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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상인>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와 환경 문제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우주 상인>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와 환경 문제

OneTiger 2017. 8. 24. 20:00

소설 <우주 상인>은 거대 기업의 횡포와 오염, 수탈을 이야기합니다. 소설 속에서 거대 기업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모든 것들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해요. 거대 기업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의원들을 배정하고, 대통령은 허수아비와 다르지 않습니다. 무분별한 생산과 대규모 소비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고, 특히 광고는 이런 사고 방식을 더욱 부추깁니다. 상품이 자본주의 체계의 혈액이라면, 광고는 자본주의 체계의 꽃이고 윤활유입니다.


광고는 소비자들을 부추기고, 소비자들은 더 많은 상품을 사고, 그 몫은 모두 기업의 호주머니로 들어가요. 소설 주인공은 광고 회사의 직원이죠. 현대 자본주의 체계와 광고는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자본론> 같은 책에서 자본의 작동 구조를 배우곤 하나, 19세기는 오늘날처럼 어마머마한 광고를 활용하지 않았죠. 광고는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일 겁니다. 아마 그래서 필립 딕 같은 작가도 정신병을 유발하는 광고 로봇을 이용해 자본주의 체계를 풍자하는 소설을 썼겠죠.



소설 주인공이 속한 광고 회사는 자본주의 체계의 착취와 수탈에 이바지합니다. 기업의 자유주의(강한 기업이 노동자들을 수탈하고 마음대로 돈을 벌 수 있는 자유)가 판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노예처럼 고생합니다. 광고 회사 직원은 그런 현실에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좀 더 자극적인 광고를 펼칠 수 있을지 고민하죠. 하지만 곧바로 이 직원은 커다란 난관을 만납니다. 이런 착취적인 체계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저항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으레 이런 소설에서는 거대한 악이 난리법석을 부릴 때, 거기에 대항하는 저항 세력이 등장하곤 하죠. 콘지라고 불리는 비밀 조직이 바로 그 저항 세력입니다. 콘지는 콘서베이션의 별명이고, 따라서 이 저항 세력은 환경 보호론자들입니다. 이 무지막지한, 우주로 뻗어가는 자본주의 체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환경 보호론자들입니다. 왜 <우주 상인>의 두 작가, 프레데릭 폴과 시릴 콘블루스는 환경 보호론자들을 자본주의 체계와 싸우는 저항 세력으로 설정했을까요. 글쎄요, 저는 그 이유를 확실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자연 환경을 지나치게 오염시키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겠죠.



소설 속에서 거대 기업들은 자연 환경을 무분별하게 약탈합니다. 깨끗한 물은 부족합니다. 원목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급 보석과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어쩐지 머릿속에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 떠오르는군요.) 음식들은 전부 합성 제품입니다. 석유는 밑바닥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에너지 대신 인력을 이용합니다. 이런 풍경들은 디스토피아 세계의 일상들을 드러냅니다. 물도 없고, 나무도 없고, 천연 작물도 없고, 석유도 없습니다. 환경 보호론자들이 분노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죠.


그렇다고 해서 프레데릭 폴과 시릴 콘블루스가 자본주의와 생태 문제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두 작가는 깊은 고민이 없이, 그저 안일하게 디스토피아와 저항 운동을 설정했는지 모르죠. 하지만 (두 작가의 의도와 별개로) 이 소설은 환경 운동이 그저 개인적인 실천만 강조하지 말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환경 문제는 그저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쓰레기를 버리거나 자원을 낭비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와 그걸 옹호하는 자유주의의 문제입니다. 즉, 자본주의를 처단하지 않는다면, 환경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이건 SF 소설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지금도 물은 엄청나게 오염되거나 낭비되고,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고생합니다. 민영화를 주장하는 기업들은 깨끗한 물을 빼앗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아먹습니다. 기업들은 대규모 기름 야자 농장을 짓기 위해 천연 밀림을 함부로 밀어버립니다. 핵 폐기물이 미래 후손들을 위협할지 모르지만, 핵 마피아들은 이윤을 쌓기 위해 핵 발전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위험하다고 외치지만, 거대 자본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각국의 지도자들 역시 자본의 편입니다. 경제 성장에 얽매이는 사람들은 거대 자본이 이윤을 벌어야 자신들도 분배를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거대 자본이 이윤을 벌 때, 수많은 빈민들과 자연 환경이 수탈을 당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간접적으로 착취한다는 현실을 깨닫지 못하죠. 저는 프레데릭 폴과 시릴 콘블루스의 속내를 잘 모르겠으나, <우주 상인>은 핵심을 제대로 짚었습니다. 친환경 전구를 이용하자는 개인적인 운동은 그리 실효성이 없습니다. 그런 운동의 소소한 가치도 중요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담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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