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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설 은 화성인들의 사회를 둘러보는 지구인의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이 지구인은 화성인들의 사회주의 체계에 감탄하고, 지구인들의 사회주의 혁명에 안타까움을 느끼죠. 선구적인 화성인들의 사회주의와 달리 지구인들의 사회주의는 아직 어린애처럼 어설프게 보이거든요. 그런데 지구인 주인공이 화성인들의 사회를 둘러볼 때, 사람들은 계급 문제를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구인 주인공이 지구인들의 혁명을 지켜볼 때, 계급 투쟁은 아주 중요한 문제로 부상합니다. 농민 계급이나 노동자 계급이 좀 더 진보적으로 각성했을 때, 비로소 혁명의 불길이 번질 수 있었죠. 이와 달리 지구인 주인공과 화성인들은 사적 소유나 계획 경제, 자원 현황만 논할 뿐이고, 계급 문제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화성인들에게서 계급..
[게임 의 에코 세력. 오직 첨단 기술만으로 우리가 자연 환경을 보존할 수 있을까요.]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만 굴뚝이 없는 발전소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 '굴뚝 없는 발전소'는 화석 연료를 사용함에도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아요. 이 발전소를 구상한 개발자들은 온실 가스를 막기 위해 새로운 발전 시스템을 원했다고 합니다. 아마 탄소 채집 기술을 응용한 것 같습니다. 기존의 탄소 채집 기술은 별로 효율적이지 않지만, 이 신종 발전소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터빈을 돌립니다. 그래서 온실 가스를 적게 배출할 뿐더러 생산 단가가 아주 저렴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재생 에너지보다 훨씬 낫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발전소가 에너지 혁명이 될 수 있거나 획기적인 탄소 채집 기술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듯합니다...
[비록 이건 인공 생태계에 가까우나, 이런 탐험 역시 로스트 월드에 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코난 도일은 추리 소설과 SF 소설 양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들은 한 가지 업적을 남기기도 힘든데, 이 양반은 두 가지 영역에 큰 흔적을 남겼군요. 역시 대가는 다른가 봅니다. (하지만 이 양반의 제국주의 시각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겁니다.) 코난 도일은 추리 소설의 영역에서 와 을 남겼고, SF 소설의 영역에서 와 를 선보였습니다. 와 의 소재는 모두 탐험입니다. 전자는 백인 탐험대가 공룡을 찾기 위해 남아메리카 밀림을 탐험하고, 후자는 백인 탐험대가 어쩌다 깊고 깊은 해저 왕국을 탐험하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탐험대고, 우리나라 평론가나 팬덤은 이런 소설을 비경 탐험물이라고 부르더군요...
[영화 에 나오는 바쿠닌과 프루동. 진짜 무정부주의, 아나키즘은 이런 것이겠죠.] 종종, 아니, 자주 좌파들은 오해를 받곤 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는 사적 소유를 금지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을 읽어보면, 사실 공산주의자는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를 금지할 뿐입니다. 또한 환경 운동가들은 인간보다 자연을 더 중요시한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대기업들의 환경 오염은 빈민들, 원주민들, 흑인들, 여자들을 착취했고, 환경 운동가들은 여기에 분노합니다. 즉, 이들은 약자들을 지키는 것이지 자연 그 자체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 운동가들 중에서 저~기 어딘가에 있을 외계 생태계를 지키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정말 외계 생태계가 있는지 알 수 없을 뿐더러 거기에는 지켜야..
소설 은 말 그대로 인류와 도롱뇽의 전쟁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두 종족의 전쟁은 그리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도롱뇽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을 보면 이나 처럼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 도롱뇽들은 처음부터 인류에게 전쟁을 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노동자 신세였습니다. 도롱뇽들과 처음 조우한 인물은 진주 사업가였는데, 이 사람은 도롱뇽들이 잠수를 잘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도롱뇽들은 양서류 종족이니까요. 그래서 이 사람은 도롱뇽들을 잠수부 노동자로 써먹었습니다. 이게 인류와 도롱뇽의 최초 접촉이었죠. 그 이후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졌고, 도롱뇽들은 더 이상 하급 노동자로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끝내 그들은 인류와 적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게임 의 레인저. 이런 판타지 레인저는 멋집니다. 하지만 현실의 공원 경비대는….] 검마 판타지 창작물에서 레인저는 아주 멋지고 인상적인 인물들로 등장합니다. 레인저들의 특기는 은신과 정찰이고, 덕분에 오크나 해골 병사는 레인저를 보지 못합니다. 레인저는 울창한 나뭇가지와 덤불과 그늘 속에서 해골 병사를 추적할 수 있고, 해골 병사가 방심할 때 치명적인 화살을 날릴 수 있습니다. 혹은 덤불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고 쌍검을 휘둘러 해골 병사의 목을 딸 수 있습니다. 레인저는 숲 속의 날렵하고 재빠른 사냥꾼이고, 표범이 불시에 사슴을 기습하는 것처럼 악당들을 기습할 수 있습니다. 즉, 레인저는 자신이 공격을 받기 전에 적을 공격합니다. 아무 피해를 받지 않고 적을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적이 무엇을 하는지..
[게임 의 한 장면. 이런 장면은 생태학이 될 수 있으나, 환경 사회학이 되지 못하겠죠.] 종종 자연 과학자들은 정치나 경제를 이야기하곤 합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정치 체제가 과학과 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후 변화는 과학자들의 소관이기도 하지만, 환경 운동가들의 정치적 화제이자 대기업들의 경제 문제도 될 수 있죠. 어느 인터뷰에서 칼 세이건은 정치인들도 인지상정 때문에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할지 모른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연 과학자들의 의견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견해에 그칠 뿐이고,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지 못합니다. 자연 과학자들이 무지하다고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칼 세이건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아서 클라크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정말 무한한 깊이를 느끼곤 합니다...
[만약 이런 우주 함선이 생체 함선이라면, 이것 역시 바이오 웨폰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생체 병기는 사이언스 픽션의 오랜 소재입니다. 생체 병기는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생체 함선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바이오쉽 혹은 리빙 쉽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생체 병기는 바이오 웨폰이라고 불리는 듯하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바이오 웨폰은 미생물 병기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탄저균 무기처럼 생화학전에 속하는 무기를 바이오 웨폰이라고 부르죠. 제가 말하는 '생체 병기', 예를 들어 크고 작은 괴수 같은 것들은 바이오 웨폰에 속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따금 영어권 사람들은 인공적인 괴수를 바이오 웨폰이라고 부르지만, 바이오 웨폰이라는 단어는 괴수보다 바이러스, 포자, 박테리아 등을 가리킵니다. 가령, 누군..
은 잭 런던이 쓴 일종의 르포입니다. 잭 런던은 의 작가답게 가난한 계층에게 관심이 많았고, 본인이 그 삶을 직접 체험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지저분한 옷을 입고, 신분을 감추고, 직접 뒷골목이나 구호소를 전전했습니다. 가난한 계층이 얼마나 절박하고 비참하게 사는지 설명했고, 가난하지만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보여줬죠. 잭 런던은 그들이 문자 그대로 밑바닥에서 살아간다고 강조하기 위해 책의 제목을 이라고 지은 듯합니다. 어쩌면 이 밑바닥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영어권의 관용어일지 모르겠군요. 여하튼 저는 잭 런던이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가난한 계층은 이런 문구를 모욕적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밑바닥 사람들. 솔직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닙니다. 그냥 빈민, 하층민 같은 단어들이 훨..
공자는 "포악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독재나 부패 정치가 육식동물보다 훨씬 많은 고통을 양산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육식동물의 공포에서 매력을 느끼나 봅니다. 육식동물의 공포를 이야기하는 창작물들은 넘쳐나고, 대부분 이런 창작물들은 큰 인기를 끌지 못하지만 꾸준한 사랑을 받습니다. 그 가운데 종종 명작이 탄생할 수 있고요. 가 너무 인상적인 까닭에 '육식동물이 사람을 잡아먹는 이야기'는 너무 뻔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창작물들도 종종 번득이는 영감이나 발상을 선보이곤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주제나 사변, 사건 전개가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뻔한 소재라고 해도 창작가가 치열하게 고민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겠죠. 때때로 이런 창작물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