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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우주 수수께끼>와 비경 탐험 소설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우주 수수께끼>와 비경 탐험 소설

OneTiger 2017. 10. 5. 20:00

[이런 과학 학습 만화는 비경 탐험이라는 장르 형식을 빌리곤 합니다.]



탐사대가 비경을 떠도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아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인기를 끄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별을 쫓는 사람들> 같은 아동 소설부터 <블라인드사이트> 같은 머리가 아픈 하드 SF 소설까지, SF 소설 속에서 다양한 탐사대들은 다양한 비경들을 누빕니다. 우주선을 타고 광활한 공간과 외계 행성을 누비는 동안 탐사대들은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인식의 지평선을 확대시키죠. 조금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자면, 종종 학습 만화를 볼 때마다 저는 학습 만화들이 비경 탐험과 많이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때때로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학습 만화들은 비경 탐험이나 우주 탐험이라는 형식을 빌리곤 합니다. 백과 사전과 달리 이런 학습 만화들은 내용을 단순히 병렬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탐험이라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주인공 탐사대들은 우주, 심해, 밀림, 사막, 인체 등을 탐험하고, 그 과정에서 과학적 사실들을 밝힙니다. 독자는 탐사대와 함께 다양한 비경들을 탐험하고 동시에 과학적 사실들을 배울 수 있겠죠. 가령, 인체에 관해 설명하는 만화에서, 아이작 아시모프가 <마이크로 결사대>를 쓴 것처럼, 아주 작아진 탐사대는 인체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탐사대가 인체를 누비는 동안, 독자는 해부학이나 생리학을 배울 수 있겠죠.



80~90년대에 유행하던 학습 만화 중에 '유레카 학습과학대백과'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게 아마 일본 과학 만화를 우리나라에 맞게 번역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소재들도 꽤나 다양한데, 그 중 제일 첫째 이야기가 우주입니다. 부제는 <우주 수수께끼>입니다. 이 만화 역시 비경 탐험이라는 형식을 빌렸어요. 그저 딱딱하게 천문학 지식을 나열하지 않아요. 이 만화는 우주를 연구하기 위해 탐사대가 출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학습 만화답게 탐사대는 박사와 소년, 소녀 그리고 이들을 보조할 로봇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박사는 탐사 대장인 할아버지입니다. 겉모습만 봐도 고전적인 박사님 인상이죠.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여자 탐험 대장이나 여자 과학자는 안 나옵니다. 요즘 학습 만화들이 여자 과학자를 보여주는 것과 대조한다면, 참….) 소년은 말썽꾸러기, 개구장이, 먹보, 트러블 메이커입니다. 만화 내용이 딱딱하면, 으레 코믹한 행동으로 분위기를 전환하죠. 소녀는 그런 소년을 제지하며, 이성적이고 차분합니다. (무조건 소년은 활발하고, 무조건 소녀는 차분하죠.) 로봇들도 서로 성향이 정반대고요. 이 탐사대는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를 비롯해 여러 장소들을 둘러보고, 그 와중에 각종 천문학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초적인 수준에서) 연구합니다.



이렇게 4인으로 구성된 탐사대는 책의 소재에 걸맞게 우주로 탐험을 떠납니다. 지구에서 별자리를 관찰하다가 우주 정거장에 놀러가고, 기어이 우주선까지 탑승하죠. 그렇게 기나긴 여정을 떠납니다. 학습 만화에 비경 탐험을 도입한 이유는 아동 독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일 겁니다. 학습 만화는 딱딱한 내용을 열거하기 십상이고,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흡입력이 필요합니다.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등장인물들을 만들고, 그 등장인물들이 직접 우주를 탐사하는 방식이 효율적이겠죠.


아동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연구 대상을 체험한다는 느낌을 받을 테고, 다소 어려운 내용도 흡입력 덕분에 부담이 없이 받아들일 겁니다. 비단 저 학습 만화만 그렇지 않아요. 수많은 학습 만화들이 어린이 탐사대라는 소재를 활용할 만큼, 비경 탐험이라는 형식은 꽤나 잘 먹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우주 수수께끼>가 단순히 어린이 탐사대를 넘어서는 뭔가가 존재한다고 느꼈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감성이 전반에 깔렸습니다. 비경 탐험이 학습 만화를 위한 매개체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자신만의 감성을 풍겼어요.



가령, 작중에 등장하는 우주선이 그렇습니다. 우주 탐사를 나서는 만큼, 당연히 탐사대는 우주선을 타고 떠나기 마련입니다. 이런 우주 탐사선의 디자인은 나름대로 그럴 듯했고, 우주 탐사선이 우주에 진입하거나, 머나먼 성운을 지나는 광경 또한 장대하게 그려졌습니다. 탐사 우주선이 거대한 태양과 화려한 성단, 낯선 외계 행성들을 방문하는 장면들은 어느 정도 비경 탐험의 감수성을 담았습니다. 그저 학습 내용을 알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고, 미지를 탐험하는 감성을 담았어요.


물론 이 만화를 만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우주를 탐험하는 만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멋진 그림들을 집어넣었을 뿐이겠죠. 그런 삽화들은 만화 진행과 하등 연관이 없으나, 만화를 만든 사람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대충 그런 그림들을 집어넣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곳곳에 존재했기 때문에 비경을 탐험한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풍겼습니다. 학습 만화가 아니라 SF 삽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 책 내용보다 그런 그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글에서는 <우주 수수께끼>만 언급했으나, 지구나 심해, 인체, 공룡, 동물 세계를 탐사하는 다른 만화들도 비슷한 감성을 풍겼습니다. 저는 그런 만화들을 읽고, <별을 쫓는 사람들>에서 받았던 감수성과 뭔가 유사한 것을 느꼈습니다. 저런 학습 만화들이 비경 탐험 소설과 똑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비경 탐험이라는 형식을 빌렸다고 해도 학습 만화는 학습 만화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인공 탐사대가 첨단 탐사선을 타고 우주나 심해나 공룡 시대를 누빈다는 이야기 자체가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이런 만화들은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을 풍겼고, 그래서 저는 저런 학습 만화들을 (비경 탐험이라는 측면에서) 꽤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학습 만화들을 읽곤 합니다. 여전히 이런 학습 만화들은 비경 탐험이 풍길 수 있는 어떤 느낌을 간직했습니다. 그게 비록 어린이의 눈높이 수준이라고 해도 저는 그런 감성이 좋더군요. <우주 수수께끼>를 보면, 그런 대사가 나옵니다. 우주를 탐험하는 소년은 "(광활한 우주를 여행했기 때문에) 내 자신이 너무 작아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아서 클라크 소설에 나올만한 감성을 학습 만화에서 표현했죠. 비록 완성도는 크게 떨어지고, 지금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낡았으나, 다시 봐도 비경 탐험의 낭만을 잘 살린 책이더군요. (부록으로 실린 아시모프의 해설문은 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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