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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소설 속에는 종종 학자 종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학자 종족이고, 순전히 학구적인 분야에만 종사합니다. 현대 인류 문명도 지식인을 귀중하게 대접하지만, 인류 전체가 학자는 아닙니다. 지식인은 상당한 엘리트이고 꽤나 소수죠. 하지만 SF 소설 속의 학자 종족들은 종족 구성원 전부가 학자입니다. 이들은 생산적인 일이나 기타 소비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이 종족에게 농부나 어부, 목수, 광부, 은행원, 회계사 따위는 없을 겁니다. 가수나 배우, 운동 선수도 없을 겁니다. 농부와 어부 대신 식물학자나 해양학자가 있겠죠. 목수나 광부 대신 삼림학자나 지질학자가 있을 테고요. 은행원이나 회계사 대신 정치 경제학자나 경영학자가 있을 겁니다. 문화 학자들은 때때로 가수나 배우가 될 수 있겠..
[이런 삽화가 있다면, 독자들은 생체 고래 비행선의 모습과 크기를 훨씬 쉽게 가늠할 수 있겠죠.] 스콧 웨스터펠드는 어느 강연에서 소설 삽화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왜 자신이 같은 소설에서 삽화를 집어넣었는지, 왜 키스 톰슨 같은 삽화가를 섭외했는지 이야기했죠. 저는 그 강연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웨스터펠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대충 저런 이야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웨스터펠드가 강연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든 , , 의 삽화는 정말 웅장하고 기괴하고 멋집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베헤모스와 SMS 괴벤의 싸움 장면입니다. 소설 속에서 베헤모스는 자연적인 괴수가 아니라 인류의 생체 병기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인류가 그토록 거대한 바다 동물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
종종 SF 소설들은 미래 인류나 외계 종족을 묘사합니다. 당연히 이들의 사회 구조는 현대 인류와 다릅니다. 현대 인류는 자본주의 체계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종언' 같은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심지어 일부 보수 우파는 자본주의의 확대가 역사의 마무리라고 해석하죠. 하지만 (우파와 좌파를 떠나서) SF 작가들은 인류의 미래나 다른 지적 존재의 사회 구조를 보다 파격적이고 자유롭게 상상합니다. 바로 기술이 진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SF 소설 속에서 어쩌면 미래 인류는 기술적 특이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인공 지능과 로봇은 모든 노동을 도맡을 수 있고, 따라서 인류는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될 수 있습니다. 인공 지능이 모든 것을 생산하고 생산량이 홍수처럼 넘친다면, 인간들은 노동 없이 ..
[인류 문명에게 울창한 숲들은 위험하고 적대적이고 낯설고 어둡고… 신비롭습니다.] 소설 은 말 그대로 숲이 주된 무대입니다. 어딘지 신비롭고 위험하고 야생적인 태고의 숲입니다. 어찌 보면,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가인 로버트 홀드스톡이 다른 배경도 아니고 하필 숲을 고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시 문명과 대착점에 서있는 장소니까요. 현대적인 도시와 반대되는 곳이 무성한 숲이고, 그래서 강렬한 원시성을 잉태할 수 있죠. 사실 작중에 나오는 거대한 원시림이 아니라 뒷산만 올라가봐도 숲이 얼마나 음험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온통 가려서 빛이 안 들어옵니다. 주변은 컴컴하고, 빽빽한 줄기 때문에 시야가 멀리까지 닿지 않죠. 어떤 인류학자는 인간이 본래 평원에서 살던 동물이라 ..
[게임 처럼, 식물들이 뒤덮은 도시는 디스토피아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는 서로 비슷하게 보입니다. 양쪽 모두 암울한 미래를 묘사하기 때문에 때때로 사람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양쪽을 구분하는 기준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수학 공식처럼 답이 딱 떨어지지 않아요. 어떤 창작물은 디스토피아처럼 보일 수 있고 동시에 포스트 아포칼립스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가령, 는 확실히 포스트 아포칼립스 같습니다. 인류가 몽땅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에 인간이 단 한 명만 남았다면 확실히 그건 문명의 몰락이고 따라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불릴 수 있겠죠. 하지만 은 어떨까요. 엄청난 질병이 몰아쳤고 수많은 작물들과 가축들이 죽었습니다. 자원이 고..
SF 소설은 특정 정치 성향과 어울릴까요. 어찌 보면 그런 듯하지만, 저는 SF 소설이 특정 정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파적인 SF 작가들도 많고, 좌파적인 SF 작가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SF 소설이 특별히 우파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말할 수 없겠죠. 언뜻 좌파는 SF 소설과 친숙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좌파는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좌파들도 많지만, 좌파는 진보적이라고 불리곤 합니다. 진보는 뭘까요. 앞으로 나간다는 뜻입니다. 미래적이죠. 미래적인 것은 사이언스 픽션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진보와 좌파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진보 좌파'는 친숙한 용어입니다. 에서 제임스 퍼거슨은 일부러 좌파와 진보라는 용어를 구분했습니다. 사람..
[스팀펑크가 동화풍일까요? 아니, 세상에. 정말 이런 스팀펑크가 동화풍으로 보입니까?] 종종 저는 '스팀펑크가 동화풍'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의 여러 사람들은 스팀펑크가 동화풍이라고 말합니다. 의외로 이런 믿음이 꽤나 널리 퍼졌나 봅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소설들은 항상 밝거나 유쾌하지 않습니다. 고전적인 허버트 웰즈의 소설부터 팀 파워스의 소설들을 거쳐 뉴 위어드에 이르기까지, 스팀펑크는 우울함과 기괴함을 선보이곤 했습니다. 스팀펑크가 현대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쥘 베른이나 허버트 웰즈 본인은 와 이 스팀펑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저런 소설들은 고전적인 스팀펑크에 속합니다. 그리고 과 는 결코 유쾌한 동화풍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극적이고 추악하고 암울한 소..
데이빗 웨버의 아너 해링턴 시리즈는 우주 함대전을 묘사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우주 함선들과 우주 병기들이 등장합니다. 현실의 수상함들이 포탄과 로켓과 미사일과 어뢰를 쏘는 것처럼 소설 속의 우주 함선들도 레이저를 쏘고 미사일을 쏘고 중력 장창을 쏩니다. 우주 함선들은 중력장이나 에너지 장을 펼치고 선체를 보호합니다. 견인 광선도 있고, 정찰 무인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에너지 어뢰나 감마선 어뢰도 있습니다. 흠, 어뢰…. 감마선 어뢰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어뢰가 아니겠죠. 저는 아너 해링턴 시리즈를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감마선 어뢰나 에너지 어뢰가 무슨 병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을 읽었으나, 거기에 감마선 어뢰가 나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분명한 점은 소설 속의 우주 함선들이 감..
여기 블로그 상단에는 'SF/생태/사회주의'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사실 저는 사이언스 픽션을 잘 모릅니다. 게다가 사이언스 픽션을 많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SF'라는 명칭을 빼고 싶었지만, 여기에서 SF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하기 때문에 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종종 이렇게 자문하곤 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SF 팬들 중에는 여러 유형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유형은 SF 소설들을 모두 섭렵합니다. 첫째 유형은 그야말로 골수 SF 독자이고, 고전 소설과 최신 소설과 하드한 소설과 뉴 위어드 소설과 해외 소설과 국내 소설을 모두 챙겨봅니다. 둘째 유형은 SF 소설들을 읽고 그 경이감에 감동을 받지만, SF 소설만큼 ..
기본 소득을 논의하는 책들은 기본 소득이 누군의 발상인지 논의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파와 좌파는 모두 기본 소득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우파와 좌파 모두 기본 소득에 찬성하는 동시에 그것을 비난합니다. 우파는 기본 소득이 빨갱이들의 공상이라고 힐난합니다. 만약 정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면, 사람들이 전부 못 먹고 못 살게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좌파 역시 기본 소득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본 소득은 사람들을 더 많은 소비로 몰아갈 테고, 더 많은 소비는 사람들을 거대 자본과 자유 시장에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좌파는 이런 기본 소득이 사람들의 저항을 둔감하게 만들 거라고 걱정합니다. 또한 우파와 좌파가 기본 소득을 주장할 때, 양쪽의 취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