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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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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장르 정의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의 아슬아슬한 경계

OneTiger 2017. 8. 18. 20:00

[게임 <스텔라리스>에서 함대와 싸우는 우주 드래곤! 이런 설정 역시 중세 판타지에서 비롯했겠죠.]



예전에 어떤 인터넷 평론을 읽었습니다. 그 평론은 판타지 소설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나열하더군요. 초기 소설부터 전성기 소설을 거치고 던전 크롤링 게임을 설명하고 21세기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기념비적인 판타지 작품들이 줄줄이 등장했습니다. 각종 신화를 제외하고, <공주와 고블린>, <걸리버 여행기>, <오즈의 마법사> 등은 초기 판타지입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초기 SF 소설로 불리기도 하죠.) <시간, 슬픔 그리고 가시> 3부작이나 <시간의 바퀴> 시리즈는 현대 서사 판타지를 구축한 장본인이고요.


<반지 전쟁> 3부작 역시 빼놓지 못하겠죠. 그 평론은 소설 위주로 이야기했으나, <던전스 앤 드래곤스> 게임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게임 자체의 영향력도 어마어마하고, <드래곤랜스> 시리즈나 <아이스윈드 데일> 시리즈 같은 걸출한 소설들도 있고요. <해리 포터>는 전형적인 서사 판타지가 아니지만, 21세기 판타지 소설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얼음과 불의 노래>는 그 자체적으로 21세기 초기 판타지의 초석이 되었고, <왕좌의 게임>으로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죠. 아마 <얼음과 불의 노래>는 <시간, 슬픔 그리고 가시>나 <시간의 바퀴>, <반지 전쟁>만큼 굳건한 판타지 소설로 자리를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평론이 잭 밴스나 어슐라 르 귄이나 앤 맥카프리, 로저 젤라즈니, 프랭크 허버트를 언급했다는 점입니다. 그 평론은 이들 작가를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으나, 판타지 소설의 역사에서 저런 작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나 차이나 미에빌, 제프 밴더미어 역시 그 평론의 목록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잭 밴스나 르 귄, 앤 맥카프리, 젤라즈니, 프랭크 허버트 등은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으로 유명합니다.


물론 그 평론은 어슐라 르 귄이나 로저 젤라즈니를 언급했다고 해도, <빼앗긴 자들>보다 <어스시의 마법사>에 주목했고 <내 이름은 콘라드>보다 <앰버> 연대기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이들 작가들은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의 경계선을 마음껏 들락거립니다. 어슐라 르 귄이나 로저 젤라즈니가 사이언스 픽션의 빛나는 보석이라고 해도 평론가들은 이들을 무조건 SF 작가로 분류하지 못할 겁니다. 잭 밴스나 액 맥카프리 역시 마찬가지죠. 아니, 조지 마틴만 해도 원래 SF 작가였습니다. 어떤 독자들은 왜 조지 마틴이 더 이상 SF 소설을 쓰지 않느냐고 불평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세계 SF 걸작선>에는 조지 마틴의 <두 번째 종류의 고독>이 실렸죠.



프랭크 허버트? <듄>은 언제나 서사 판타지 소설과 스페이스 오페라 사이에 서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이걸 서사 판타지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이걸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부릅니다. 사실 <듄>은 서사 판타지가 아닙니다. 분명히 설정이나 형식은 SF 소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엄밀한 과학 고증에 별로 기대지 않았기 때문에 평론가들은 <듄>을 판타지 소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댄 시몬스나 피터 해밀튼이나 이안 뱅크스, 켄 맥레오드의 스페이스 오페라는 분명히 SF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만, <듄>은 그런 소설들과 다릅니다. 이 소설은 차라리 아라비아 배경의 중세 검마 판타지처럼 보입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나 차이나 미에빌, 제프 밴더미어 역시 판타지 소설로 넘어가기 쉬워요. 아니, 사실 차이나 미에빌은 판타지 작가에 가깝습니다.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은 온갖 과학적 상상력을 선보였으나, 본질적으로 마법이 과학을 지배하는 설정입니다. 스팀펑크는 판타지와 사이언스 픽션이 될 수 있으나, <파반> 같은 소설과 달리 <퍼디도 정거장>은 판타지를 선택했어요. 러브크래프트는 다곤이 외계에서 왔다고 설정했으나, 역시 과학적 고증에 기대지 않았죠.



제프 밴더미어 역시 과학적 고증에 상관하지 않습니다. 일단 마법은 없으나, 기이한 자연 과학이 마법을 대신하기 때문에 밴더미어의 소설은 판타지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이런 사례들을 줄줄이 살펴보면, 정말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의 경계는 아슬아슬한 것 같습니다. 물론 엄연히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를 구분할 수 있으나, 종종 그 경계가 희미할 때가 있어요. 가령, <쿼런틴>은 누가 봐도 사이언스 픽션이죠. 하지만 이런 하드 SF 소설에서 벗어난다면, 사이언스 픽션은 판타지로 넘어갈지 모릅니다. 저는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을 좋아하기 때문에 <듄>을 사이언스 픽션이라고 주장하지만, 판타지 평론가들의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소설들이 <위자드리>나 <엔들리스 레전드> 같은 게임에 영향을 미쳤는지 모르죠. 이들 게임은 겉보기에 분명히 검마 판타지이나, 그 속에 사이언스 픽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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