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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SF 소설은 비일상적인 소재들을 주로 이야기합니다. 최첨단 우주선, 인공지능과 로봇, 생체 괴수 병기 등이 주된 소재입니다. 하지만 SF 소설의 표지 그림은 이런 소재를 항상 반영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 시장의 표지 그림을 둘러보면, 소설 내용이랑 별반 상관이 없는 것들도 많습니다. 아마 표지 그림을 그리는 삽화가들도 여러 모로 고민이 많을 겁니다. 어떤 하드 SF 소설이 최첨단 우주선을 이야기한다면, 그 소설의 표지를 그리는 삽화가는 그 우주선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작가의 묘사와 달리 엉뚱한 그림을 그리면 곤란하겠죠. 하지만 삽화가는 소설 설정을 자세히 탐구할 시간이 없을 테니까 설정을 표지 그림에 그대로 반영하기 힘들 겁니다. 저는 출판계의 상황을 잘 모르지..
작가들은 종종 자신의 사상을 작품에 집어넣습니다. 수많은 소설들은 그 소설가들의 사상을 반영합니다. 심지어 나 처럼 이게 소설인지 철학 서적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슐라 르 귄은 단편 소설 의 후기에서 무정부주의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철학 중에서 무정부주의에 끌리고, 그래서 을 썼다고 말했죠. 르 귄은 이 소설에서 무정부주의를 깊게 탐구하고, 요모조모 뜯어봅니다. 무정부주의 역시 인간의 사상이기 때문에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르 귄은 인류가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물론 이건 그저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르 귄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거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과 연합합니다. 르 귄은 후기에서 을 쓸 때 인칭 대..
은 SF 개론서입니다. 제목처럼 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 책은 대재앙의 원인에 따라 다양한 SF 작품들을 분류하는데, 1970년대에는 생태학적 재앙 소설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근미래의 생태학적 위기'입니다. 그 이전에도 생태학적 재앙 소설이 없지 않았으나, 1970년대 시점부터 이런 소설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사례로써 시어도어 토마스와 케이트 윌헬름의 , 윌리엄 왓킨스와 진 스나이더의 , 존 브러너의 등을 꼽습니다. 각각 1970년, 1972년에 나온 소설들입니다. 저자는 이런 소설들이 등장한 이유를 국가와 기업 등의 환경 오염으로 꼽는군요. 환경 파괴와 공해, 인구 폭증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했고, SF 작가들도 거기에 동참했다는 뜻이겠죠. 사실..
어슐라 르 귄은 에 단편 소설을 실을 때, 작가 이름을 U.K.르 귄으로 썼습니다. 사실 르 귄 본인은 그걸 별로 원하지 않았습니다. 편집부가 여자 작가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어슐라'라는 이름을 숨겼죠. 아마 편집부는 독자들이 여자 작가의 SF 소설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긴 제임스 팁트리처럼 가명을 쓰는 작가도 있었고, 여러 작가들과 독자들은 제임스 팁트리의 성별 정체성을 두고 논란을 벌였죠. 그런 역사를 고려하면, 왜 'U.K.르 귄'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는지 이해할만합니다. 르 귄은 에 소설을 낼 때, 저런 이름을 별 생각 없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생각이 바뀌었고, 이게 성 차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저런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무조건 '어슐라 르..
SF 단편 소설들은 강렬합니다. 가끔 단편 소설의 충격이 장편 소설의 장대함을 뛰어넘을 때가 있습니다. 와 과 는 멋진 소설이지만, 은 그런 소설들을 뛰어넘는 충격이 있습니다. 과 과 은 감동적이지만, 때때로 이야말로 정말 뒷통수를 때리는 감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와 와 는 좋은 책이지만, 은 정말…. 왜 필립 딕이 천재 작가인지 알 수 있는 작품이죠. 아시모프와 필립 딕은 단편에 강한 작가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편 소설의 자체적인 특성을 과소 평가할 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기나긴 여정을 좋아하고, 그래서 단편 소설보다 장편 소설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각종 단편 소설들은 느닷없이 고정 관념을 깨뜨리거나 오함마로 머리를 두드리거나 차가운 고드름으로 뇌를 긁는 듯한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런 반전..
소설 은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의 '빨갱이 SF'(…)입니다. 사회주의 SF 소설은 많지만, 보그다노프는 러시아 혁명에 참가한 볼셰비키 당원이죠. 블라드미르 레닌과도 가까운 사이였고요. 그러니까 은 정말 빨갱이 SF 소설인 셈입니다. 그만큼 고전적인 사상을 보여주는데, 이 소설의 공산주의 화성인들은 개발과 발전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역사는 꾸준히 진보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개발과 발전과 확장을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하죠. 소설 속의 화성인들은 유토피아를 이룩했으나 커다란 난관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지구인 주인공은 화성인들에게 잠시 물러나라고 조언합니다. 계속 앞으로 나가면 벽에 부딪히기 때문에 뒤로 물러나라고 말합니다. 화성인들은 이미 충분한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에 잠시 쉬거나 뒤로 물러나도 하등..
[영화 의 한 장면. 미래에도 금단의 바다를 항해하는 로망은 사라지지 않겠죠.] 소설 에는 토시오라는 우주 승무원이 나옵니다. 항해를 동경하는 소년이죠. 이 소년은 자신이 언제나 항해를 원했다고 생각하고, 한 번은 수상선을 타는 꿈을 꿉니다. 희한하죠. 우주선 승무원이 수상선을 타는 꿈을 꾸다니요. 하지만 우주선과 수상선은 똑같은 배입니다. 사실 SF 창작물을 살펴보면, 우주선과 수상선의 비유를 곧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는 인데버 우주 탐사선이 나오는데, 원래 인데버는 제임스 쿡 선장의 탐사선이죠. 소설 속의 우주 탐사대 대장은 자신을 제임스 쿡과 비교하고요. 를 보면, 사람들은 메이플라워 우주선을 타고 가니메데로 날아갑니다. 메이플라워는 미국 이주의 첫 발을 장식한 배입니다. 가니메데 개척자들을 항..
은 말 그대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인터뷰 모음입니다. 이 책에서 칼 세이건의 여러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뻔하고 뻔한 SF 창작물을 비판하는 과학자로서의 세이건입니다. 왕년에 를 보고, 제3종 근접 조우는 저런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한마디 날렸군요. 이 양반은 영화 속 외계인들이 그저 짜리몽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세이건은 외계인이 인간과 다른, 뭔가 다른 생명체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보다 을 더 마음에 들어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스탠리 큐브릭이 이 영화를 만들 때, 감독은 세이건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세이건은 외계인을 그저 피부색만 다른 인간이나 괴상망칙한 괴물로 만들지 말라고 조언했고, 이 영화에는 외계인이 아예 나오지 않죠. 그저 별의 ..
은 어슐라 르 귄이 쓴 단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딱히 SF 냄새를 풍기지 않습니다. 원래 르 귄이 하드 SF 장르를 별로 쓰지 않지만, 이 소설은 그저 가상의 사회를 이야기할 뿐이죠. (물론 그런 상상력 자체가 바로 사이언스 픽션이죠.) 이 가상의 사회는 축복 받은 유토피아입니다. 유토피아의 모든 이상들이 이 안에 담겼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고 풍요롭고 즐겁습니다. 유토피아에 존재할만한 그 어떤 모순이나 괴리도 없을 것 같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죠. 그래서 이 소설은 의미 심장하고 서글픕니다. 아무리 평화롭고 진보적인 유토피아에서도 누군가는 착취를 당하고 학대를 당하니까요. 어쩌면 그 누군가는 극히 일부이거나 소수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압도적인 다수를 위해 극소수의 불행은 필연적일지 모릅니다. ..
는 미래 도시를 이야기하는 소설 모음집입니다. 미래 도시를 묘사하는 여러 소설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죠. 똑같이 미래 도시를 표현해도 각 소설의 성격은 서로 다릅니다. 풍자적인 소설도 있고, 구원자 신화도 있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도 있고, 정체성을 뒤흔드는 사이버펑크도 있습니다. 이런 소설 모음집의 장점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더불어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도 읽어볼 수 있어요. 도 이런 형식의 모음집입니다. 제목답게 다양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들이 모였습니다. 어느 소설은 그냥 디스토피아 수준이고, 어느 소설은 정말 암울하기 그지 없는 묵시록입니다. 어느 소설은 아주 짧고 가볍지만, 어느 소설은 굉장히 묵직하고 난해합니다. 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제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