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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좌파 성향과 사이언스 픽션 본문

SF & 판타지/장르 정의

좌파 성향과 사이언스 픽션

OneTiger 2017. 6. 22. 20:00

SF 소설은 특정 정치 성향과 어울릴까요. 어찌 보면 그런 듯하지만, 저는 SF 소설이 특정 정치 성향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파적인 SF 작가들도 많고, 좌파적인 SF 작가들도 많습니다. 따라서 SF 소설이 특별히 우파적이거나 좌파적이라고 말할 수 없겠죠. 언뜻 좌파는 SF 소설과 친숙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좌파는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좌파들도 많지만, 좌파는 진보적이라고 불리곤 합니다. 진보는 뭘까요. 앞으로 나간다는 뜻입니다. 미래적이죠. 미래적인 것은 사이언스 픽션과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진보와 좌파는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곤 합니다.


'진보 좌파'는 친숙한 용어입니다. <분배 정치의 시대>에서 제임스 퍼거슨은 일부러 좌파와 진보라는 용어를 구분했습니다. 사람들이 좌파와 진보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제임스 퍼거슨은 보다 명확한 개념을 위해 좌파와 진보를 구분했죠. 이처럼 진보와 좌파는 붕어빵과 팥소처럼 잘 어울리는 한쌍입니다. 많은 좌파들은 현재 체계를 바꾸고 싶어합니다. 그게 바로 우파와 좌파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우파와 좌파는 똑같은 문제에 접근해도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우파는 현재 체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급 그 자체를 뒤집지 않습니다. 우파는 지배 계급들이 좀 더 착하게 살기 원합니다. 반면, 좌파는 아예 계급을 뒤집거나 없애고 싶어합니다. 좌파는 체계가 모순을 일으킨다고 생각하고, 사회가 현재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무 대안 없이 그냥 현재 체계에서 탈피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대안이 없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겁니다. 따라서 좌파는 항상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면,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전망은 사이언스 픽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의 미덕 중 하나는 미래를 바라보는 전망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좌파 성향일 것 같으나…. 이런 미래 전망만이 사이언스 픽션의 전부라는 뜻은 아닙니다. 게다가 사실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맞추기보다 그저 여러 가능성들을 따집니다. 그 가능성이 맞든 틀리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능성을 탐구하는 행위 자체가 바로 사이언스 픽션의 매력입니다. 그 과정에서 독자가 주류적인 사고를 뒤집을 수 있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파적이든 좌파적이든.



우파 역시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파는 보수적이라고 불리지만, 미래의 변화에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물론 우파는 좌파처럼 체계의 급진적인 변화를 꿈꾸지 않습니다. 우파는 현재 체계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바랍니다. 자본가가 기술 혁신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거나 좋은 자본가가 선의의 행동을 한다거나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낙수 효과를 일으키거나…. 이런 것들이 우파의 사이언스 픽션이죠. 따라서 사이언스 픽션은 항상 좌파적이지 않습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진보적이고 좌파도 진보적이지만, 그건 사이언스 픽션이 항상 좌파의 담론을 따라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이언스 픽션은 미래를 전망하지만, 미래 전망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그보다 사이언스 픽션은 주류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기 원합니다. SF 소설은 미래가 반드시 특정적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우파 역시 사이언스 픽션으로 (체계 내부의) 변화를 꿈꿉니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좌파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우파 역시 사이언스 픽션을 이용해 얼마든지 자기들의 사상을 펼칠 수 있습니다. 우파는 기술 혁신을 통한 그야말로 자본주의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겠죠.



따라서 우파와 좌파는 저마다 자신만의 담론으로 사이언스 픽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좌파적인 부모가 메리 셸리를 낳았다고 해도, 허버트 웰즈가 페이비언 사회주의자였다고 해도, 쥘 베른이 네모 선장을 급진적인 인물로 그렸다고 해도, 그게 SF 소설이 좌파 담론을 따라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전적인 토마스 모어가 SF의 시초를 닦았고 좌파적이었다고 해도 사이언스 픽션이 한쪽(왼쪽)으로만 흘러간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우파적인 SF 작가들을 숱하게 언급할 수 있겠죠. 휴고상의 어원이 되는 휴고 건즈백은 좌파적인 성향과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음, 휴고상 시상식 때 여자 작가들을 경멸하는 집단이 난리를 부린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여자 작가들 역시 SF 출판계에서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하죠. 사이언스 픽션 자체는 우파든 좌파든 아무것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떤 평론가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특정한 성향으로 밀지만, 저는 그런 평론이 좀 엇나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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