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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섬>과 개척자의 비경 탐험 본문

SF & 판타지/비경 탐험

<신비의 섬>과 개척자의 비경 탐험

OneTiger 2017. 10. 13. 20:00

[이런 개척-생존-비경 탐험 이야기의 선조는 소설 <신비의 섬>일지 모르겠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쥘 베른은 여행을 꽤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른은 언젠가 주인공이 세계를 여행하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소망을 품었어요. 저는 이 야사가 사실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쥘 베른은 정말 다양한 여행 이야기를 썼습니다. 쥘 베른은 허버트 웰즈, 휴고 건즈백과 함께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확립한 인물로 알려졌죠. 특히 쥘 베른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이용해 여행 이야기를 자주 썼습니다. 허버트 웰즈와 휴고 건즈백 역시 여행이나 탐험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쥘 베른은 탐험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굳혔어요.


아마 쥘 베른은 그저 우연히 탐험이나 여행 이야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작가 자신이 여행이나 탐험에 애착을 보였고, 그걸 적극적으로 소설 속에 집어넣기 원했죠. <공중의 비극> 같은 소설은 사이언티픽 로망스가 아니나, 쥘 베른이 과학 기술과 탐험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그래서 <기구 타고 5주 간>이나 <15소년 표류기>, <80일 간의 세계 일주> 같은 소설들을 썼겠죠. 여기에 과학적 상상력을 좀 더 집어넣고, <해저 2만리>나 <지구 속 여행>, <지구에서 달까지> 같은 소설을 썼고요. 그리고 이런 상상력은 <신비의 섬>으로 이어졌습니다.



<해저 2만리>나 <지구 속 여행>과 달리 <신비의 섬>은 전형적인 비경 탐험이 아닙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탐험가가 아니에요. 주연 인물들은 인적이 드문 섬에 도착했으나, 그들은 무인도를 탐험하기 위해 문명 세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던 도중 불가피하게 무인도에 착륙했을 뿐이죠. 주연 인물들은 섬을 떠나고 싶었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탈출하기가 불가능했고, 그들은 무인도에서 생애를 보내야 했어요.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주연 인물들은 개척자가 됩니다.


무인도를 둘러보고, 지리를 탐색하고, 자원을 수집하고, 동물상과 식물상을 조사하고, 안전한 집을 만들고, 식량들과 물과 약초들을 채집하고, 기타 등등. 이런 모습은 탐험가와 많이 비슷합니다. 탐험가와 개척자는 공통점들이 많아요. 양쪽 모두 낯선 장소를 떠돌고, 지리를 탐색하고, 동물상과 식물상을 조사하죠. 탐험가와 개척자는 그런 지식들을 배우기 원합니다. 목적은 서로 다릅니다. 탐험가는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나, 개척자는 그런 지식들을 이용해 새로운 정착지를 만들기 원합니다. 탐험가는 학구적이나, 개척자는 지식들을 당장 일상에서 응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탐험가와 개척자가 다르다고 해도 양쪽은 비슷한 면모들을 보입니다. <신비의 섬>에서 주연 인물들이 낯선 자연 환경을 둘러보고 동물상과 식물상을 조사할 때, 그 모습은 탐험가와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탐험가처럼 주연 인물들은 문명 세계에서 완전히 떨어졌습니다. 그건 상당히 중요한 특징이죠. 문명 세계에서 떨어졌다는 사실. 그들은 더 이상 안락한 문명 세계에서 이기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전혀 낯설고 다른 뭔가를 직시해야 합니다. 저는 그게 탐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근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낯선 것들을 직시하는 행위. 문명 세계에서 벗어나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돌아다니는 행위.


<신비의 섬>은 그런 행위를 내포했고, (개척자와 탐험가가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개척자의 일부분은 탐험가라고 할 수 있죠. <신비의 섬>은 비경 탐험이 아니나, 쥘 베른은 탐험이라는 즐거움을 소설 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어요. 물론 <신비의 섬>은 새로운 문명을 일구는 과정입니다. 핵심은 그거죠. 새로운 문명. 하지만 새로운 문명을 이루기 위해 주연 인물들은 우선 개척자가 되어야 했고, 개척자는 탐험가와 비슷한 면모를 보입니다. 개척을 이야기한다면, 탐험을 필수적으로 집어넣어야 할 겁니다.



비단 <신비의 섬>만이 아닙니다. <우주의 개척자> 같은 청소년 소설과 <붉은 화성> 같은 하드한 소설 모두 개척과 탐험을 이야기합니다. <우주의 개척자>나 <붉은 화성>은 전형적인 비경 탐험이 아닙니다. 사실 <우주의 개척자>는 원래 제목이 <우주의 농부>죠. 개척보다 농부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주의 개척자>는 낯선 환경을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이야기하고, 그런 모습은 분명히 탐험과 비슷합니다. <붉은 화성> 역시 앤 클레이본 같은 인물을 이용해 비경 탐험을 이야기합니다. 적막하고 황량한 풍경을 둘러보는 과정은 비경 탐험 그 자체입니다.


소설 속에서 몇몇 과학자는 지리와 지질을 탐구하기 위해 인류가 아직 알지 못하는 외계 행성인 화성을 떠돕니다. 이건 탐험입니다. 그 자체가 탐험이죠. <붉은 화성>은 비경 탐험이 아니나, 비경 탐험이라는 매력을 갖추었습니다. 비경 탐험을 좋아하는 독자는 이런 개척 소설들을 주목할 이유가 있을 겁니다. 비록 진짜 비경 탐험과 거리가 있으나, 이런 개척 소설들 역시 비경 탐험이 내뿜는 감수성을 어느 정도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탐험은 소설에서 핵심적인 부분이 아니나, 분명히 탐험이라는 즐거움을 묘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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