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테러 호의 악몽>과 <광기의 산맥>,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 본문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 양쪽에서 적막하고 혹독한 극지 탐험은 유용한 소재가 됩니다.]
소설 <광기의 산맥>과 <테러 호의 공포>는 모두 극지방 탐사 이야기입니다. (서구의 백인 남자) 탐사대가 극지방을 탐사하는 이야기죠. <광기의 산맥>은 남극을 둘러보고, <테러 호의 공포>는 북극 항로를 개척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여정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광기의 산맥>에서 탐사대는 어떤 기이한 화석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진귀한 생명체들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으나, 모든 비극은 거기에서 비롯했습니다. 탐사대는 명성을 누릴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은 명성 대신 참혹한 광기를 누려야 했어요.
<테러 호의 공포>에서 탐사대는 북극 항로를 파악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리부스와 테러가 출발했으나, 이내 두 탐사선은 얼음에 갇힙니다. 탐사대는 어떻게든 얼음들을 돌파하려고 했으나, 거대하고 압도적인 자연은 탐사대를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식량은 줄어들고, 대원들은 죽어가고, 얼음은 깨지지 않고, 탐사대는 조금씩 희망을 잃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정체 모를 거대한 육식동물이 등장하고, 탐사 대원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대원들은 그게 북극곰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절대 북극곰이 아니었고, 뭔가 다른 것이었어요.
이처럼 두 소설은 극지방 탐사와 기이한 생명체들을 결합했습니다. 저 아득한 극지에는 우리 문명인이 생각하지 못하는 뭔가가 살아가고, 그것들은 우리를 덮치고 갈갈이 찢어버릴 수 있습니다. 극지라는 혹독한 환경은 탐사대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고, 게다가 이상한 생물들까지 탐사대를 죽음으로 몰아가죠. 이처럼 기이한 극지방 탐사를 이야기하는 소설은 비단 <광기의 산맥>과 <테러 호의 공포>만이 아닐 겁니다. 고전적인 <프랑켄슈타인>부터 <아서 고든 핌의 모험>도 그렇고, <거기 누구요?> 같은 소설도 그렇고, 극지방은 여러 장르 소설들 속에 등장할 겁니다.
환경이 워낙 악독하기 때문에, 인류는 그 환경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르 소설 작가들은 극지방을 매력적으로 생각했겠죠. SF 소설들이 어떻게 극지방 탐사를 이야기하는지 나열해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그게 아닙니다. <광기의 산맥>과 <테러 호의 악몽>은 모두 극지방 탐사대와 기이한 생명체를 이야기하나, 서로 장르가 다릅니다. <광기의 산맥>은 우주적 공포 소설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죠. 반면, <테러 호의 악몽>은 판타지의 울타리 안에 들어갈 겁니다.
두 소설 속에서 극지방 탐사대는 기이한 생명체들을 만납니다. 하지만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와 댄 시몬스는 서로 다른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외계인이 지구 생명체들을 창조했다는 설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 인류는 인간이 만물의 왕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인류 이전에 다른 뭔가가 지구에서 문명을 일궜습니다. 우리는 그걸 모르고 자만할 뿐이죠. 외계 생명체들은 이런 어리석은 오만을 산산이 깨부숩니다.
러브크래프트와 달리 댄 시몬스는 북극 원주민들의 설화에서 영감을 빌린 듯합니다. 소설 속에서 탐사대는 이 초자연적이고 장대한 육식동물이 무엇인지 논의하나,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여러 대원들은 이런저런 의견들을 내놓으나, 어느 하나 해답이 아닌 듯합니다. 탐사대가 죽어가는 와중에 이 의문은 전혀 풀리지 않아요. 독자들 역시 과연 이 육식동물이 무엇인지 궁금할 겁니다. 사실 그 수수께끼는 소설의 긴장과 갈등을 이끌죠. 만약 작가가 이 육식동물이 무엇인지 일찍 밝혔다면, 그만큼 긴장이나 갈등이 약해졌을지 모릅니다. 이 글에서도 이 육식동물이 무엇인지 확실히 말하지 못하나, 어쨌든 이 동물은 사이언스 픽션보다 판타지에 가까운 듯합니다.
종종 평론가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을 판타지로 분류합니다. 사실 러브크래프트도 판타지에 관심이 많았고요. 러브크래프트는 온갖 외계 생명체들을 이야기했으나, 전통적인 사이언스 픽션에 그리 관심이 없었을 겁니다. 전형적인 SF 작가가 아니었죠. 하지만 외계 생명체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습니다. <광기의 산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광기의 산맥>은 그런 외계 생명체 소설들 중에서 정점을 찍는 듯합니다.
반면, <테러 호의 공포>는 어디까지나 판타지입니다. 이 소설이 <광기의 산맥>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고 해도 이 소설을 사이언스 픽션에 넣지 못합니다. 아무리 댄 시몬스가 훌륭한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라고 해도 <테러 호의 공포>는 사이언스 픽션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광기의 산맥>과 <테러 호의 공포>는 모두 멋진 극지방 비경 탐험 소설이나, 하나는 사이언스 픽션이고 다른 하나는 판타지죠. 하지만 좀 더 생각한다면, 이런 차이가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두 소설의 분위기나 감수성은 비슷해 보이고, 양쪽 모두 극지방 비경 탐험을 기가 막히게 묘사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관점에서 <테러 호의 악몽>을 <광기의 산맥>과 비교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극지방 비경 탐험이라는 관점에서 양쪽 소설을 비교하기가 좋겠죠. (사실 그 자세하고 분석적인 고증들을 고려한다면, <테러 호의 악몽>을 그저 판타지 소설로만 치부하기 어려워요.)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정체성은 중요하나, 종종 저는 그보다 더욱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