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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단편 소설들은 강렬합니다. 가끔 단편 소설의 충격이 장편 소설의 장대함을 뛰어넘을 때가 있습니다. 와 과 는 멋진 소설이지만, 은 그런 소설들을 뛰어넘는 충격이 있습니다. 과 과 은 감동적이지만, 때때로 이야말로 정말 뒷통수를 때리는 감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와 와 는 좋은 책이지만, 은 정말…. 왜 필립 딕이 천재 작가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죠. 아시모프와 필립 딕은 단편에 강한 작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편 소설의 자체적인 특성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기나긴 여정을 좋아하고, 그래서 단편 소설보다 장편 소설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각종 단편 소설들은 느닷없이 고정 관념을 깨뜨리거나 오함마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차가운 고드름으로 뇌를 긁는 듯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런 반전..
소설 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빨갱이 SF'(…)입니다. 사회주의 SF 소설은 많지만, 보그다노프는 러시아 혁명에 참가한 볼셰비키 당원이죠. 블라드미르 레닌과도 가까운 사이였고요. 그러니까 은 정말 빨갱이 SF 소설인 셈입니다. 그만큼 고전적인 사상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의 공산주의 화성인들은 개발과 발전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개발과 발전과 확장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소설 속의 화성인들은 유토피아를 이룩했으나 커다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지구인 주인공은 화성인들에게 잠시 물러나라고 조언합니다. 계속 앞으로 나가면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화성인들은 이미 충분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잠시 쉬거나 뒤로 물러나도 하등..
소설 은 애스시 사람들의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지구 인류는 자원을 무분별하게 소모한 나머지 더 이상 충분히 나무를 벨 수 없었습니다. 인류는 목재를 얻기 위해 다른 행성을 침공했고, 그 행성은 바로 애스시였죠. 하지만 이 행성에는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인류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처들어가고 숲을 착취할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마저 노예로 삼습니다. 본래 애스시 사람들은 폭력을 모르고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는 그들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죠. 하지만 이런 노예 통제는 영원히 이어지지 못합니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애스시 사람들은 인류에게 항거하기 시작했고, 끝내 독립 혁명으로 발전합니다. 사실 이것 자체는 뻔하고 뻔한 줄거리입니다. 강대국의 침략, 약소국의 저항, 독립 혁명은 딱히 특별..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이런 작품을 만든 창작가의 속내가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인터뷰와 후기는 요긴한 참고 자료입니다. 그런 인터뷰나 후기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더 깊게 이해하거나 미처 몰랐던 부분을 알아차리거나 오해했던 부분을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스타니스와프 렘은 여러 인터뷰에서 가 그저 비유적인 소설이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만들었을 때, 둘이 서로 다퉜다는 일화가 유명하죠. 작가가 소설에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적거나 편집자나 번역자가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면, 독자는 해당 작품을 한층 더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겠죠. 독자 자신만의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
소설 는 어니스트 칼렌바흐의 책입니다. 일종의 유토피아 소설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생존자 정당'이라는 집단입니다. 이 정당은 생태적이고 지속 가능하고 다양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좋아하고, 자연 친화적인 사업을 꾸리고, 재생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원주민들과 유대하고, 성별을 가리지 않고, 동물 권리를 챙깁니다. 아울러 거대 자본주의를 타파하려고 애쓰죠. 이들이 만든 강령을 살펴보면, 저런 사상들을 엿볼 수 있어요. 물론 이 생존자 정당도 모순이 없지 않습니다. 방어적인 폭력마저 너무 부정한다거나 기술 진보를 거부한다거나 등등…. 하지만 이런 정당이 존재한다면, 힘 내라고 응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아니, 현실에도 엄연히 이런 정당이 존재합니다. 바로 녹색당이 현실의 생존자..
[영화 의 한 장면. 미래에도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는 로망은 사라지지 않겠죠.] 소설 에는 토시오라는 우주 승무원이 나옵니다. 항해를 동경하는 소년이죠. 이 소년은 자신이 언제나 항해를 원했다고 생각하고, 한 번은 수상선을 타는 꿈을 꿉니다. 희한하죠. 우주선 승무원이 수상선을 타는 꿈을 꾸다니요. 하지만 우주선과 수상선은 똑같은 배입니다. 사실 SF 창작물을 살펴보면, 우주선과 수상선의 비유를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는 인데버 우주 탐사선이 나오는데, 원래 인데버는 제임스 쿡 선장의 탐사선이죠. 소설 속의 우주 탐사대 대장은 자신을 제임스 쿡과 비교하고요. 를 보면, 사람들은 메이플라워 우주선을 타고 가니메데로 날아갑니다. 메이플라워는 미국 이주의 첫 발을 장식한 배입니다. 가니메데 개척자들을 항..
유전 공학은 종종 SF 같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작금의 여러 과학 프로젝트 중에서 유전자 조작이나 생명 설계만큼 논란을 일으키는 사항도 드물 듯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유전 공학으로 멸종된 동물을 되살리면, 생물 다양성을 늘리고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꿈꾸는가 봅니다. 심지어 매머드를 복원하겠다고 나서는 과학자도 있군요.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런 의견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일단 매머드 복원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생명 설계는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게다가 멸종된 동물을 복원한다고 해도 그게 생태계 보존에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멸종 동물 복원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그 막대한 자금을 이용해 현재 생태계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솔직히 관련 지식이 없..
[이런 드루이드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드 엘프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크게 거리가 있습니다.] 검마 판타지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종족들은 전형적인 특성을 보이죠. 가령, 사람들은 드워프를 보고 든든한 방패 전사와 노련한 기술자를 떠올립니다. 드워프들은 판금 갑옷과 철벽 방패를 두르고, 적의 공격을 단단하게 막아냅니다. 아니면 깊고 깊은 광산 속에서 다양한 금속들을 채굴하고 증기 기관들을 작동시킵니다. 드워프는 검마 판타지에 증기 기관을 도입할 수 있는 유용한 종족이죠. 호비트는 유쾌하고 발랄하고 호기심이 많습니다. 호비트를 보고 단단한 판금 전사와 능숙한 공학자를 떠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하지만 호비트는 뛰어난 도적이나 쾌활한 음유 시인이 될 수 있고, 행복한 정원사나 농부가 될..
생태계 시뮬레이션은 오래 전부터 비디오 게임 세계의 터줏대감이었습니다. 혹은 약방의 감초처럼 비디오 게임 역사의 한 켠에 꼬박꼬박 끼어들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군요. 고전적인 나 가 있고, 같은 그야말로 인디 게임도 있고, 처럼 아기자기하지만 풍부한 게임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게임들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블록버스터는 아닙니다. 천 만 장씩 팔아치우는 AAA 타이틀과 별로 인연이 없어요. 여기저기 나무를 심고, 동물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후를 조절하고, 다양한 생명들이 상호작용하고…. 생태계 게임은 이런 내용입니다. 솔직히 화끈하고 자극적인 내용은 아닙니다. 생명의 역사에 감동하는 사람은 이런 게임을 보고 장대한 생태계를 떠올릴 수 있겠으나, 당장 이목을 끌기 어려운 소재입니다. 그래서 생태계 게임은 ..
소설 의 주인공은 인간과 돌고래입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그냥 돌고래가 아니라 유전자 조작을 거친 신종 돌고래입니다. 인간처럼 똑똑하기 때문에 우주선을 조종하거나 다양한 학문을 연구할 수 있죠.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이 동물적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신종 돌고래들은 고래 특유의 성격을 버리지 못합니다. 소설은 이런 돌고래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핍니다. 돌고래마다 내면의 본능에 각자 다르게 이끌리는데, 어떤 돌고래들은 굉장히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누군가는 인간과 협력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인간을 뛰어넘고 싶어하죠. 저는 이 소설을 보면서 신종 돌고래들이 천연적인 돌고래들을 어떻게 여길지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천연 돌고래를 그냥 우둔한 친척 정도로 여길지 모릅니다. 우리 인간은 고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