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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스팀펑크 소설과 시대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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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펑크 소설과 시대상

OneTiger 2017. 4. 18. 20:00

[게임 <건스 오브 이카루스>처럼, 스팀펑크는 비교적 시대 고증에서 자유롭습니다.]



SF 장르는 시대상에 민감한 장르입니다. 모든 문학은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다른 장르 소설들도 시대상에 민감하겠지만, SF 장르만큼 민감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SF 소설은 논리적으로 가능성을 상상해야 하고, 덕분에 자주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SF 소설의 상상력은 틀릴 경우가 많고, 그래서 곧잘 퇴물이 되곤 합니다. SF 소설가들은 예언자가 아니고, 그 당시의 과학적 식견을 이용해 미래를 가늠할 뿐입니다.


아마 아무리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작가들도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이 엄청나게 퍼졌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은 분명히 첨단 통신 장비가 등장할 거라고 예견했으나,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 그릴 수 없었죠. SF 소설이 그리는 미래 시대는 고리타분한 과거가 되거나 그냥 평행 세계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SF 소설들이 이런 위화감(?)을 감수하지 않습니다. 테크노 스릴러 같은 하위 장르는 아주 가까운 미래나 현대를 배경으로 삼고, 너무 멀리 내다보지 않습니다. SF 특유의 이질적인 위화감이 없죠.



SF 소설 중에는 아예 과거를 배경으로 삼는 종류가 있습니다. 가령, 스팀펑크가 그렇습니다. 스팀펑크의 배경은 19세기 유럽입니다. 아니면 19세기와 비슷한 가상의 공간입니다. 19세기 독자에게 스팀펑크는 현재처럼 보일 수 있지만, 20세기 독자에게 스팀펑크는 과거 이야기일 뿐입니다. 비틀리거나 과장된 과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20세기 독자든 21세기 독자든, 스팀펑크를 위화감 없이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 스팀펑크 소설이 20세기 소설이든 21세기 소설이든 상관없을 겁니다. 


라마와의 랑데부> 같은 우주 탐사 소설은 미래를 잘못 예측할 위험이 있으나, <아누비스의 문> 같은 소설은 절대 그럴 위험이 없죠. <아누비스의 문>은 너무 판타지에 가까운 소설이라고 쳐도 <파반>이나 <마술사가 너무 많다>, <강철 의회> 같은 소설들도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어요. <강철 의회> 같은 소설은 설정상 자동 인형이나 인공지능, 신체 개조, 돌연변이 등을 포괄하고 일부분은 판타지보다 사이언스 픽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소설에게 <쿼런틴>처럼 미래 예측을 기대하는 독자는 없을 겁니다.



어쩌면 22세기나 23세기 독자들은 21세기의 우주 탐사물을 읽고 위화감을 느낄지 몰라요. 우리가 <2001 우주 대장정>을 읽고 '2001년이 지났으나 인간은 토성에 가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22세기 독자나 23세기 독자가 21세기의 스팀펑크를 읽어도 별로 위화감을 느끼지 않겠죠. 그냥 옛날 소설이라고 생각할 뿐이고, 설정 때문에 괴리를 느끼지 않을 겁니다. 22세기와 23세기에도 스팀펑크 소설은 계속 등장하겠지만, 그 소설들의 설정은 (몇몇 변화는 있겠으나) 20세기의 스팀펑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사이버펑크 소설은 시대상에 민감하고, 덕분에 <스노 크래시> 같은 소설이 사이버펑크의 대미를 장식했다 운운하지만, 스팀펑크는 그럴 염려가 없습니다. 사이버펑크 소설은 정보 기술의 발달을 꾸준히 따라잡아야 하지만, 스팀펑크는 그냥 19세기 기술 시대를 비틀거나 과장하면 그만입니다. 사이버펑크가 가상 현실과 인터넷을 절묘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면 독자가 외면할 수 있지만, 스팀펑크는 그렇지 않습니다. 뭐, 사실 사이버펑크가 무조건 현실의 인터넷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습니다. 소설은 소설이고, 작가는 현실과 얼마든지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가능성이고 재미입니다. 그래서 사이버펑크의 인기는 지금도 식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이버펑크 작가는 소설 설정을 짜면서 골머리를 좀 싸맬 겁니다. 사이버펑크 소설을 읽는 독자는 소설이 어느 정도 정보 기술을 예측하거나 반영하기 원할 테니까요. 작가는 현실의 정보 기술을 싸그리 무시하고 자신만의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겁니다. 그것도 가치가 있겠죠. 그래도 사이버펑크 소설들은 되도록이면 현실의 가능성이나 미래의 예측에서 너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스팀펑크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팀펑크 소설은 22세기나 23세기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흠, 소설 <호비트>는 1937년에 나온 소설입니다. 꽤나 오래 되었죠. 하지만 요즘 나오는 검마 판타지들이 <호비트>와 크게 다를까요. 저는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 물론 세세한 부분들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드래곤의 선한 측면, 다크 엘프의 영웅성, 흑과 백의 경계, 세분화된 인물들, 권선징악의 종말 등등 많은 것들이 바뀌었죠. 저는 검마 판타지 장르를 잘 모르지만, 그런 저조차도 검마 판타지가 1930년대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마틴의 소설들이 괜히 인기를 끌었겠어요. 하지만 21세기 독자는 <호비트>를 읽고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겁니다.



검마 판타지의 배경은 중세 유럽입니다. 간혹 유럽이 아닐 수 있으나, 어쨌든 13~17세기 시대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검마 판타지 소설은 과거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시대상에 민감하지 않을 겁니다. 21세기 독자가 <두 개의 탑>을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소설 설정 때문이 아닐 겁니다. <두 개의 탑>의 문체나 주제가 고풍스럽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25세기의 검마 판타지 소설들은 <호비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25세기의 검마 판타지 소설이 어떤 모습일지 참 궁금하지만, 오늘날의 각종 소설, 영화, 비디오 게임과 별로 다르지 않을지 몰라요.


그렇다면 25세기의 스팀펑크 소설도 오늘날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 있죠. 25세기의 스팀펑크 소설은 여전히 우중충한 대도시와 시커먼 매연과 크고 작은 비행선과 복고적인 첨단 병기와 개조 생명체를 이야기할지 모르죠. 그래서 어떤 평론가들은 스팀펑크 소설이 (사이언스 픽션이 아니라) 판타지라고 분류할 겁니다. 스팀펑크는 사이언스 픽션과 판타지의 경계선에 서있고, 작가와 설정과 줄거리에 따라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가령, <파반>이나 <모털 엔진>은 사이언스 픽션에 가깝고, <아누비스의 문>은 어디로 보든 판타지입니다. <마술사가 너무 많다>도 판타지에 가깝고요. 둘 중에서 스팀펑크는 판타지 쪽으로 기울 경우가 많죠.



스팀펑크 소설이 시대상에 민감하지 않다면, 작가는 굳이 가능성을 상상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우주 탐사물을 쓰는 작가는 엘론 머스크나 보이저 탐사선의 행보를 주목하겠지만, 스팀펑크 소설을 쓰는 작가는 그럴 필요가 없겠죠. 만약 21세기 작가가 우주 탐사물 소설을 쓴다면, 그 작가는 스마트폰을 소설 속에 집어넣을 겁니다. 적어도 소설 속 사람들은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알거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라마와의 랑데부> 같은 소설은 그런 기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죠. 아서 클라크가 그 소설을 쓸 때 스마트폰 같은 걸 꿈도 꾸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21세기 작가가 스팀펑크 소설을 쓴다고 해도 굳이 스마트폰 같은 걸 넣을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니, 스팀펑크 인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닌다면, 그 장면은 좀 어색할지 모르겠습니다. 뭐, 아예 불가능한 장면은 아닐 겁니다.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에는 인공지능이 나옵니다. 19세 방식의 인공지능이 나올 수 있다면, 19세기 방식의 스마트폰도 나올 수 있겠죠.


[게임 <건스 오브 이카루스>의 한 장면. 이런 스팀펑크는 상대적으로 시대 고증에서 자유롭습니다.]



스팀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첨단 컴퓨터나 태블릿 컴퓨터를 스팀펑크 디자인으로 꾸미곤 합니다. 황동 색감을 강조하고, 톱니바퀴를 여기저기 붙이고, 아르누보 문양을 장식하면, 멋진 스팀펑크 디자인이 탄생합니다. 구글링 이미지나 데이앙아트 등에서 조금만 검색해도 그런 스팀펑크 이미지를 실컷 구경할 수 있습니다. 스팀펑크를 쓰는 작가는 그런 디자인과 장치를 소설 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스팀펑크 소설은 현대 기술을 반영하거나 혹은 미래 기술까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작가가 아무리 미래의 가능성을 집어넣는다고 해도 스팀펑크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미래 예측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팀펑크 소설이 미래 가능성을 탐구해도 그건 우주 탐사물이나 사이버펑크와 전혀 다르겠죠. 이왕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우주 탐사물이나 사이버펑크가 훨씬 효과적인 수단입니다. 19세기 유럽을 배경으로 미래를 그릴 이유가 있겠어요. 가능성을 예측하고 싶다면, 우주 탐사물이나 사이버펑크처럼 미래를 바라보는 장르를 이용해야죠. 독자도 그런 소설들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팀펑크가 항상 비틀리고 과장된 19세기에만 갇혀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스팀펑크는 미래 가능성을 탐구하기에 조금 부적합한 수단일 수 있습니다. 우주 탐사물과 사이버펑크가 훨씬 나은 수단일 수 있습니다. 외계 행성으로 항해하는 소설을 쓴다면, 굳이 스팀펑크를 이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증기를 푹푹 내뿜으며 날아가는 항성간 우주선도 멋질 겁니다. (아아, 생각해 보니까 정말 로망일 듯.) 하지만 스팀펑크 우주선은 하드 SF 소설의 우주선과 확연히 다르겠죠. 그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재미 또한 달라지겠죠.


그래서 이왕 우주 탐사 소설을 쓰고 싶다면, 하드 SF가 더 어울리는 그릇이고요. 하지만 스팀펑크가 너무 고정된 영역에 매달릴 이유는 없을 겁니다. 사실 수많은 스팀펑크들이 그저 19세기에만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현실과 미래를 모색합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영원히 우주 활극에만 머물지 않은 것처럼, 스팀펑크 소설도 언제나 19세기 유럽 배경에만 갇혀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특성을 잘 드러내는 소설 중 하나가 (위에서 언급한) <퍼디도 정거장>이나 <강철 의회>를 비롯한 바스-라그 시리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소설들은 장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끔 저는 하드 SF 같은 스팀펑크 소설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게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누군가가 그런 소설을 썼을 수 있겠죠. 스팀펑크의 뻔한 배경에서 탈피하고 보다 다채로운 방법을 시도했을 수 있겠죠. 음, 이럴 때마다 부족한 지식과 빈약한 독서량이 아쉽군요. 제가 스팀펑크 소설을 많이 안다면, 좀 더 확실하게 담론을 펼칠 수 있을 텐데요. 만약 아직 아무도 그런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글쎄요, 22세기의 스팀펑크는 그런 모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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