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기이하고 고요하고 인적이 없는 분위기와 거대하고 낯선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된 듯한 느낌일 겁니다. 그래서 주인공 생물학자는 바위투성이 해안가에서, 사람들이 없는 뒷골목에서, X 구역의 공허한 자연 속에서 뭔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을 겁니다. 복잡하고 산만하고 빽빽하고 시끄러운 현대 문명인에게 저런 해안가와 뒷골목과 자연은 꽤나 낯선 공간으로 다가오고, 은 그런 느낌을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지와 무지를 이어가는 여정 또한 매력적입니다. 이 소설은 명확한..
SF 소설들은 비일상적인 요소를 다루곤 합니다. 당연히 이런 현상들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겁니다. 만약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거나 갑자기 돌연변이 괴물들이 인류를 습격하거나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한다면, 거기에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수많은 SF 소설들은 (상상 과학이라는 이름답게) 그런 이유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애씁니다. 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났는지, 왜 돌연변이 괴물들이 탄생했는지, 왜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하는지…. 하지만 모든 SF 소설들이 그런 해명에 충실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소설들은 논리와 합리를 최대한 강조하지만, 어떤 소설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이런 소설들은 설정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그저 전문 용어 몇 가지를 나열..
[인류 문명에게 울창한 숲들은 위험하고 적대적이고 낯설고 어둡고… 신비롭습니다.] 소설 은 말 그대로 숲이 주된 무대입니다. 어딘지 신비롭고 위험하고 야생적인 태고의 숲입니다. 어찌 보면,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가인 로버트 홀드스톡이 다른 배경도 아니고 하필 숲을 고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시 문명과 대착점에 서있는 장소니까요. 현대적인 도시와 반대되는 곳이 무성한 숲이고, 그래서 강렬한 원시성을 잉태할 수 있죠. 사실 작중에 나오는 거대한 원시림이 아니라 뒷산만 올라가봐도 숲이 얼마나 음험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온통 가려서 빛이 안 들어옵니다. 주변은 컴컴하고, 빽빽한 줄기 때문에 시야가 멀리까지 닿지 않죠. 어떤 인류학자는 인간이 본래 평원에서 살던 동물이라 ..
만약 21세기 현대인이 몇 만 년 전의 인류를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격세지감을 느낄 겁니다. 그 시절, 인류는 육식동물들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질병이 퍼져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죠. 식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었고, 그들은 어떻게 지진이나 해일이나 폭설을 해석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과거 인류는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을 몰랐고,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현대 문명은 전혀 다릅니다. 인류는 이제 육식동물을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식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몰렸습니다. 질병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인류는 천연두 같은 질병을 지구에서 추방했습니다. 인류는 자연 재해를 분석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생산량이 넘쳐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