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F 생태주의

SF 소설 속의 학자 종족들 본문

SF & 판타지/유토피아

SF 소설 속의 학자 종족들

OneTiger 2017. 7. 21. 20:00

SF 소설 속에는 종종 학자 종족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학자 종족이고, 순전히 학구적인 분야에만 종사합니다. 현대 인류 문명도 지식인을 귀중하게 대접하지만, 인류 전체가 학자는 아닙니다. 지식인은 상당한 엘리트이고 꽤나 소수죠. 하지만 SF 소설 속의 학자 종족들은 종족 구성원 전부가 학자입니다. 이들은 생산적인 일이나 기타 소비적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습니다. 이 종족에게 농부나 어부, 목수, 광부, 은행원, 회계사 따위는 없을 겁니다. 가수나 배우, 운동 선수도 없을 겁니다.


농부와 어부 대신 식물학자나 해양학자가 있겠죠. 목수나 광부 대신 삼림학자나 지질학자가 있을 테고요. 은행원이나 회계사 대신 정치 경제학자나 경영학자가 있을 겁니다. 문화 학자들은 때때로 가수나 배우가 될 수 있겠으나, 그들의 목적은 공연이 아니라 연구일 겁니다. 이런 학자 종족은 취미 삼아 운동을 할 수 있으나, 그보다 경기 방식이나 근력 등을 연구하기 원할 겁니다. 이 학자 종족은 끊임없이 뭔가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 문명과 우주의 비밀을 밑바닥까지 밝히고 싶겠죠.



어떤 사람은 <유리알 유희>를 떠올릴 수 있으나, 학자 종족은 카스탈리엔 학교와 다릅니다. 이런 종족이 정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생명 활동을 거쳐야 합니다. 먹고 마셔야죠. 그렇다면 누군가가 먹을 것과 그 밖에 생활 필수품을 지원해야 합니다. 어쩌면 이 학자 종족은 기계를 만들고, 모든 생활 노동을 기계에 의지할 수 있습니다. 사실 SF 소설 속에서 여러 학자 종족들이 기술적 특이점을 지납니다. 기술적 특이점은 학자 종족의 필수 요건일 겁니다. 기술적 특이점을 지나지 않는다면,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하겠죠. 누군가는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공 지능이나 만능 기계가 등장한다면, 이런 기계들이 생활 노동에 종사할 겁니다. 학자 종족은 필요할 때마다 기계에게 먹거리나 의복이나 집이나 기타 필수품을 요구하겠죠. 기계는 군말없이 그 모든 것들을 제공하고요. 기계는 비단 생활 필수품만 아니라 연구 자료와 정보를 제공하거나 실험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학자 종족과 기계가 뭔가를 함께 작업하거나 철학적인 토론을 나눌지 모르죠. 물론 학자 종족은 기계가 아니라 하인 종족을 만들 수 있어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고, 그 생명체에게 봉사를 요구할 수 있겠죠.



기계를 만들든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든, 이런 것들은 어느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닐 겁니다. 아니, 학자 종족들은 사적으로 자산이나 생산 수단, 자원 등을 소유하지 않을 겁니다. 종족 구성원 전체가 학문에만 매달린다면, 그들은 생계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사적으로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구성원은 생산 수단을 소유한 구성원을 위해 일해야 할 겁니다.


만약 이 학자 종족이 사적 소유를 인정한다면, 종족 구성원들이 생계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도록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겁니다. 가령, 종족 전체가 평생 동안 부유한 연금을 받을 수 있겠죠. 설사 한 개인이 생산 수단이나 자원을 독차지한다고 해도 그 개인은 종족 구성원 전체에게 막대한 생산물을 나눠줘야 할 겁니다. 이런 방법은 사실 급진적인 사회적 공유나 분배에 가깝고요. 따라서 학자 종족들은 자동적으로 사회주의 종족이 되겠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말했던 공산주의 공동체의 이상이라고 할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성원이 아침에 사냥, 오후에 낚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산주의 인간은 생계 문제에 구속이 되지 않고,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이건 SF 소설의 학자 종족과 상당히 비슷하죠. 물론 학자 종족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을 따라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론과 학자 종족의 최종적인 모습이 서로 비슷할 뿐이죠.


어쩌면 사회주의의 미래는 이런 학자 종족일지 모르겠습니다. 현실 속의 사회주의는 생산 수단만 공유하자고 주장하지만, 사회주의는 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변증법 논리에 따르면, 사회주의 역시 계속 변하겠죠. 만약 생산 수단을 공유하는 사회가 계속 변한다면, 그 사회는 언젠가 학자 종족의 사회로 변할지 모르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꽤나 사이언스 픽션답습니다. 뭐, 미래를 바라보는 사상가들의 전망은 다들 그렇지만, 학자 종족이라니….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