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자본주의 세력은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가 본문

SF & 판타지/유토피아

자본주의 세력은 조화를 추구할 수 있는가

OneTiger 2017. 5. 13. 20:00

[어쩌면 <문명: 비욘드 어스>는 조화 친화도보다 이런 설정을 선택했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환경 보존 세력은 SF 소설의 주된 소재 중 하나입니다. 예전부터, 특히 1970년대부터 환경 아포칼립스 소설들이 자주 출판되었고, 이런 소설들은 자연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설파하곤 했습니다. 환경 아포칼립스 소설들은 대기업이나 정부가 자연 환경을 오염시킨 나머지 끝내 인류 전체가 괴멸을 당하는 과정을 그리곤 하죠. 때때로 작가들은 그저 환경 오염의 위험만을 경고하지 않고, 환경을 지키는 세력들을 소개합니다. 이런 환경 보존 세력의 유형은 여러 가지입니다. 폭력적인 무장 집단, 은밀한 비밀 조직, 신비한 종교 단체, 건전하게 보이는 시민 운동이 될 수 있죠.


가끔 이런 환경 보존 세력은 아예 나라를 뒤엎어 생태 유토피아를 이룹니다. 환경 친화적인 이계 종족들 또한 환경 보존 세력 중 하나죠. SF 소설 속의 환경 보존 세력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대조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검마 판타지 소설에 실반 엘프나 드루이드, 레인저가 있다면, SF 소설에는 각종 환경 보존 세력이 있다고 할까요. 당연히 소설만 아니라 비디오 게임에서도 이런 환경 보존 성향이나 환경 보존 세력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알파 센타우리>와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에는 외계 행성에 환경 친화적으로 적응하자고 주장하는 단체가 등장합니다.



<비욘드 어스>는 <알파 센타우리>와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와 비슷한 게임이고, 역시 환경 보존 성향을 게임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하지만 <비욘드 어스>는 환경 친화적 요소를 단체가 아니라 성향으로 구현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알파 센타우리>에는 '가이아의 양녀들'이라는 단체가 등장합니다. 이름만 봐도 이 단체가 어떤 성향인지 알 수 있죠.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에는 '테라 살붐'이라는 단체가 등장하고, 이름답게 자연 환경을 지키자고 주장합니다. 테라 살붐의 상징은 녹색 나뭇잎이고, 지도자 모습도 그런 녹색 철학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가이아의 양녀들과 테라 살붐은 모두 평등과 자연 친화적 요소를 내세웠고 지도자도 모두 여자입니다. 어쩌면 <에코토피아 비긴스>나 <홍수> 같은 생태 사회주의, 생태 페미니즘과 상통할지 모르겠군요.)


이들과 달리 <비욘드 어스>에는 가이아의 양녀들이나 테라 살붐 같은 단체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비욘드 어스>에는 여러 단체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가이아의 양녀들이나 테라 살붐처럼 직접적으로 환경 보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게임은 친화력이라는 설정을 내세웁니다. 게임 속의 단체들은 외계 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친화력을 선택할 수 있어요. 이 친화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고, 각각 순수, 조화, 우월이라고 불립니다.



순수는 인류가 인간의 순수성을 지키고 외계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테라포밍을 선호합니다. 조화는 인류가 외계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외계 물질을 동력원으로 이용하거나 외계 야수들을 길들입니다. 심지어 인간을 아예 외계 생명체로 바꾸거나 거대한 괴수 병기(!)를 이용합니다. (아아, 괴수 병기는 로망이죠. 로딩 화면의 그 어마어마한 제노 타이탄은 정말 로망의 집대성입니다.) 우월은 순수, 조화와 관점이 전혀 다릅니다. 우월은 왜 인류가 (순수성을 지키든 외계 환경에 적응하든) 육체라는 껍데기에 매달리느냐고 반문합니다.


우월은 기계가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인간의 연약한 육체에서 벗어납니다. 게임 속의 여러 개척 단체들은 자유롭게 이런 친화력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사상이나 성향에 관계없이 개척 단체들은 필요에 따라 친화력을 선택하곤 합니다. 그래서 자유 시장을 부르짖는 미국 대기업 개척단이 조화를 선택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변모할 수 있어요. <알파 센타우리>나 <판도라: 퍼스트 콘택트>에도 이와 비슷한 시스템이 있으나, 그래도 <비욘드 어스>는 저 두 게임과 많이 다릅니다.



저는 가끔 <비욘드 어스>의 저런 게임 시스템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 시장을 부르짖는 대기업 개척단이 자연 친화적이라면…. 그건 현실의 모습과 너무 다릅니다. 현실에서 자유 시장과 자본주의는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주범입니다. 거대 기업은 어떻게든 환경 규제를 피하기 위해 난리법석을 부리고, 자본 친화적인 정부는 기업을 규제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은 경제 발전만을 위해 숲을 밀어내고 매연을 뿜습니다. 하지만 게임 <비욘드 어스>에서 자본주의 진영은 종종 자연 친화적인 성향을 선택하곤 합니다. 현실과 게임 설정의 괴리가 너무 크군요.


물론 게임은 게임일 뿐입니다. 게다가 <비욘드 어스>는 외계 행성을 개척하는 사이언스 픽션입니다. 사이언스 픽션의 설정은 현실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만약 자본주의 진영이 외계 행성을 개척한다면, 그 행성의 상황을 고려하고 환경 친화적인 길을 걸어갈 수 있겠죠. 만약 외계 행성에서 석유를 캐는 것보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다면, 자본주의 진영은 석유를 버리고 태양열을 이용하겠죠.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파괴하는 이유는 야생 동물들이나 울창한 숲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석유를 캐는 것보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것이 이윤을 더 많이 축적한다면, 자본주의 진영은 당연히 태양열을 이용할 겁니다. 현실 지구의 자본주의 진영은 석유를 좋아하고 태양열에 별로 관심이 없으나, 외계 행성의 자본주의 진영은 다를 수 있겠죠. 사이언스 픽션 속의 자본주의 진영은 현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똑같아야 한다는 법은 없죠. 하지만 저는 <비욘드 어스>의 설정에 별로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외계 행성의 자본주의 체계 역시 현실의 지구에서처럼 결국 자연 생태계를 무너뜨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진영이 친환경 동력원을 좋아한다고 해도 결국 자본주의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끊임없는 이윤 추구입니다. 그걸 위해 무조건 경쟁을 부추기고, 끊임없이 상품을 만들고, 대규모 소비를 조장합니다. 아무리 태양열을 이용한다고 해도 자본주의 진영은 마구잡이 생산과 대규모 소비를 조장할 테고, 그런 무분별한 체계는 자연 생태계에 아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겠죠. 자원의 가치가 하락한다면, 자본주의 진영은 그 자원을 더 많이 이용할 테고, 이건 결국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겁니다. 그저 석유나 태양열이냐, 이런 게 중요하지 않아요. 사회 구조와 체계의 작동 방식이 중요하죠.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를 주로 비판했으나, 중앙 집권적 단체들도 조화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중앙 집권적 구조는 엘리트들의 생존만을 추구할 테니까요. 저는 자연 친화적이라는 말이 '분산되고 평등한 권력 구조'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코토피아 비긴스>와 <홍수>는 그렇게 녹색 철학을 추구했을 테고, 가이아의 양녀들이나 테라 살붐 역시 그렇겠죠. (저는 아프리카 인민 연합이나 인테그르, 알 팔라가 조화에 가장 어울리는 단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비욘드 어스>는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저는 조화 성향보다 테라 살붐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