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 평등 (202)
SF 생태주의
SF 장르를 논의할 때 SF 우월주의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SF 소설은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보다 우월한가?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동의할지 모릅니다. 어떤 SF 독자는 SF 작가가 거시적인 세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SF 소설이 다른 환상 소설이나 주류 문학보다 우월하다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SF 소설이 환상 소설이나 공포 소설과 이웃이라고 해도, 장르 작가들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서로 비판하곤 합니다. (SF 울타리 안에서) 하드 SF 독자와 스페이스 오페라 독자가 싸울 수 있고, 서사 판타지 평론가가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을 비난할 수 있고, 하드 SF 독자가 공포 소설을 무시할 수 있죠. 그런 사례는 드물지 않습니다. 특히, 하드 SF 소설들이나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거창..
언젠가 이야기한 것처럼 사이버펑크 소설들은 '통 속의 뇌'라는 가정을 즐겨 이용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가상 세계에 갇혔다면, 그 사람은 가상 세계와 현실을 쉽게 구분하지 못할 겁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진짜 사물을 보고, 진짜 냄새를 맡고, 진짜 맛을 느끼고, 진짜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전부 착각입니다. 그 사람이 보고 맡고 느끼고 듣는 사물과 냄새와 맛과 소리는 전기적인 신호에 불과합니다. 가상 세계를 구현하는 중앙 처리 장치는 온갖 신호들을 보내고, 그 사람은 그저 전기적인 신호를 받을 뿐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현실을 느끼고 싶다면, 그 사람은 기계에서 뛰쳐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기계가 계속 진짜 같은 신호들을 보내기 때문에 그 사람은 기계에서 함부로 뛰쳐나오지 못합..
[유감스럽게도 19세기 비경 탐험 소설들에는 이런 여자 탐사 대원들이 없었습니다.] SF 평론가들은 메리 셸리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평가합니다. 은 그런 결과물이고요. 메리 셸리가 사이언스 픽션을 쓴다는 자각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테크노 스릴러 작가처럼 메리 셸리는 인조인간 이야기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를 쓴다는 자각이 없었을 겁니다. 나중에 쥘 베른이나 허버트 웰즈나 에드워드 벨라미 등은 자신들이 장르 작가임을 자각했으나, 메리 셸리는 그저 으스스한 소설을 썼을 뿐이죠. 그렇다고 해도 메리 셸리가 사이언티픽 로망스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장본인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메리 셸리는 여자죠. 흔히 사..
근대 이후 과학은 인류에게 새로운 이성과 계몽의 길을 열었습니다. (자연) 과학을 통해 사람들은 눈을 떴고, 과거의 구태의연하고 케케묵은 사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건 과학의 장점이나, 덕분에 사람들은 모든 것에 과학을 뒤집어 씌우기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 위해 다들 과학으로 포장합니다. 흠, 이것 역시 과학 만능주의라고 할까요. 다들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분명히 사회 과학적인 내용에 자연 과학의 포장지를 씌우곤 하죠. 는 진화 심리학과 성 차별을 논하는 책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성 차별을 진화적이고 유전적이고 태생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나, 이 책은 거기에 반박합니다. 오히려 이 책은 "성 차별이 문화적이고 후천적이고 사회적인 요소"라고 주장해요. 가령,..
SF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일까요. 아니, 비단 SF 소설만 아니라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가 선사하는 가장 큰 재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인간 이외에 다른 생명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생물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그 어느 생명체이든, 어쨌든 우리는 사이언스 픽션 속에서 여러 생명체들을 만날 수 있어요. 사실 우리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인간만 이야기하고 인간과 어울리고 인간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인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른 생명체를 무시하거나 외면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집중하는 동시에 얼마든지 다른 생명체들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 문명만 떠받들 이유가..
사이버펑크 소설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폭력을 즐기곤 합니다. 현실에서 살인은 돌이키지 못하는 죄악이나, 가상 현실 속에서 살인은 그저 전자 코드에 불과하죠. 가상 현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폭력들을 저지르고, 그런 내용은 사이버펑크 소설을 장식하곤 합니다. 특히, 비디오 게임 시장이 엄청나게 발달한 21세기에 그런 사이버펑크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일 겁니다. 사이버펑크가 죽었다는 선언만큼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과 가상 현실의 폭력은 비슷할지 모르죠. 솔직히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대중적인 비디오 게임들은 매우 폭력적입니다. 인기 순위 목록에서 상위권에 오른 게임들을 살펴보면, 뭔가를 죽이거나 파괴하는 비디오 게임들이 많습니다. 1인칭 사격 게임, 실시간 전략 게임,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
펄프 사이언스 픽션에서 비니키 여자들을 구경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적어도 펄프 SF 잡지들은 아슬아슬하게 차려입은 여자들을 표지 그림으로 내세웠죠. 이유는 뻔합니다. 성적 환상을 꿈꾸는 남정네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죠. 온갖 우주 활극들은 남자들이 활약하는 전투적인 놀이터이고, 따라서 남자들이 꿈꾸는 성적 환상 역시 포함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른바 펄프 SF 소설을 읽은 적이 없고, 정말 펄프 SF 소설들이 성적 환상들을 질펀하게 떡칠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표지 그림들만 요란할지 모르죠. 하지만 앙가슴과 허벅지를 자랑하는 여자들은 아무 이유 없이 표지 그림을 장식하지 않았을 겁니다. 펄프 SF 소설에서 비단 성적 환상만 문제까요. 인종 차별 역시 심각한 문제일 테고, 전통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을 비..
예전에 메갈리아 논쟁이 한창 시끄러웠을 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를 비난했고, 그들이 잘못했다고 떠들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비난하는 이유는 메갈리아가 매우 폭력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메갈리아는 험악한 단어들을 쏟아냈고,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퍼부었습니다. 그게 미러링 전술이든 어쨌든, 메갈리아는 굉장히 폭력적으로 보였고, 그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가 폭력적이라고 들먹였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유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메갈리아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메갈리아를 비난했을까요. 정말 사람들이 폭력을 반대할까요. 정말 그런 수많은 사람들이 폭력에 관심이 많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폭력에 반대하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
사이언스 판타지는 정치적 올바름에 휘말리기 쉬운 장르입니다. 사이언스 판타지에는 여러 종족들이 등장하고, 어떤 종족은 인종 차별이나 성 차별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검마 판타지 역시 별로 다르지 않죠. 가령, 백인 우주 탐사대가 어떤 외계 행성을 방문했다고 가정하죠. 그 행성에는 마치 흑인 원주민처럼 생긴 외계인들이 살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이 흑인 원주민처럼 생긴 외계인들은 성깔이 드럽고 못되처먹었기 때문에 선하고 정의로운 백인 탐사대를 공격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소설을 썼다면, 아마 그 소설은 정치적 올바름에 휘말릴 겁니다. 흑인 원주민을 차별하는 소설이라고 비판을 받겠죠. 그리고 정말 19세기부터 장르 소설가들은 그런 이야기를 썼습니다. 헨리 라이더 해거드부터 하워드 러브크래프트, 존 로널드 톨..
소설 는 토비와 렌이라는 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토비와 렌을 번갈아 조명하고, 어떻게 두 여자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지 보여주죠. 소설 배경은 폭력적인 디스토피아이고, 수많은 약자들은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토비와 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능력이나 힘이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아요. 토비는 어른이기 때문에 세상만사를 좀 더 자세히 꿰뚫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가혹한 시련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렌은 10대 소녀이고, 덕분에 세상 풍파에 그저 휩쓸릴 뿐입니다. 만약 렌이 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면, 목숨을 건지지 못했을지 몰라요. 아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좌절을 느꼈을지 모르죠.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토비와 렌 같은 평범한 여자는 성 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