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홍수>의 토비와 렌과 여성성 본문
소설 <홍수>는 토비와 렌이라는 두 여자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토비와 렌을 번갈아 조명하고, 어떻게 두 여자가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지 보여주죠. 소설 배경은 폭력적인 디스토피아이고, 수많은 약자들은 혼란 속에서 살아갑니다. 토비와 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능력이나 힘이 없습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아요. 토비는 어른이기 때문에 세상만사를 좀 더 자세히 꿰뚫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가혹한 시련에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렌은 10대 소녀이고, 덕분에 세상 풍파에 그저 휩쓸릴 뿐입니다.
만약 렌이 좀 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면, 목숨을 건지지 못했을지 몰라요. 아니,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좌절을 느꼈을지 모르죠. 이런 디스토피아에서 토비와 렌 같은 평범한 여자는 성 폭행 역시 피해가지 못할 겁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그런 과정을 거칩니다. 먹고 살기 위해 토비는 성 폭행을 견뎌야 했습니다. 자신이 의탁하던 공동체가 무너졌을 때, 렌은 매춘부가 되어야 했습니다. 렌은 매춘부가 되기로 선택했으나, 그건 엄연히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걸 선택했을 뿐이죠. 원래 렌은 생태주의 공동체에서 살기 원했어요.
이렇게 불공평하고 가혹한 사회는 여자들을 성적 상품으로 몰아갑니다. 먹고 살기 위해 토비는 불량배에게 자신의 몸을 바쳐야 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렌 역시 자신의 몸을 팔아야 했습니다. 두 여자에게 다른 방법은 없었고, 오직 자신의 몸을 팔아야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토비가 좀 더 안정적인 곳에서 일했다면,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렌 역시 안정적인 곳에서 지낼 수 있다면, 매춘부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작은 생태주의 공동체에서 지냈을 때, 두 사람 모두 아기자기하게 살아갔어요.
토비는 꿀벌과 버섯을 키웠고 약초들을 빻았습니다. 렌은 그저 아이였고, 아이처럼 보살핌을 받았죠. 그것뿐이었습니다. 생태주의 공동체에서 지낼 때, 토비는 자신의 몸을 남자에게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렌 역시 매춘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혼란스러운 상황과 디스토피아가 두 사람을 그런 극단적인 지경으로 몰아갔죠. 저는 그 디스토피아가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남자들은 자본을 거머쥐었고, 자본을 이용해 상품을 만듭니다. 여성은 그 구조 속에서 상품이 되고, 남자들에게 팔립니다.
이건 비단 SF 소설 속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자신이 SF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으나, 어디로 보나 <홍수>는 SF 소설이죠. 자신이 SF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마가렛 앳우드가 말한 이유는 이미 현실에 토비와 렌처럼 수난을 당하는 여자들이 널렸기 때문일 겁니다. 매춘부가 되든 잡지 화보를 찍든, 어쨌든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여성적이라는 매력은 아주 훌륭한 상품이 됩니다. 자본가들은 그걸 상품으로 만들고, 수많은 남자들은 여성적이라는 매력을 소비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자본가들은 남자들이죠. 종종 예외처럼 보이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일부러 자신의 몸매를 뽑냅니다. 잡지 화보를 찍거나 영화를 찍을 때, 그런 여자들은 앙가슴을 드러내거나 허벅지를 드러냅니다. 수영복을 입거나 노출이 심한 옷들을 입죠. 그런 여자들은 자신이 당당하게 여성성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당당하게 여성성을 드러낼 자유가 있다고 말하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도대체 '여성성'이 무엇일까요. 앙가슴을 드러내고 허벅지를 드러내고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입고 몸매를 과시하는 것. 그게 여성성일까요.
도대체 누가 그 여성성을 만들었을까요. 여자들이 원해서 몸매를 과시했을까요. 자신을 당당하게 강조하기 위해 몸매를 과시하기 시작했을까요. 아슬아슬한 비키니 수영복을 입으면, 그게 정말 여성성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질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점은 가부장적 구조와 자본주의가 강력하게 결합했고, 그래서 현재 수많은 여자들이 성 희롱과 성 폭행으로 고통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뭐, 힘이 있고 권위가 있고 유명하고 예쁘고 돈이 많은 여자들은 얼마든지 아슬아슬한 수영복을 입고 여성성을 드러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여성성을 따라가기 위해 힘이 없고 권위가 없고 평범하고 못생기고 돈이 없는 여자들은 죽도록 노력하거나 수치와 모욕을 감내하거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못 생겼다는 표현 자체도 웃기죠.) 왜 그렇게 여자들이 성형 수술에 목을 맬까요. 정말 그 많은 여자들이 자신을 당당하게 보이고 싶기 때문에 수술을 선택할까요. 누군가가 비키니 수영복과 여성성을 말하고 싶다면, 저는 먼저 토비와 렌과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구조를 고려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성성은 상품으로 팔리고, 그래서 여성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힘이 없고 돈이 없는 여자들은 자신을 고쳐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아니라 상품으로만 돌아가기 때문에.
여성 해방을 백 날 외쳐봐야 뭐 하겠습니까. 여자들은 돈이 없는데. 먹고 살기 위해 여자들은 남자와 자본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잘난 여성성은 그저 배부른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