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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들리는가?>의 '평범한' 남자 우주인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휴스턴, 들리는가?>의 '평범한' 남자 우주인

OneTiger 2017. 3. 29. 20:00

소설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는 꽤나 희한한 우주 비행사가 나옵니다. 이 우주 비행사는 남자인데, 세상의 모든 여자들과 섹스하겠다는 일념을 품었습니다. 이 남자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예 대놓고 자신이 수많은 여자들과 섹스할 거라고 다짐합니다. 섹스할 기회가 생기면,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X지'가 전부 자기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소설에 저런 단어가 몇 번씩 직접적으로 나옵니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 섹스광이 소설 속의 별난 캐릭터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 우주 비행사는 좀 과장된 캐릭터지만, 그래도 '평범한 남자들'의 심리를 반영했습니다. 강간이나 성 희롱은 사이코패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실 보통 남자들도 기회만 된다면 섹스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여자를 쾌락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바쁩니다. 여자를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성적 욕구를 풀어줄 쾌락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사례를 열거한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성 범죄 숫자만 따져도 이미 답이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남자들이 강간 범죄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강간 범죄자들은 남자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런 강간 범죄자들이 전부 미치광이는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나름대로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런 평범한 남자들이 성 폭행을 저지르고, 성 희롱을 저지릅니다. 문제는 남자들이 그걸 범죄라고 크게 의식하지 않거나 의식함에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점입니다. 소설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에서 주인공은 저 우주 비행사를 설득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우주 비행사는 기어코 여자들과 섹스하기 위해 안달합니다. 여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이 우주 비행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지만, 저 우주 비행사는 그 점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여자들과 섹스할 생각만 머릿속에 들어찼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성적 쾌락이거든요. 이 점 역시 '평범한 남자들의 심리'와 비슷하죠. '평범한 남자들'은 성적 쾌락만 생각할 뿐이고,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신경을 안 씁니다. 기괴하고 유별난 미치광이만 성 폭행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평범한 남자들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소설 속에는 유별나고 희한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저 우주 비행사도 유별나지만, 이걸 그저 소설 속의 희화화된 캐릭터로만 볼 수 없을 겁니다. 평범한 남자들이 강간을 저지르고, 평범한 남자들이 여자를 성적 쾌락으로만 바라봅니다. 비디오 게임 커뮤니티에 가면, 온갖 음담패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남자가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입니다. 여자 캐릭터의 슴가, 여자 캐릭터의 팬티, 여자 캐릭터의 누드 패치…. 비디오 게임 커뮤니티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들입니다. 이런 커뮤니티의 구성원들도 '평범한 남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게임 플레이어들은 오히려 "꼴페미는 꺼져라."라고 외칩니다. 자신들은 여자를 성적 상품으로 소비하면서 '꼴페미는 꺼지라'고 외칩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게임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아, 표현의 자유. 좋죠.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합니다. 만약 일본 제국주의가 게임에 등장하면, 저런 게임 플레이어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합니다. 왜 그걸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지 않을까요? 여자 캐릭터가 성적 상품이 되든, 일본 제국주의가 미화되든, 결국 표현의 자유가 아닙니까.

 

 

저런 '평범한 남자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말하면, 그걸로 충분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페미니즘 책을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어설프게 넘겨 짚자면, (따라서 허튼 소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결국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붉은 별>의 공동 육아 제도처럼요. 정확히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 구조를 바꿀 만큼 급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많은 평범한 남자들이 문제라면, 이건 개인적이거나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아닙니까. 구조적 문제를 풀고 싶다면, 구조를 바꿔야만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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