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공룡이라는 미지를 찾아가는 탐험 이야기 본문
[공룡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공룡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아득하고 신비롭고 재미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SF 작가들은 공룡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기지개를 한창 폈을 때, 이미 아서 코난 도일이 <잃어버린 세계>를 썼죠. 이 소설은 초기 SF 작품으로 자주 언급되고, 덕분에 SF 소설이 초기부터 공룡을 이야기했음을 보여줍니다. SF 작가들에게 공룡은 여러 모로 매력적인 소재일 겁니다. 일단 공룡은 거대합니다. 뭐, 수많은 공룡들은 닭보다 크지 않았다고 하나, 분명히 집채만한 동물들이 존재했습니다. 알로사우루스는 몇 톤짜리 육식동물이었고,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아주 거대한 초식동물이었죠.
이른바 현대 문명인은 그런 동물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바다에서 고래나 고래상어를 볼 수 있으나,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육지에서 보는 것과 바다에서 고래상어를 보는 것은 다른 느낌이겠죠. 바다 악어 같은 동물은 우리와 함께 홀로세 현재를 살아가나, 바다 악어는 알로사우루스처럼 역동적이지 않아요. 게다가 (현생 조류를 제외하고) 아무도 공룡을 본 적이 없기 공룡은 꽤나 비일상적입니다. 이 동물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요. SF 작가들은 상상력에 멋진 날개를 붙여줄 수 있고요.
게다가 현생 조류를 제외하고 다른 공룡들은 사라졌습니다. 고생물학자들은 (조류가 여전히 날갯짓하기 때문에) 아직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고 말하나, 스테고사우루스를 동경하는 아이에게 그런 설명이 먹힐 이유가 없겠죠. 문제는 왜 공룡들이 멸종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유력한 학설이 존재하고, 학계는 그 학설을 인정하는 듯하나, 그래도 몇몇 의심은 남아있습니다. 음모론에 빠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몇몇 의심을 이용할 수 있고, 그건 좋은 소재가 되겠죠.
왜 공룡이 멸종했는가? SF 작가들은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 다양한 상상력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외계인들이 공격했다거나, 사실 공룡들은 (어딘가에서) 여전히 살아있다거나, 누군가가 공룡들을 생체 병기로 이용했다거나, 우리가 모르는 자연 재해가 공룡들을 덮쳤다거나, 기타 등등. 공룡들은 그 존재와 멸종 모두 매력적인 수수께끼이고, SF 작가들은 여기에 팍팍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공룡 SF 소설들은 많고 많을 겁니다. 게다가 독자들 역시 공룡을 좋아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룡 팬들은 공룡 SF 소설들을 놓치지 못하겠죠.
공룡은 미지입니다. 여느 SF 소설들이 그렇듯 인류가 미지를 만나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인간이 미지에게 가거나, 미지가 인간에게 오거나. 만약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공룡을 합성한다면, 그건 '미지가 인간에게 오는' 유형일 겁니다. 만약 탐험가들이 남아메리카 밀림 속에서 스테고사우루스와 만난다면, 그건 '인간이 미지에게 찾아가는' 유형이겠죠. 두 가지 방법 중에서 저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듭니다. 저는 인간이 미지를 향해 찾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비단 공룡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저는 다양한 소설들 속에서 인간이 미지를 향해 찾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백경>처럼 포경선이 어마어마한 향유고래를 찾아가든, <광기의 산맥>처럼 극지 탐사대가 외계 고대 유적을 찾아가든, <라마와의 랑데부>처럼 우주 탐사대가 초거대 우주선을 찾아가든…. 이런 이야기 유형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공룡을 합성하는 이야기보다 탐험가들이 열대 밀림 속에서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나는 이야기가 더 좋습니다. 그리고 공룡 SF 소설들을 전반적으로 둘러보면, 탐험가들이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나는 종류의 이야기들이 더 많은 듯합니다.
물론 저는 저런 이야기들(인간이 미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들)이 훨씬 많다고 절대적으로 장담하지 못합니다. 저는 이 세상에 있는 공룡 소설들을 모두 읽지 못했고, 절대 그러지 못하겠죠. 하지만 인터넷 서점 등에서 공룡 소설들을 훑어보면, 탐험가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인류가 미지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제가 단단히 착각하거나 오해했을지 몰라요. 공룡이 인간에게 찾아오는 이야기가 더 많을지 모르죠. 음, 어쨌든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한다면, 인류가 공룡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쥬라기 공원> 같은 소설도 인류가 공룡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 과학자들은 공룡을 합성했으나, 결국 이슬라 누블라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고립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쥬라기 공원>은 비경 탐험 소설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죠. 속편 <잃어버린 세계>는 더욱 그렇고요. 공룡 소설들이 미지를 찾아가는 인류를 더 많이 묘사하는 이유는…. 그만큼 공룡들이 아득히 멀리 떨어진 존재들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들은 이미 사라졌고,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야 하는, 아련한 존재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