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 평등 (206)
SF 생태주의
[생태학 SF들이 환경 오염들을 이야기한다면, 기후 정의는 여자 권리에 주목해야 할 겁니다.] 셸리 스트리비는 산 디에고 캘리포니아 대학의 문학 및 소수 민족 연구자입니다. 문학 연구자와 소수 민족 연구자로서 셸리 스트리비는 생태 유토피아가 오직 백인 남자만을 반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숱한 사이언스 픽션들은 상류층 백인 남자를 반영합니다. 메리 셸리가 SF 장르를 열어젖혔음에도, 여전히 숱한 사이언스 픽션들은 백인 남자 중심주의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19세기 서구에서 문학 작가들은 남자들이었고 여자들은 쉽게 철학이나 문학을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여자 철학자들이나 여자 작가들은 없지 않았으나, 그들은 주류가 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사이언티픽 로망스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
[이 애니메이션은 두 연인을 이야기하나, 나즈나의 시점보다 노리미치의 시점은 훨씬 두드러집니다.] 애니메이션 는 타임 슬립을 가미하는 연애 이야기입니다. 두 고등학생 나즈나와 노리미치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특히, 나즈나는 노리미치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댑니다. 노리미치는 나즈나에게 그저 희미한 동경을 품었을 뿐이나, 나즈나는 노리미치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시도하기 원합니다. 노리미치는 저도 모르게 상황에 이끌리고 나즈나와 함께 도망칩니다. 만약 상황이 다급하지 않았다면, 노리미치가 나즈나와 함께 도망쳤을까요? 그걸 확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즈나가 도망치자고 말했을 때, 노리미치는 영문을 알지 못했고 꽤나 당황했습니다. 나즈나는 도망치자고 계속 눈치를 주었으나, 노리미치는 나즈나의 마음을 제대로 알..
소설을 읽을 때, 독자들은 그게 좋은 소설이기 기대할 겁니다. 좋은 소설이 무엇일까요? 좋은 소설이 되기 위해, 소설이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요? 치밀한 줄거리? 뛰어난 개연성? 일관적인 시점? 논리적인 문체? 이런 것들은 좋은 소설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소설이 이런 것들을 갖출 때, 독자는 소설이 좋다고 평가할 겁니다. 만약 줄거리가 엉성하고, 개연성이 머나먼 안드로메다 성운으로 날아가고, 자꾸 산만하게 시점들이 바뀌고, 문체가 논리적이지 않다면, 독자들은 이런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아, 당연히 소설 주제는 일상적인 사고 방식에 부합해야 합니다. 소설 주제가 일상적인 사고 방식과 멀어진다면, 그 소설은 좋은 소설이 되지 못할 겁니다. 독자는 이런 소설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다시 읽지 말아야..
트럼프 시대에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작가, 마가렛 앳우드. 예전에 어떤 인터넷 서점은 이런 문구로 마가렛 앳우드를 홍보한 적이 있습니다. 왜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서 마가렛 애우드가 가장 두각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어쩌면 같은 소설은 근거를 댈 수 있을 겁니다. 는 에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소설이고 환경 보호와 페미니즘, 생물 다양성, 평등한 공동체를 외칩니다. 이런 주제들은 트럼프와 정반대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민들을 억압하고,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지지하고, 거대 자본 권력과 친하고, 성별을 차별하고, 기후 변화를 크게 무시합니다. 따라서 와 트럼프는 정반대이고, 트럼프 시대에서 를 쓴 마가렛 앳우드는 가장 두각을 드러낼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이건 좀 이상한 시각인지 모릅니다. 이 세..
※ 이 게시글은 코맥 매카시가 쓴 소설 와 영화 과 비디오 게임 의 결말을 누설합니다. 소설 와 영화 과 게임 는 서로 비슷한 장르이고 비슷한 내용을 다룹니다. 세 소설과 영화와 게임은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입니다. 동시에 와 과 는 방랑하는 어른 남자와 아이를 강조합니다. 무너진 인류 문명 속에서 어른 남자와 아이는 사방을 방랑합니다. 사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는 와 과 이외에 이런 방랑하는 어른 남자들과 아이들이 많습니다. 스티븐 킹이 쓴 소설 , 영화 , 비디오 게임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갈 수 있겠죠. 소설 는 광기 어린 집단 속에서 아이가 위험에 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영화 에서 밀라 쿠니스가 연기한 솔라라는 아이보다 처녀에 가까우나, 남자 어른 일라이를 따라 방랑하죠. 에서 아빠와 딸은 서..
소설 은 스팀펑크 판타지입니다. 은 단순한 스팀펑크 판타지가 아니라 수많은 유사 인간들을 뒤섞습니다. 중세 유럽 판타지들과 스페이스 오페라들이 숱한 유사 인간 종족들을 선보이는 것처럼, 역시 다양한 유사 인간 종족들을 선보입니다. 유사 인간(휴머노이드)이라는 표현은 다소 인간 중심적입니다. 이건 다른 종족들을 차별하는 표현입니다. 가상의 19세기 산업 도시에서 그들은 서로 뒤섞이고, 당연히 이건 숱한 갈등들과 차별들과 오해들을 부릅니다. 인간들은 보디야노이 같은 양서류 인간 종족을 차별하고, 군사 정부는 그걸 부추깁니다. 심지어 이건 파업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 파업 파괴자들은 보디야노이 파업 노동자들을 공격합니다. 인간들은 사막 가루다들을 몰아세우고, 조직 폭력배처럼 뒷골목에서 가루다들은 위계적으로 살..
※ 이 게시글에는 의 치명적인 결말 누설이 있습니다. 비디오 게임 에는 여러 개척 세력들이 있습니다. 에서 개척 세력들은 지구를 떠나고 외계 행성에 정착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개척 세력들은 똑같지 않고 다양한 사상들을 드러냅니다. 당연히 개척 세력들에 따라 외계 개척 사회들은 달라질 겁니다. 미국 개척 회사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지지합니다. 미국 개척 회사는 공공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엄청난 상권에 투자하고, 경제 구조를 휘어잡습니다. 이런 미국 개척 회사가 외계 행성에 정착한다면, 그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따를 겁니다. 그 사회 역시 민영화와 자유 방임 시장이 최고라고 여길 겁니다. 기업들이 산업 폐기물들을 버리거나 외계 야수들을 자극한다고 해도, 미국 개척 회사는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모..
옥타비아 버틀러가 쓴 은 SF 소설입니다. 수많은 SF 작가들과 독자들과 평론가들은 이걸 부정하지 않을 겁니다. 소설 은 SF 울타리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겠죠. SF 독자들은 이게 초인 소설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초인 소설은 SF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올라프 스태플던이 쓴 이나 시어도어 스터전이 쓴 나 스티븐 굴드가 쓴 같은 소설들처럼, 은 SF 초인 소설에 속합니다. 이 소설에는 여러 초인들이 나오고, 소설 주인공은 안얀우입니다. 안얀우는 아프리카 흑인 여자이고 동시에 동물들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치유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안얀우는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안얀우의 젖에게도 어떤 특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은 어떻게 안얀우가 동물로 변신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런 반인반수 외계인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인간과 동물을 연결하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만화 에는 타카니 메구미라는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타카니 메구미는 힐러입니다. 에서 온갖 칼잡이들은 열심히 싸우고, 만화 주인공 히무라 켄신 일행 역시 온갖 싸움들에 휘말립니다. 히무라 켄신과 조력자들은 온갖 부상들을 입고,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힐러로서 누군가는 활약해야 합니다. 타카니 메구미는 힐러 역할을 맡고 히무라 켄신과 다른 사람들을 치료합니다. 재미있게도 타카나 메구미는 여자 의사입니다. 은 메이지 유신이 열리는 시대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시대에 여자 의사로서 타카니 메구미는 히무라 켄신을 열심히 치료하죠. 게다가 메구미는 꽤나 성숙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훤칠한 키, 길다랗고 풍성한 머리카락, ..
※ 이재창이 쓴 소설 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소설 은 어떻게 인공 지능이 자아와 세계를 인식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은 기술적 특이점을 묘사하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작가 이재창은 오직 인공 지능에게만 몰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은 인공 지능보다 지구환이나 하늘 기관이나 게이트 우주선을 보여주고 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본다고 이야기합니다. 은 우주를 바라보는 동경을 담았습니다. 만약 이 소설에서 그런 동경이 없어진다면, 소설 분량은 꽤나 줄어들 겁니다. 어떤 독자들은 우주를 바라보는 동경이 군더더기라고 지적할지 모릅니다. 왜 기술적 특이점을 묘사하는 소설이 구태여 우주를 바라봐야 할까요? 인공 지능과 우주가 무슨 관계를 맺었을까요? 여러 우주 탐사 소설들이나 스페이스 오페라들처럼, 인류가 우주에 진출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