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소멸의 땅>, 생물학자와 생태학자 본문
[게임 <타이토 에콜로지>의 한 장면. 문자 그대로 이건 생물학보다 생태학에 어울리겠죠.]
소설 <소멸의 땅>에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자 주인공은 생물학자입니다. 사실 생물학자는 이 소설 시리즈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일 겁니다. <경계 기관>과 <빛의 세계>에서 생물학자는 주인공이 아니나, 주인공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죠. 소설 3부작이 전반적으로 생물학자를 이야기한다고 봐도 될 겁니다. 작가 제프 밴더미어가 생물학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아마 생물학자가 울창한 야생과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겁니다. 공룡 소설에 고생물학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울창한 야생을 탐험하는 소설에는 생물학자가 제격일 겁니다.
만약 소설 속에 공룡이 등장한다면, 작가는 그 공룡들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등장인물을 배치해야 할 겁니다. 독자들은 그 등장인물을 통해 공룡들에 관해 알 수 있겠죠. 소설 속에서 고생물학자는 그런 역할을 맡습니다. <잃어버린 세계>와 <메그>와 <공룡과 춤을> 같은 소설들은 아주 전형적인 고생물학자 주인공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소멸의 땅>에서 생물학자는 비슷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X 구역은 아주 기이한 장소입니다. 문명보다 야생이 훨씬 강한 장소입니다.
야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문명은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기존의 문명들은 모두 사라지고, 점점 더 울창한 숲이 자리잡습니다. 덕분에 다른 야생 동물들도 몰립니다. 심지어 아주 위험한 (아울러 매우 아쉽게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수중 파충류들도 존재합니다. 아마 거대한 바다 악어나 물뱀을 뜻하는지 모르겠군요. 야생 동물들이 득실거리나, 밀렵꾼들은 감히 여기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온갖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기이한 야생이 인간을 집어삼키기 때문에 사람들은 함부로 X 구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만약 밀렵꾼들이 이 기이한 구역으로 들어간다면, 그들은 분명히 여러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겠으나, 쉽게 X 구역을 빠져나오지 못할 겁니다. 그들은 이 압도적이고 위압적인 야생 속에서 헤맬 테고, 끝내 자연 환경과 동화되겠죠. 아무리 노련한 사냥꾼이라도 이 숲에서 제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이런 야생을 대변할 수 있는 등장인물을 배치해야 했고, 그래서 생물학자를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생물학자는 야생에 익숙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생물학자는 맡은 소임을 다합니다. 적막하고 광대한 자연을 한없이 예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등장인물이 생물학자보다… '생태학자'에 더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생물학자와 생태학자는 비슷한 것처럼 보이나, 속성은 좀 더 다릅니다. 생물학자는 이름 그대로 생물을 연구합니다. 반면, 생태학자는 이름 그대로 생태계를 연구합니다. 생물과 생태계는 엄연히 다르죠. 생태계는 복합적인 체계입니다. 수많은 생물들이 구성하는, 순환적이고 상호 작용적인 체계입니다. 생물학자와 생태학자는 모두 생물들을 연구하기 때문에 비슷한 지식을 쌓으나, 서로 목표가 다릅니다. 생물학자가 좀 더 개별적인 부분에 치중한다면, 생태학자는 포괄적인 부분에 치중하죠.
<공룡 오딧세이>라는 책에서 스콧 샘슨은 그걸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해부학자는 비행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수리의 날개를 관찰합니다. 분류학자는 어떻게 수리가 진화했는지 해명하기 위해 왜 두 날개가 생겼는지 분석합니다. 생태학자는 수리가 최고 포식자로서 뭐를 먹고 사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생태학자는 비단 수리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까지 함께 바라봅니다. 이처럼 생태학자들은 살아있는 체계를 점점 더 작은 부분들로 분해하기보다 체계 전체로서 이해하기 원합니다. 생물들은 서로, 또한 환경과도 상호 작용합니다. 생태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이해합니다. 전반적인 흐름과 체계를 연구하죠.
<소멸의 땅>에서 생물학자는 어떻게 등장하나요. 생물학자는 어떤 특정한 생물이나 생명 현상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보다 생물학자는 적막하고 비인간적인 자연 환경 전체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생물학자가 작은 웅덩이에 흠뻑 매료되었을 때, 생물학자는 그저 특정한 동물들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 작은 웅덩이 전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했죠. 생물학자가 해변을 연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생물학자는 특정 생물을 연구했으나, 사실 적막하고 비인간적인 자연 환경 전체를 보기 원했습니다.
심지어 생물학자는 도시에서 그런 감성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한적한 주차장을 찾았습니다. 이 소설에서 생물학자는 그저 생명 현상에만 감탄하지 않습니다. 인간 대신 다른 수많은 생물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인간을 포함하더라도 어쨌든 수많은 생물들이 서로 어울려야 합니다. 그때 생물학자는 감탄할 수 있습니다. 이 인물은 자연계 전체를 바라보고, 그래서 저는 생물학자보다 생태학자가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