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크기에 따른 생체 병기의 세 종류 본문
메리 셸리와 허버트 웰즈, 올라프 스태플든, 로버트 스티븐슨 등 초기 SF 소설가들은 이런저런 작품들에서 개조 생명체를 이야기했습니다. 따라서 19세기 이후 SF 장르가 개조 생명체를 줄기차게 써먹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개조 생명체는 나중에 거대한 생체 병기까지 발전합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이걸 '바이오 웨폰'이라고 부르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생체 병기의 종류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작은 미생물부터 두루미나 왜가리를 거쳐 거대한 고래까지 사는 것처럼 생체 병기도 아주 미세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존재합니다. 만약 어떤 군대가 상대 병사들을 없애기 위해 가상의 바이러스를 만든다면, 이건 생체 병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현실에서 가장 위험한 생체 병기는 바로 이런 세균전이죠. 세균전의 역사는 꽤나 오래 되었고, 지금도 정규군부터 테러리스트까지 어떻게 세균전을 써먹을지 연구합니다. 만약 인류가 새로운 바이러스나 미생물을 만든다면, 이를 전쟁 무기로 사용할 수 있겠죠. 현실의 과학자들도 이런 사태를 경고하고요.
하지만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만 생체 병기가 아닙니다. 각종 크고 작은 동물들도 생체 병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인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말을 전쟁에 이용했습니다. 말은 상대 병사를 직접 죽이지 않으나, 병사가 상대와 싸울 수 있도록 돕는 동물이었습니다. 고대 전장의 코끼리는 수많은 병사들을 태우고 적진으로 돌격했죠. 그야말로 고대 전장의 장갑차였습니다. 통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전투 코끼리는 그리 유용한 병기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인류는 오래 전부터 동물들을 이용했습니다. 지금도 인류는 독일 셰퍼드나 벨기에 말리노이즈, 래브라도 리트리버 등을 군견으로 이용합니다. 2차 대전에서도 군견들은 부상자를 찾거나 편지를 배송했고, 심지어 일부 군견들은 폭탄을 짊어지고 전차를 향해 달려들었죠. 대부분 군견은 직접 전투를 치르지 않으나, 적을 추격하고 함정을 발견하고 마약이나 폭탄을 적발합니다. 게다가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이들 군견은 적진을 향해 돌격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화기가 발달했어도 모든 군인들은 육탄전을 치를 수 있어야 하고, 이런 육탄전은 군견의 훈련 과정에서 빠지지 않아요.
당연히 SF 창작물도 이런 생체 병기를 빼먹지 않습니다. 동물 병기가 실험실에서 탈출하고 각종 사고를 일으킨다는 내용은 너무 뻔한 줄거리이기 때문에 말하기에 입이 아픕니다. 온갖 3류 SF 창작물에서 이런 내용을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때때로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런 소재를 채용하고 대박을 칠 수 있죠. 그런 3류 SF 창작물이나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에서 이런 개조 동물 병기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강화복 군인들과 아라크니드 외계인들의 전투를 다루지만, 아주 가끔 네오독을 보여줍니다. 칼렙견이라고 불리죠. 네오독은 개조 생명체보다 초능력 동물에 가까운데, 인간과 정신적인 유대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어른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린 아이처럼 말귀를 이해할 수 있어요. 게다가 발음이 어눌하지만 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네오독들은 수색 지역에 홀로 들어가는데, 군견병은 원거리에서 군견과 소통하고 지시할 수 있죠. 흠, 이 소설에서 군견병은 모두 장교이고 초능력자이기 때문에 '병'이라는 명칭은 별로 어울리지 않겠군요. 어쨌든 네오독은 이른바 동물 병기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인류는 혼자서만 전투를 치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죠. 미생물 병기와 동물 병기 이외에 괴수 병기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몸집이 집채만한 놈들입니다. 그 크기는 창작물에 따라 다릅니다. 공룡처럼 거대한 병기가 있는가 하면, 전함만큼 무지막지한 병기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그야말로 괴수입니다. 이런 괴수 병기는 기존 생명체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고지라처럼 온갖 재래식 병기의 화력을 씹어먹고 닥치는 대로 깨부술 수 있어요. 뭐, 이런 설정은 너무 황당하게 보이기 때문에 좀 더 현실적인 작가들은 설정의 규모를 너무 부풀리지 않습니다. 어쨌든 <드래곤 마스터> 같은 유전자 조작 드래곤부터 <레비아탄>의 부유 고래 비행선까지, 괴수 병기들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앤 매카프리의 외계 드래곤도 괴수라고 불릴 수 있으나, <레비아탄>에 등장하는 부유 고래는 대략 300m에 이릅니다. 크기는 전부가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야말로 괴수가 아닙니까. 소설들이 별별 괴수 병기를 선보이면, 영화나 비디오 게임은 그걸 훨씬 과장하곤 하죠. 4X 게임 <비욘드 어스>에는 제노 타이탄이라는 괴수 병기가 등장하는데, 정말 고지라 같은 위압감을 풍깁니다. 환경 보호 세력이 만든 병기인데, 환경 보호 세력은 특성상 생물 공학을 발달시켰습니다. 그래서 진화를 인위적으로 촉진했고 제노 타이탄 같은 엄청난 괴수 병기가 등장했습니다.
이렇듯 SF 창작물의 생체 병기는 세 종류로 나뉜다고 봅니다. 우선 미생물과 바이러스 종류입니다. 제임스 팁트리의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이나 스티븐 킹의 <스탠드> 같은 소설까지 이런 미생물을 다룹니다. 이런 미생물 병기는 그렉 베어의 파격적인 <블러드 뮤직>만큼 위협적입니다. <블러드 뮤직>의 미생물은 병기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잠식하는 미생물의 모습은 왜 생체 병기가 그토록 무지막지한 병기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인류가 그걸 인위적으로 사용하느냐, 우연히 미생물들이 스스로 번식하느냐, 이런 차이일 뿐이라고 봅니다. 둘째 종류는 동물 병기입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의 네오독처럼 동물 수준에 머무르는 개조 생명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미래에 이런 동물 병기를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유전 공학이 좀 더 발달한다면, 군대는 좀 더 효율적인 군견을 보유하기 원할 수 있겠죠. 아니면 불곰이나 백상아리처럼 훨씬 강대한 동물을 보유한다거나…. 솔직히 미래 군대가 불곰을 보유해도 별로 쓸모가 없을 것 같지만, 뭐, 혹시 모르죠. 그게 아니라도 기존의 벨기에 말리노이즈를 훨씬 냄새 잘 맡고 똑똑한 견종으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런 개조 돌고래가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아서 클라크의 단편 소설 <해저 목장>은 이미 그런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동물들만 아니라 벌이나 개미 같은 곤충들도 얼마든지 병기로 쓰일 수 있겠죠. 현실과 SF 설정 양쪽에서.
물론 이런 개조 동물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사람들이 생명 윤리에 동의해야 할 겁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생명을 개조할 수 있는지 합의해야 할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철학자와 생물학자와 사상가들이 논의하는 중이겠죠. 누군가는 기술 진보를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할 테고, 누군가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적절한 수위를 지켜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딱히 해답이 없는 문제 같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전혀 모르니까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고, 뭐가 어떻게 변할지 잘 모르죠.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저는 기술이 진보하기 이전에 그 기술이 초래하는 생명 윤리를 민주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을 하기 전에 멍석부터 깔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생명 윤리 토론에 참여하기 힘듭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립니다. 그것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굶주리거나 병 드는 사람들이 숱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생명 공학 윤리 따위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겠죠. 만약 생명 공학 윤리를 논하기 원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사회 체계부터 바꿔야 할 겁니다. 일부 대기업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진짜 민주적인 토론이 되겠죠. 따라서 자본을 움켜쥔 사람만 우대하는 작금의 자본주의 체계부터 뒤집어야 하겠죠.
여하튼 (생체 병기가 아니라고 해도) 개조 생명체를 이야기할 때 생명 윤리는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이미 언급한) 스콧 웨스터펠드는 소설 <레비아탄>, <베헤모스>, <골리앗> 3부작을 썼고, 동물 및 괴수 병기를 다루는 병사가 생명 윤리를 고민하도록 유도했죠. 아무래도 병사들이 생체 비행선에 탑승하고, 생체 잠수함을 내보내고, 개조 동물들을 사육한다면, 생명과 전쟁의 관계를 좀 더 마땅히 고민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스콧 웨스터펠드는 생체 병기와 다관절 기계 병기를 대립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레비아탄> 시리즈에서 영국과 독일이 싸우는데, 독일은 다관절 기계 병기를 발달시켰습니다. 반면, 영국 과학자들은 찰스 다윈 덕분에 유전 공학(!)을 발달시켰고, 각종 개조 생명체를 전쟁에 써먹습니다. 영국 군대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래에 함교와 선체를 매달았고, 공중 전함으로 써먹습니다. 이야, 거대한 생체 공중 전함이라니…. 그야말로 바이오펑크의 로망이 팍팍 묻어나오는 설정입니다. 생체 전함답게 이 고래 공중 전함은 통상적인 포탄과 함께 동물 무기들을 이용합니다. 화살을 뱉는 박쥐 떼와 날카로운 발톱으로 비행기를 공격하는 맹금류들을 날립니다. 정찰을 하기 위해 비행 해파리(?)를 날리는가 하면, 함교에는 개조 도마뱀들이 돌아다녀요. 심지어 영국군은 크라켄 같은 거대 두족류 괴수를 만들고, 두족류 괴수는 독일 군함을 집어삼키면서 싸웁니다. 생체 병기의 궁극적인 모습은 바로 이런 거대 괴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괴수 병기는 현실에 등장하지 않겠죠. 미생물 병기나 동물 병기는 지금도 존재하고, 미래에는 개조 미생물 병기나 개조 동물 병기가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괴수 병기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고, 아마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30m짜리 두족류 괴수를 만들 수 있어도 그 괴수가 미래의 구축함이나 순양함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요. 뭐, 그 괴수가 미사일 고속정을 침몰시킬 수 있겠지만, 비용 대비 효율은 영 꽝일 것 같습니다. 차라리 개조 돌고래 병사가 현실성이 있을 겁니다. 생체 전함이나 생체 잠수함은….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는 설정입니다. 만약 인류가 생체 잠수함을 만들 만큼 기술력이 발달했다면, 역시 기계 군함들도 상당히 발달했겠죠. 따라서 발달한 기계 군함이 훨씬 효율적일 것 같습니다. 생체 잠수함을 만든다고 해도 그게 무슨 장점이 있을지 추측하기 어렵군요. 저는 밀리터리나 생물 공학 지식에 까막눈이기 때문에 뭐라고 자세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막연히 생각해봐도 그런 괴수 병기나 생체 전함은 전혀 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누가 실험적으로 만든다면 모르겠지만, 글쎄요. 로버트 새클리나 댄 시몬스는 생체 우주선도 언급했으나, 역시 얼마나 효율적일지 알 수 없군요. 게다가 이런 생체 전함은 '생체'이기 때문에 좀 징그러울 수 있죠. 승무원들의 비위가 좋아야 할지도?
솔직히 괴수 병기는 로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괴수 병기를 현실에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과 군견들이 전장에서 죽어나가는 마당인데, 굳이 괴수까지 전장에서 피를 흘릴 이유는 없겠죠. 설사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지 못한다고 해도 전쟁은 줄어야 마땅합니다. 괴수 병기도 결국 병기이고, 레비아탄이나 제노 타이탄은 정말 굉장한 설정이지만, 병기는 사라질수록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