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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실존 탐험가와 SF 비경 탐험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실존 탐험가와 SF 비경 탐험

OneTiger 2017. 8. 1. 20:00

[이런 <잃어버린 세계> 같은 비경 탐험 이야기들은 실존 탐험가들에게서 비롯했을 겁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SF 소설의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외계인, 인공 지능, 돌연변이, 기타 등등 수많은 미지들과 SF 소설 속에서 조우합니다. 미지와의 조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나뉘죠. 미지가 인간에게 찾아오거나 인간이 미지를 찾아가거나. 만약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거나 방문한다면, 미지가 인간에게 찾아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외계 행성에서 기이한 생명체를 만난다면, 인간이 미지를 찾아갔다고 할 수 있겠죠.


흠, 만약 인간이 지구에서 의도하지 않게 차원문을 열고, 외계인들이 그 차원으로 나왔다면, 이건 어떤 방법일까요. 미지가 인간에게 찾아왔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이런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인간이 미지를 찾아가는 방법이 더 좋습니다. 저는 미지가 우리의 일상에 침투하는 것보다 우리가 미지 그 자체에 몸을 던지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저는 인류가 머나먼 세계를 찾아가고 그 세계를 만끽하고 지구적인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바랍니다. 그런 비인간적인 방법이 훨씬 사이언스 픽션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반드시 외계 행성에 나가야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인류가 어떤 기이한 생명체를 찾고 싶다면, 지구 어딘가를 뒤져도 충분할 겁니다. 사실 많은 SF 소설은 인류가 지구 구석구석을 아직 모른다고 가정합니다. 극지방의 두꺼운 얼음 밑에, 사막의 모래 언덕 속에, 울창한 밀림 속에, 깊고 깊은 바닷속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존재나 문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수많은 SF 소설들은 그런 상황을 가정하고, 인류는 미지를 찾기 위해 극지방과 사막과 밀림과 해저로 떠납니다. 그런 탐사대는 또 다른 문명과 교류하거나 아직 인류가 알지 못하는 동물을 찾을지 모르죠.


대부분 비경 탐험 소설들은 이런 내용입니다. 인류가 아직 알지 못하는 지구 어딘가에서 인류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문명이나 생명체와 만나는 것. 그렇다면 20세기 이전의 여러 탐험가들 역시 비경 탐험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알렉산더 훔볼트나 알프레드 월리스 같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비경 탐험을 떠났습니다. 그 당시 유럽인들은 다른 세계의 식생을 잘 몰랐고, 훔볼트나 월리스는 그런 식생을 연구했죠. 따라서 그 당시 유럽인들은 이런 탐험가들을 SF 소설의 주인공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사고 방식은 위험할지 모릅니다. 제국주의 사고로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유럽 탐험가는 남아메리카 밀림을 '발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탐험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자와 발견을 당하는 자의 관계를 설정하는 게 꽤나 중요하죠. 발견하는 자(대부분 유럽)가 발견을 당하는 자(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동남 아시아)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이 끼어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20세기 이전의 유럽인들은 탐험가들이 비경 탐험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 탐험가들은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식생을 연구했고,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SF 소설이 되지 못하지만, 형식적인 측면은 꽤나 비슷합니다.


만약 어떤 SF 작가가 훔볼트나 월리스의 탐험에 과학적인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그 이야기는 엄연히 SF 비경 탐험물이 될 겁니다. 만약 밀림을 탐험하는 도중 알프레드 월리스가 20m짜리 대형 파충류를 발견했다면? 월리스가 그 파충류에게 쫓기고 온갖 고생을 겪었으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했다면? 이런 발상은 SF 소설 쪽에서 꽤나 흔합니다. <잃어버린 세계>에 실존 탐험가를 집어넣는다면, 딱 그런 이야기가 나오겠죠.



그래서 저는 훔볼트나 월리스의 탐험기를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비경 탐험물 같은 느낌을 풍기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세계>나 <지구 속 여행>을 읽는 것도 좋고, <테러 호의 악몽>이나 <소멸의 땅>을 읽는 것도 좋습니다. <콩: 해골섬> 같은 영화를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만큼 저런 탐험기를 읽는 것도 좋습니다. 탐험기는 SF 비경 탐험물 같은 감수성을 간직했습니다. 물론 진짜 탐험기와 SF 탐험 소설이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SF 소설은 비인간적인 전복을 노리고, 그건 비경 탐험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탐험기들과 달리 SF 비경 탐험 소설은 주류에서 벗어나는 세계를 보여주고 고정 관념을 깨뜨립니다. 진짜 탐험기들 역시 문명에서 벗어나는 감수성을 전달하지만, 그런 감수성을 SF 소설의 전복과 비교하지 못하겠죠. 어쨌든 저런 탐험기들을 읽을 때마다 이 세상에 (오직 인간만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감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그런 다양성은 SF 소설의 고정 관념 탈피만큼 대단하지 않으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런 점에서 SF 소설과 탐험기는 비슷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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