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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옥타비아 버틀러의 은 갑갑한 소설입니다. 네, 아주 갑갑하죠. 배경은 19세기 미국 남부 농장이고, 당연히 노예들의 참혹하고 끔찍한 삶이 과감없이 드러납니다. 아, 물론 이 세상에 노예가 나오는 창작물은 많고 많습니다. 은 그런 수많은 소설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아마 이것보다 훨씬 슬프고 처절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넘쳐날 겁니다. 문제는 그런 작품들과 달리 은 시간 여행물,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임 슬립입니다. 주인공은 사실 19세기 사람이 아니라 20세기 사람입니다. 1960년대의 흑인 여자입니다. 아직 인종 차별이 극심하게 남아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흑인이 (공식적으로) 노예처럼 취급을 받지 않았죠. 적어도 (공식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고 피부색은 차별 대상이 아닙니다. 당연히 주인공은 이런 개..
예전에 어떤 팟캐스트를 듣던 중이었습니다. 팟캐스트 진행자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몇몇 SF 창작물을 늘어놓는데, 하필 죄다 블록버스터 영화였습니다. 그 중에 소설은 하나도 없었어요. 어차피 그 팟캐스트는 사이언스 픽션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진행자가 아주 짧게 언급했을 뿐이지만, 왜 하필 블록버스터 영화들만 늘어놨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진행자는 '블록버스터 영화 =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블록버스터 영화만으로 SF 장르를 평가하는 경우가 왕왕 있죠. 예전에 그런 기사를 봤습니다. 나 가 크게 흥행하자 어떤 기자는 우리나라 관객들이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
미세 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스크를 쓴 얼굴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이건 사이언스 픽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일상적인 현실이죠. 심각하고 치명적인 미세 먼지를 지적하는 논문들도 많고, 어떤 연구자는 국제 무역의 수입/수출 과정에서 상당한 먼지가 나온다고 발표했더군요. 칭화대학교의 장즈 치앙은 오염 물질이 수출과 함께 이동하고 엄청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환경 오염들도 마찬가지지만, 환경 오염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중이죠. 덕분에 요즘은 대기 오염 지역에서 누구나 집을 나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곤 합니다. 우리나라 ..
은 플레이어가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온라인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의 우주 한 켠 어딘가에 검은 모놀리스가 있다고 합니다. 검은 직사각형 구조물이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의 오마쥬입니다. 비디오 게임을 살펴보면, 이런 오마쥬를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는 슈팅 게임입니다. 주인공 기술자는 폐쇄된 우주선에서 각종 외계 괴물과 싸웁니다. 이 주인공이 우주선의 라운지에 도달하면, 어떤 홀로그램이 나타나고 창문으로 우주를 바라봅니다. 이 홀로그램은 "세상에, 별들이 가득하다!"고 감탄합니다. 이것 역시 의 오마쥬입니다. 데이빗 보웬이 별의 관문(스타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저렇게 말했죠. 비단 이런 것만 아니라 리메이크 은 아서 클라크의 문구로 시작합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이 우주..
메리 셸리와 허버트 웰즈, 올라프 스태플든, 로버트 스티븐슨 등 초기 SF 소설가들은 이런저런 작품들에서 개조 생명체를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 SF 장르가 개조 생명체를 줄기차게 써먹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개조 생명체는 나중에 거대한 생체 병기까지 발전합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이걸 '바이오 웨폰'이라고 부르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생체 병기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작은 미생물부터 두루미나 왜가리를 거쳐 거대한 고래까지 사는 것처럼 생체 병기도 아주 미세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존재합니다. 만약 어떤 군대가 상대 병사들을 없애기 위해 가상의 바이러스를 만든다면, 이건 생체 병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가장 위험한 생체 병기는 바로 이런 세균전이..
소설 은 화성에 정착하는 개척민들을 이야기합니다. 개척민들 중 일부는 화성에 정착하는 김에 새로운 공동체를 꾸리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지구의 강대국들은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죠. 일부 개척민들은 이를 매우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지구의 강대국들이 남극을 차지하는 것처럼 화성도 차지할 속셈이라고 비판했죠. 안타깝게도 이는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남극은 여러 나라들의 주요 갈등 지역이고, 다들 남극을 차지하기 원합니다. 이미 20세기 초반에 영국이 남극의 영유권을 주장했고 요즘에는 몇몇 남아메리카 국가들이 영유권을 주장합니다. 미국과 러시아도 계속 시선을 거두지 않고, 아마 중국도 자기 몫을 차지하고 싶어하겠죠. 만약 강대국들이 본격적으로 남극을 차지하기 시작한다면, 힘이 약한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위베르 리브스는 프랑스의 천문학자이며 환경 운동가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라는 책이 나왔죠. 책 자체는 가볍고 짧고 읽기 쉽습니다. 하지만 읽기 쉽다고 해서 여기에 담긴 내용이 소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양한 분야를 설명하고, 일반적인 환경 운동에서 벗어나는 내용들까지 이야기합니다. 외계 생물학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롭군요. 하지만 이런 환경 운동가들이 언제나 그렇듯 아쉬운 점이 없지 않습니다. 위베르 리브스는 이 책에서 정당 활동에 참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정당에 참가하면, 당파 싸움 때문에 제대로 운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파 싸움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적대 정당들은 귀를 막을 테고, 결국 환경 운동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정당 활동은 진흙..
소설 에는 꽤나 희한한 우주 비행사가 나옵니다. 이 우주 비행사는 남자인데, 세상의 모든 여자들과 섹스하겠다는 일념을 품었습니다. 이 남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예 대놓고 자신이 수많은 여자들과 섹스할 거라고 다짐합니다. 섹스할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X지'가 전부 자기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소설에 저런 단어가 몇 번씩 직접적으로 나옵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 섹스광이 소설 속의 별난 캐릭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 우주 비행사는 좀 과장된 캐릭터지만, 그래도 '평범한 남자들'의 심리를 반영했습니다. 강간이나 성 희롱은 사이코패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실 보통 남자들도 기회만 된..
은 제임스 팁트리의 소설 모음집의 제목이자 소설 제목입니다. 모두 11개 작품이 실렸고, 대부분 SF 소설에 가깝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크게 1장 '사랑은 운명'과 2장 '운명은 죽음'으로 나뉩니다. 아마 1장에는 존재들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고, 2장에는 그 존재들이 사랑이나 집착 때문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기 때문인가 봅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흥미가 땡기는 작품은 역시 대표 작품인 이었습니다. 도 좋았고, 은 충격적이로군요. 아니, 오히려 이 대표작 보다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는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거대한 서사시를 본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는 괴수물로서도 독특했고 한 인간이 바라보는 종족의 영속성도 그럴 듯했습..
"액션이나 SF 장르가 아닌 고작 드라마 장르의 162분을 졸지 않고 버티기란 얼마나 버거운가." 잡지 에서 어떤 영화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라마 장르의 영화가 세 시간 가량 상영한다면, 그걸 참고 보기 지루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저 말은 뭔가 좀 이상합니다. 드라마 장르를 액션이나 SF 장르와 대조했기 때문입니다. 즉, 액션이나 SF 장르는 신나게 볼 수 있다는 뜻이죠. 사실 액션 영화의 목적은 그겁니다. 흥분, 쾌감, 스릴 등이죠. 하지만 왜 SF 장르가 액션 장르와 함께 묶여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SF 장르가 액션 장르와 똑같나요? SF 장르가 액션 장르처럼 흥분과 쾌감과 스릴을 추구하나요? 물론 SF 장르는 화려하고 현란한 블록버스터 영화로 자주 나옵니다. 같은 초인 영웅 영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