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미지와의 조우 (158)
SF 생태주의
"결론도 없고, 설명도 없고, 해답도 없고…. 누가 그런 소설을 읽나? 왜 그런 갑갑한 소설을 읽지?" SF 세상에는 이런 평가를 받는 소설들이 있을 겁니다. 솔직히 대부분 SF 소설들은 모든 설정에 명쾌한 설명을 붙이지 못해요. (그래서 SF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SF 소설이 황당하다고 비난하죠.) 요란한 사이언스 판타지부터 묵직한 하드 사이언스 픽션까지, SF 소설들에서 설정은 상상의 영역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에서 작가는 온갖 인공 지능, 로봇, 돌연변이 괴물, 개조 생명체, 외계인을 늘어놓을 수 있으나, 어떻게 그런 것들이 작동하거나 살아있는지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작동 원리가 궁금한 독자는 소설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겠죠. 작가가 어떤 인조인간이나 돌연변이 괴물을 제시하면, 독자는..
[게임 의 한 장면. 분명히 이런 외계 식생은 진부한 상상력입니다. 하지만….] 프랑크 쉐칭이 쓴 은 바다와 인류 문명, 환경 오염, 미지와의 조우를 다룬 소설입니다. 갑자기 바다에서 기이한 사건들이 터지고,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이나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마침내 그런 사건들은 인류 전체를 위협하기에 이르러요. 사건들 뒤에 무엇이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실에 조금씩 다가갑니다. 그러는 동안 과학자들은 이런 사건들이 우연적인 사고가 아니라 계획적인 공격이라는 확신을 느끼죠. 과학자들은 인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다른 존재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이 지구에 우리 인류만 아니라 다른 지성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요. 아마 그런 시각을 대변하는..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은 숱한 외계 종족들을 선보입니다. 어떤 외계 종족들은 우화에 가깝고, 어떤 외계 종족들은 색깔이 다른 인간에 불과합니다. 사이언스 판타지 작가들은 머나먼 행성에서 무슨 생명체가 진화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아요. 개성적인 외계 종족이 소설에 생동감을 더하기 때문에 그저 여러 종족들을 창작할 뿐이죠. 사이언스 판타지의 외계 종족이 모두 고리타분한 상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러 수작 소설들은 정말 독특하고 기발한 종족들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소 전형적인 종족들 역시 존재합니다. 양서류 종족은 어떨까요. 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우둘투둘한 모습 덕분에 두꺼비 종족은 다소 위협적인 종족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구리 종족은 별로 위협이 되지 못하겠죠. 도롱뇽..
요즘처럼 춥고 눈이 내릴 때, 읽기에 딱 알맞은 소설들이 있습니다. 는 그런 소설들 중 하나일 겁니다. 프랭클린 탐사대를 소재로 삼은 비경 탐험 이야기죠. 프랭클린 탐사대는 북극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영국을 떠났으나, 결국 혹독한 극지방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넜습니다. 영국 해군과 다른 탐사대들은 플랭클린 탐사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사했으나, 프랭클린 탐사대는 의문 속으로 사라졌고, 여전히 난파와 실종 사건은 전말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여러 증거들이 더 많이 나타났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쩌면 전모가 조금 더 밝혀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가혹한 북극에서 사라진 의문의 탐사대는 매력적인 소재이고, 작가 댄 시몬스는 북극 탐사대를 이용해 처절하고 압도적인 탐사 이야기를 펼칩니다. 아니, 는 그저..
SF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일까요. 아니, 비단 SF 소설만 아니라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가 선사하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생물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그 어느 생명체이든, 어쨌든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 속에서 여러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어요. 사실 우리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인간만 이야기하고 인간과 어울리고 인간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인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생명체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얼마든지 다른 생명체들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문명만 떠받들 이유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맛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눈과 코와 귀와 피부와 혀는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뇌는 그런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먹거리를 찾거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 뇌가 인식하는 세상과 다르다면, 우리는 생존하지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존한다는 뜻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이게 완벽한 반증일까요. '통 속의 뇌'는 유명한 사고 실험입니다. SF 소설들 역시 통 속의 뇌를 이용하곤 하죠. 흔한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등장..
얼마 전에 완역본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은 굉장히 유명한 소설이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감독한 영화를 비롯해 여러 매체들에게 영향을 미쳤죠. 하지만 한국에서 이걸 읽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저는 한글로 이 소설을 읽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마침내 이 작품이 나오는군요. 출판사 역시 30년만에 선보이는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소설이라고 홍보합니다. 은 분명히 좋은 작품이나, 저는 의 이야기 구조가 훨씬 더 마음에 들어요. 아마 이 소설이 선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기이한 구역 설정일 겁니다. 예전에 말한 것처럼 기이한 구역 '존'은 문명 내부에 자리잡은 고립된 지역입니다. 기이한 구역은 여러 진귀한 물품들을 품었으나, 아무나 함부로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각종 이상 현상들이 나타나고 괴물들이 설치기..
[이 게임은 러브크래프트 소설 분위기를 잘 살렸으나, 탐사와 고고학보다 전투에 치중합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유명한 장르 소설가입니다. 아니, 이 양반을 그저 유명하다고 부른다면, 그건 너무 빈약한 표현일 겁니다. 아마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없었다면, 현대 장르 창작물들은 절반쯤 살을 빼야 했을 겁니다. 그만큼 러브크래프트는 수많은 장르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로드 던세이니나 아서 매켄 등 다른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나, 우주적 공포라는 장르를 원숙하게 다듬었고, 다양한 이야기 형식들을 고안했죠. 듀나님이 말한 것처럼, 사실 완성도를 따진다면, 아서 매켄이 러브크래프트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우주적 공포라는 장르를 창시하지 않았다고 해..
허버트 웰즈는 우리나라에서 과 , , 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네 소설들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웰즈가 다른 소설들을 썼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듯합니다. 웰즈는 저런 암울하고 기이한 소설들 외에 유토피아 소설이나 비경 탐험 소설에도 손을 댔습니다. 비슷하게 쥘 베른 역시 나 , 같은 소설들 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나 디스토피아 소설을 썼어요. 하지만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만약 어떤 작가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 작가가 쓴 다양한 소설들을 탐구해야 할 겁니다. 특히, 단편 소설들은 양이 꽤나 많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는 참으로 반가운 책입니다. 이 책은 허버트 웰즈가 쓴 여러 단편들과 중편..
[비경은 거대 괴수가 살 수 있는 고향입니다. 그래서 비경 탐험과 거대 괴수는 찰떡 궁합이죠.] "공포에 질린 자, 몸이 얼어붙은 자, 병에 걸려 죽어가는 자가 끝이 보이지 않는 빙원에서 눈 폭풍을 맞으며 걷는다. 오래된 피비린내를 풍기는 녀석의 아가리가 그들의 머리를 집어삼킨다." 소설 은 이런 문구를 뒷표지에 집어넣었습니다. 소설 내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죠. 이 문구는 크게 두 가지 소재를 가리킵니다. 먼저 '공포에 질린 자가 눈 폭풍을 맞으며 걷는다'는 문장은 비경 탐험을 뜻합니다. 소설 속에서 북서항로를 찾기 위해 영국 해군 탐사대는 두 탐사선을 타고 북극을 방문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경로를 선택했고, 그래서 얼음 바다에 갇힙니다. 얼음들은 사방에서 두 탐사선을 옥죄고, 두 탐사선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