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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 속의 기본 소득 본문

SF & 판타지/유토피아

SF 소설 속의 기본 소득

OneTiger 2017. 6. 8. 20:00

기본 소득을 논의하는 책들은 기본 소득이 누군의 발상인지 논의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우파와 좌파는 모두 기본 소득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우파와 좌파 모두 기본 소득에 찬성하는 동시에 그것을 비난합니다. 우파는 기본 소득이 빨갱이들의 공상이라고 힐난합니다. 만약 정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한다면, 사람들이 전부 못 먹고 못 살게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좌파 역시 기본 소득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본 소득은 사람들을 더 많은 소비로 몰아갈 테고, 더 많은 소비는 사람들을 거대 자본과 자유 시장에 묶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좌파는 이런 기본 소득이 사람들의 저항을 둔감하게 만들 거라고 걱정합니다. 또한 우파와 좌파가 기본 소득을 주장할 때, 양쪽의 취지는 서로 다릅니다. 우파는 자본주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소비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계속 소비할 수 있도록 정부가 기본 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좌파는 보다 평등한 체계를 위해 기본 소득을 주장합니다.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우파와 좌파는 서로의 기본 소득 정책에게 시비를 겁니다.



덕분에 기본 소득을 논의하는 책들은 (우파와 좌파에게 모두 호소하기 위해) 우파와 좌파의 기본 소득 지지자들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좌파 쪽에서 주로 헨리 조지나 앙드레 고르 등이 언급되는 듯하군요. 우리나라에서는 녹색당이나 노동당이 이에 찬성하고, 김수행 교수 같은 마르크스 경제학자도 기본 소득에 동의했죠. 하지만 비단 경제학자나 철학자들만 기본 소득을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SF 사회주의 소설 역시 기본 소득을 논의한 적이 있죠. 대표적으로 <뒤 돌아보며>는 미래 인류가 사회주의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설정합니다.


이들은 철저한 계획 경제를 이룩했고, 인민들은 무엇을 생산하고 얼만큼 일할지 결정합니다. 인민들은 그런 결정에 따라 업무를 선택합니다. 일반적인 회사가 없기 때문에 이 사회주의 공동체에서 인민들은 '임금'을 받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방식에 익숙한 외부인은 이런 체계가 이상하다고 여길 겁니다. 흔히 사람들은 시장이 자본주의를 상징한다고 착각하지만, 자유 시장이 자본주의를 상징할 뿐이죠. 시장 자체는 자본주의와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자본주의 체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에도 시장은 존재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의 노동력을 교환하기 원한다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탄생합니다. 문제는 거대 자본이 약자들을 압살하는 자유 시장이죠.



하지만 소설 속의 사회주의 공동체에는 저런 자유 시장이 없습니다. 시장은 존재하지만, (자본주의 방식의) '임금' 노동자는 없습니다. 아마 외부인은 어떻게 인민들이 임금을 받지 않음에도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지 궁금할 겁니다. 회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민들은 임금을 받지 않지만, 대신 기본 소득을 받습니다. 이 기본 소득은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인민들은 누구나 기본 소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구태여 조건을 따진다면, 그 대상이 한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런 기본적인 권리 이외에 다른 조건은 별로 없습니다.


자본주의 방식에 익숙한 외부인은 이런 기본 소득에 별로 동의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더 높은 임금과 더 많은 돈이야말로 사람들이 노동하는 원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주 흔한 생각입니다. 만약 더 많은 돈을 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뒤 돌아보며>는 인민들이 돈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보상은 업무의 성과와 사회 구성원들의 인정이고, 소득은 그저 노동력을 교환하기 위한 매개체일 뿐입니다.



물론 <뒤 돌아보며>의 사상은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저 소설의 발상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겠죠. 하지만 <뒤 돌아보며>는 19세기 소설이고, 이 시기에 이미 좌파적인 SF 소설도 기본 소득을 논의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소설이 '기본 소득'이라는 단어를 직접 말하지 않으나, 소설 속의 소득 개념은 분명히 기본 소득과 닮았습니다. 기본 소득은 좌파 경제학자나 철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SF 소설 역시 기본 소득 논의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기본 소득은 좌파 쪽에서 오랜 역사가 있음을 알 수 있죠. 많은 좌파들이 기본 소득을 비판하고, 소득은 오직 노동의 댓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노동 없는 소득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기본 소득보다 참여 계획 경제가 보다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본 소득은 더 평등한 체계로 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좌파들이야말로 평등하고 보편적인 기본 소득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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