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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 판타지/개조 생명체들

바이오쉽과 바이오 웨폰

OneTiger 2017. 5. 27. 20:00

[만약 이런 우주 함선이 생체 함선이라면, 이것 역시 바이오 웨폰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생체 병기는 사이언스 픽션의 오랜 소재입니다. 생체 병기는 여러 종류로 나뉘는데, 그 중 하나가 생체 함선입니다. 영어권에서는 바이오쉽 혹은 리빙 쉽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생체 병기는 바이오 웨폰이라고 불리는 듯하지만, 사실 일반적으로 바이오 웨폰은 미생물 병기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탄저균 무기처럼 생화학전에 속하는 무기를 바이오 웨폰이라고 부르죠. 제가 말하는 '생체 병기', 예를 들어 크고 작은 괴수 같은 것들은 바이오 웨폰에 속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따금 영어권 사람들은 인공적인 괴수를 바이오 웨폰이라고 부르지만, 바이오 웨폰이라는 단어는 괴수보다 바이러스, 포자, 박테리아 등을 가리킵니다. 가령, 누군가가 "거대 괴수들은 외계인의 바이오 웨폰이야."라고 말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바이오 웨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거대 괴수보다 바이러스나 포자 등을 떠올리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물 무기와 생체 병기라는 단어를 엄연히 구분합니다. 생물 무기는 바이러스, 포자, 박테리아 무기를 가리키지만, 생체 병기는 창작물의 크고 작은 괴수들을 가리키죠. 사실 생체 병기는 일부 팬덤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영어권 사람들은 무수한 사이언스 픽션을 창작하지만, 생물 무기와 생체 병기처럼 단어를 구분하지 않는가 봅니다. 음, 어쩌면 영어권 팬덤에는 (생물 무기가 아니라) 생체 병기에 해당하는 단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어권 팬덤은 외계인의 거대 괴수를 바이오 웨폰이 아니라 다른 뭔가로 부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무슨 단어인지 알지 못합니다. 솔직히 생체 병기라는 단어도 얼마나 널리 쓰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SF 팬덤이 생체 병기라는 단어를 알까요? 어쩌면 SF 독자들은 그게 무슨 단어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어쩌면 SF 독자들도 생물 무기와 생체 병기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어쩌면 SF 독자들이 생체 병기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거대 괴수가 아니라 <화이트 플래그>나 <스탠드>나 <인간 종말 리포트>를 떠올릴 수 있죠. 물론 어떤 사람은 <에일리언 커버넌트>나 <퍼시픽 림>을 떠올릴 수 있죠. 전자가 더 많을지, 후자가 더 많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지한(?) 작가들은 <최후의 인간>이나 <화이트 플래그>나 <스탠드>나 <인간 종말 리포트>처럼 생물 병기를 주로 이야기할 뿐이고, 괴수물을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듯해요.



그래서 생체 함선은 위상이 독특합니다. 생체 병기 중에서 생체 함선은 좀 더 독특한 지위를 누립니다. 생체 함선이라는 단어는 생물 무기와 헛갈리지 않습니다. 생체 병기의 개념을 잘 모르는 사람도 생체 함선을 생물 무기와 헛갈리지 않겠죠. 사실 영어 위키피디아의 바이오 웨폰을 찾아보면, 그저 생물 무기만을 이야기합니다. 거대 괴수는 바이오 웨폰 항목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위키피디아는 현실이든 창작물이든 각종 바이러스와 포자와 박테리아 등을 이야기할 뿐입니다. 반면, 바이오쉽 항목에는 말 그대로 사이언스 픽션의 생체 함선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생체 무기는 많고 많습니다. 중형 동물도 있고 거대 괴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위키피디아 항목에 없더군요. 그저 유전자 조작이나 생물 공학 항목에 나올 뿐입니다. 독립된 항목이 없어요. 반면, 바이오쉽 항목은 존재합니다. 바이오쉽 항목은 독립된 항목으로 만들어질 만큼, 뭔가 독특한 위상이 있다는 뜻이죠. 아, 물론 영어 위키피디아가 사이언스 픽션을 전부 설명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키피디아는 꽤나 대중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바이오쉽의 위상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생체 병기보다 바이오쉽이 독특해 보이는 까닭은…. '배'야말로 사이언스 픽션의 오랜 로망이기 때문일 겁니다. 우주 탐사는 SF 소설의 가장 큰 모험이자 로망일 테고, 그래서 생체 함선(바이오쉽)이 다른 생체 병기보다 독특해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어 위키피디아의 바이오쉽 항목은 오직 생체 '우주선'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왕 바이오쉽을 말한다면, (우주선만이 아니라) 수상선이나 잠수함이나 비행선을 이야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잠수함이나 비행선도 분명히 쉽(배)니까요.


아서 클라크가 제임스 쿡의 인데버를 <라마와의 랑데부>에서 써먹은 것처럼, 데이빗 웨버가 스페이스 오페라를 이용해 범선 시대를 오마쥬한 것처럼, 로버트 하인라인이 <우주의 개척자>에서 위성 개척과 신대륙 개척을 비교한 것처럼, 우주선은 고전적인 수상선의 로망을 담았습니다. 그렇다면 생체 비행선이나 생체 잠수함도 바이오쉽 항목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TV Trope 같은 사이트는 그렇게 하더군요.) 음, 차이나 미에빌의 바스-라그 소설에서 거대 물고기가 화물선을 이끌거나 사람들이 거대 해양 괴수를 타고 항해합니다. 오오, 이런 설정들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이런 것들도 바이오쉽에 들어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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