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로스트 월드라는 장르 명칭 본문
[비록 이건 인공 생태계에 가까우나, 이런 탐험 역시 로스트 월드에 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코난 도일은 추리 소설과 SF 소설 양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남들은 한 가지 업적을 남기기도 힘든데, 이 양반은 두 가지 영역에 큰 흔적을 남겼군요. 역시 대가는 다른가 봅니다. (하지만 이 양반의 제국주의 시각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아야 마땅할 겁니다.) 코난 도일은 추리 소설의 영역에서 <바스커빌 가문의 개>와 <보헤미안 왕국의 스캔들>을 남겼고, SF 소설의 영역에서 <잃어버린 세계>와 <마라코트 심해>를 선보였습니다.
<잃어버린 세계>와 <마라코트 심해>의 소재는 모두 탐험입니다. 전자는 백인 탐험대가 공룡을 찾기 위해 남아메리카 밀림을 탐험하고, 후자는 백인 탐험대가 어쩌다 깊고 깊은 해저 왕국을 탐험하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모두 탐험대고, 우리나라 평론가나 팬덤은 이런 소설을 비경 탐험물이라고 부르더군요. 말 그대로 오지를 탐험한다는 뜻이죠. 비경 탐험 소설은 종종 SF 울타리를 벗어나지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끕니다. 고전적인 <해저 2만리>부터 <콩고> 같은 테크노 스릴러를 거쳐서 <테러 호의 악몽>까지 그렇죠.
해외 영어권에서는 이런 부류를 '로스트 월드 장르'라고 부릅니다. 코난 도일의 소설 제목과 똑같죠. 장르 명칭이 소설 제목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원래 영어권에 '로스트 월드'라는 문구가 존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로스트'가 가리키는 의미는 '잃어버렸다'가 아닐 겁니다. 백인 문명이 공룡 시대를 잃어버렸나요? 아니죠. 백인 문명이 해저 왕국을 잃어버렸나요? 그것도 아니죠. 차라리 잃어버렸다는 말보다 '사라졌다' 혹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따라서 로스트 월드는 '사라진 세계' 혹은 '미지의 세계'라고 번역해야 맞을 겁니다.
코난 도일의 소설도 <잃어버린 세계>가 아니라 <사라진 세계>가 맞을 듯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세계가 워낙 유명한 문구라서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게다가 사실 '비경 탐험물'이라는 용어도 그리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 디스토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펑크, 시간 여행 등의 장르 명칭은 널리 쓰이지만, 비경 탐험물은 그런 수준이 못 되는가 봅니다. 독자들이 <해저 2만리>나 <잃어버린 세계>를 그냥 탐험 소설 아니면 그냥 SF 소설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일반 문학 중에서도 탐험기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해외의 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스트 월드 창작물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지만, 정작 로스트 월드라는 용어 자체는 잘 쓰이지 않는 듯합니다. <잃어버린 세계>가 어떤 장르냐고 물어보면, 그냥 모험물(어드벤처) 혹은 탐험물(익스페디션) 정도로 대답하는 것 같습니다.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사이버펑크와 달리 머나먼 여행이나 탐험이라는 개념 자체는 19세기 이전에도 존재했으니까요. 가령, 인류가 세계 멸망을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고려하기 이전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각종 신화에서 묵시록을 이야기했고, 실제로 다양한 작가나 성직자가 종말 문학을 썼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문학이 주류로 자리잡지 않았죠.
반면, 여행기나 탐험기는 고대부터 존재했습니다. 사람들은 걸어서, 말을 타고, 배를 타고, 산을 건너고, 바다를 넘고, 평야를 가로지르고, 숲을 헤맸습니다. 여행자와 상인, 군인, 사자, 모험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썼고, 그게 바로 탐험기입니다. 16세기 이후 유럽에서 대양 항해를 시작했고, 유럽 범선들이 지구촌 곳곳을 누볐고, 탐험기는 커다란 유행으로 부흥합니다. 잘 알려진 <동방견문록>이나 각종 지리학 서적도 이런 탐험기의 일종이죠.
이런 탐험기에는 종종 기괴한 동물이나 민족이 등장합니다. 옛 사람들이 도대체 뭘 보고 그런 괴물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선원들의 미신이나 여행자의 오해, 악의적인 뜬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탐험기에 열광했습니다. 머나먼 이국,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 상상도 못할 생명체들 등등. 당시 유럽 사람들의 탐험기는 아마 작금의 판타지 소설과 위상이 비슷했을 겁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점점 발달했고, 19세기에 비로소 본격적인 SF 탐험 소설이 등장합니다. 이전 탐험 소설과 달리 이런 SF 탐험 소설은 과학적인 논리와 이성적인 사고로 무장했습니다. 어떻게 경이로운 세계가 존재하는지, 어떻게 인류가 거기까지 여행하는지 상세하게 밝힙니다. 코난 도일은 <잃어버린 세계>의 공룡 영토가 지리적 단절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쥘 베른은 <해저 2만리>에서 만능 잠수함을 타고 여행할 수 있다고 설정했습니다. 이런 논리와 사고 방식은 이전의 탐험 소설에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SF 소설이 막을 올렸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탐험기의 역사는 길고 깁니다. 그래서 SF 비경 탐험물이 등장한 이후에도 고전적인 탐험 소설은 계속 나왔습니다. 어떤 것은 SF의 영역에 속하고, 어떤 것은 살짝 애매하고, 어떤 것은 아예 SF 울타리 밖으로 나옵니다. <광기의 산맥>은 분명히 SF 소설입니다. 인간 탐사대가 외계인의 고대 유적을 탐험하니까요. 그런데 <광기의 산맥>은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을 오마쥬했습니다. 그리고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SF 소설… 이라고 하기가 좀 거시기하죠. 뭔가 환상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그걸 과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즉, 탐험 소설 중에는 SF와 판타지와 일반 소설이 섞였고, 그래서 로스트 월드라는 장르 명칭은 그리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습니다.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죠. 딱 부러지는 SF 장르가 아니니까요. 라이거 해거드의 <솔로몬 왕의 보물>이나 <그녀>에서도 백인 탐험대가 이국적인 열대 세계를 여행하지만, 이런 소설들의 분위기는 <잃어버린 세계>와 확연히 다릅니다. (단편적인 사례지만, 로스트 월드를 구글링하면, 장르 설명보다 코난 도일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옵니다.)
저는 로스트 월드라는 장르 명칭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 이유는 일반 탐험 소설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제 의견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겠죠. 음, 아마 전적으로 틀리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사이버펑크나 시간 여행물과 달리 앞으로도 로스트 월드는 SF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을 겁니다. 일반 탐험 소설이 계속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로스트 월드가 SF 영역에서 찬밥 취급을 당하지 않을 겁니다. 과학 기술은 갈수록 발달하고, 인류는 온갖 항공기, 선박, 우주선으로 신세계를 여행하니까요.
비록 밀림이 사라지는 중이지만, 우리는 아직 밀림의 비밀을 전부 풀지 못했습니다. 심해와 우주는 말할 것도 없어요. 인류는 부단히 탐험할 테고, 따라서 SF 비경 탐험물의 인기는 미래에도 식지 않겠죠. 사실 우주 탐사물이나 스페이스 오페라는 비경 탐험물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력의 임무>나 <라마와의 랑데부>는 하드하고 세련된 비경 탐험물이죠. <스타타이드 라이징>이나 <별을 쫓는 사람들>은 신나는 비경 탐험물이고요. 저 멀고 먼 외계 행성 또한 분명히 비경이니까요.
누구나 저 낯설고 적막하고 머나먼 세계로 떠나는 과정에서 마음이 설렐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비경 탐험물을 좋아합니다. 저는 주인공이 어느 도시나 마을에 붙어있는 것보다 어딘가 멀리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여타 장르에서도 탐험 요소를 기대하는 편입니다. 가령, <타임머신>은 포스트 아포칼립스인 동시에 멸망한 세계를 탐사하는 비경 탐험물입니다. 낯선 미래의 숲 속과 지하실을 방황하는 시간 여행자는 탐험가와 똑같죠. 그래서 <해변에서>를 읽을 때, 잠수함 항해 부분을 제일 재미있게 읽었고요. 잠수함 승무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 멸망의 풍경이란….
그냥 전세계가 죄다 망하고, 잠수함 홀로 쓸쓸히 항해하는 내용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뭐, 정말 그랬다면 외로움은 늘어도 감동은 다소 줄었겠죠. <해변에서>가 감동적인 이유는 파국 앞에서 담담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니까요. <안드로메다 성운> 같은 소설에서도 탐사대의 탐험을 기대했으나, 그런 부분이 적기 때문에 좀 실망했습니다. 뭐, 작가가 너무 탐험 이야기에만 매진했다면, 작품의 핵심 주제인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설명하는 부분이 줄어들었겠죠.
'미지와의 조우'는 SF 장르의 중점이고 꽃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미지와 조우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처럼 미지가 인류에게 직접 찾아올 수 있고, <뉴로맨서>처럼 인류가 직접 미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혹은 <별을 쫓는 사람들>처럼 인류가 미지를 향해 떠날 수 있죠. 여러 방법들이 있겠으나, 저는 그 중에서 인류가 미지를 향해 떠나는 방법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고전적인 탐험들, 알렉산더 훔볼트나 알프레드 윌리스나 게오르크 슈텔러의 탐험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탐험들이 SF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19세기의 여러 비경 탐험 소설을 읽어보면, 그런 경향이 뚜렷합니다. 물론 탐험은 정복과 수탈과 식민지로 이어지곤 했고, 비경 탐험 소설은 언제나 그런 주제들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라이더 해거드, 에드가 버로우즈, 데이빗 브린 등등 환상적인 모험물부터 하드한 스페이스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그렇습니다. 따라서 탐험 소설을 읽는다면, 언제나 작가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