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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디도 정거장>, 대안 공동체를 제시하지 않는 디스토피아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퍼디도 정거장>, 대안 공동체를 제시하지 않는 디스토피아

OneTiger 2017. 9. 30. 20:00

소설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은 추레하고 지저분한 디스토피아입니다. 이 소설은 뉴크로부존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배경으로 삼고, 그 도시를 통치하는 군부가 얼마나 부패하고 더럽게 굴러가는지 묘사하죠. 이득을 얻을 수 있다면, 시장은 서슴없이 폭력 조직과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폭력 조직이 도시 안에서 위험한 괴물들을 사육한다고 해도 시장은 딱히 상관하지 않아요. 심지어 시장은 기생 생명체나 외계 존재, 악마와도 협력하곤 합니다.


<퍼디도 정거장>은 판타지 소설인 만큼, 온갖 희한한 생명체들과 외계 존재들을 선보입니다. 그런 존재들은 인류에게 심각한 해를 미칠 수 있으나, 시장은 도시를 유지하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런 존재들마저 끌어당깁니다. 당연히 시장은 노동자들을 짓밟거나 유사 인간들을 무시합니다. 유사 인간 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을 때, 시장은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첨단 수발 소총과 기이한 마법과 이상한 괴물을 대동한) 군대를 투입했습니다. 군대는 노동자들을 무참히 짓밟았으나, 시장은 별로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아요. 폭력을 휘둘렀음에도 마치 평범한 의무나 일상을 이행한 것처럼 여깁니다.



도시에는 이런 군부를 고발하고 군부를 뒤집기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하 언론입니다. 꾸준히 신문을 발행하고, 신문을 통해 왜 군부가 추악한지 고발하죠. 주연 등장인물들 중 하나는 지하 신문 기자이고, 꽤나 비중이 큽니다. 하지만  이 신문 기자와 지하 언론을 볼 때마다 저는 좀 아쉽더군요. 신문 기자의 비중이 크다고 해도 지하 언론 자체는 그리 자세히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군부가 그렇게 악독하다면, 군부에 대항하는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가 나타날 겁니다.


만약 그들이 군부에 대항한다면, 자신들 나름대로 어떤 철학이나 전망이나 사회 공학을 꿈꿀 겁니다. 썩어빠진 시장을 몰아낸다고 해도 전부가 아니겠죠. 대안이나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런 대항 세력 역시 실패하고 말 겁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본주의나 대의 제도,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세력들은 다양한 전망들과 사회 공학들을 제시합니다. 그런 세력들은 단순히 자본주의나 대의 제도가 나쁘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기본 소득이나 추첨 민주주의나 노동자 평의회 같은 전망을 제시하고, 사회가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뉴크로부존에는 그런 세력이 보이지 않습니다.



뉴크로부존에도 정당이 있고 지하 언론은 그런 정당을 지지합니다. 하지만 그런 정당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그들이 무슨 전망이나 대안을 추구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퍼디도 정거장>은 전반적으로 어떤 과학자와 예술가, 신문 기자를 따라갈 뿐이고, 정당이나 지하 언론을 자세히 조망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도시가 부패했는지 자세히 보여주나, 그 도시에 대항하는 세력을 자세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부정은 난무하는 반면, 긍정은 그리 보이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 소설은 추악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이야기하나, 동시에 대안이나 전망을 제시할 수 있어요. 가령, <홍수> 역시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환경이 너무 심하게 오염되었고, 자본주의는 도처에서 폭력들을 키웠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 소설은 신의 정원사들이라는 집단을 자세히 조망하고, 그들이 어떤 이상이나 전망을 제시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정원사들은 암울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적극적으로 뒤집지 못하나, 적어도 약자들을 보호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저도 모르게 그런 삶을 따라갑니다.



<퍼디도 정거장>에는 그런 세력이나 공동체가 없고, 따라서 어떤 전망이나 이상이 없습니다. 그저 추악하고 위협적인 현실만 강조할 뿐입니다. 막판에 가루다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그게 일종의 전망이나 대안처럼 보이나, 소설에 전반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을 감싸기에 부족한 듯합니다. 물론 디스토피아 소설이 항상 전망이나 대안을 제시하거나 대항 세력을 그려야 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어쩌면 차이나 미에빌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현실을 강조하기 원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이른바 '바스-라그 시리즈'는 <퍼디도 정거장> 이외에 <상처>와 <강철 의회>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소설들 속에서 저항 세력이 보다 자세히 등장할지 모르죠. 저는 아직 <상처>와 <강철 의회>를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자세히 말하지 못하겠군요. 어쨌든 <퍼디도 정거장>에서 그 점이 아쉬웠습니다. 폭력만 계속 등장하고 그 폭력에 저항하는 세력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피곤하고 지친다고 할까요. 저는 이런 디스토피아 소설이 문제만 제기할 뿐만 아니라 이상까지 함께 제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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