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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크로부존과 도시 건설 비디오 게임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뉴크로부존과 도시 건설 비디오 게임

OneTiger 2018. 1. 12. 19:49

[구태여 이런 디스토피아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도시는 디스토피아적으로 확장했습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대도시를 여러 방법들로 묘사하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 <언런던>, <크라켄>, <이중 도시> 같은 소설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도시를 조명하죠. <언런던>에서 또 다른 런던은 밑바닥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입니다. <크라켄>에서 온갖 희한한 사람들이 런던에 우글거리고 누군가는 거대한 두족류 신이 세상을 멸망시킬 거라고 떠듭니다. <이중 도시>에서 시민들은 다른 도시를 외면하기 위해 기이한 풍습을 형성해요. 저는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소설이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 뉴크로부존은 각종 부패들이 모이는 온상 같습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산업 폐기물들을 배출하고, 시장은 폭력 조직들과 결탁하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과 빈민들을 몰아내고, 인간들은 다른 지적 종족들을 차별합니다. 도시는 여러 구역들로 갈라지고, 가난한 지역과 부유한 지역과 인간 지역과 다른 종족들의 지역과 지저분하고 음침한 하수구와 번화가들이 서로 대립합니다. 차이나 미에빌은 기괴한 상상력과 실제 런던을 멋지게 혼합했어요. 데이빗 하비 같은 도시 지리학자가 이 소설을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어쩌면 데이빗 하비는 노동과 빈곤에 따라 도시가 폭력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할지 모르죠.



노동과 빈곤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도시는 절대 평화롭게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뭐, 인류 역사에서 지배 계급이 문명을 이끄는 동안 무엇 하나 평화롭게 성장하지 않았죠. 거대 건축물들은 억압을 상징합니다. 흔히 우리가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거대 건축물들은 절대 평화롭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노예들이나 노동자들은 피땀으로 그것들을 지었죠. 고대 콜로세움부터 현대 부르즈 할리파까지, 언제나 거대 건축물들은 억압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콜로세움을 불가사의라고 부르거나 부르즈 할리파를 랜드마크라고 부르면서 감탄합니다.


지배적인 관념은 사람들이 노동과 빈곤에서 관심을 돌리도록 유도하고, 그래서 다들 계급 투쟁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계급 투쟁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콜로세움과 부르즈 할리파에서 죽어간 노예들과 노동자들을 잊지 말아야 하겠죠. 문제는 수많은 대중 매체들이 도시 건설을 마치 평화로운 과정인 것처럼 묘사한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들은 도시 건설 비디오 게임이 교육적이고 평화롭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전략 게임이나 대전 격투 게임이나 사격 게임보다 도시 건설 비디오 게임이 평화롭다고 말합니다.



언뜻 도시 건설 게임은 정말 평화로운 것 같습니다. 샌드 박스 게임들은 참으로 평화로워 보입니다. 샌드 박스 게임들은 뭔가를 짓고 만들기 때문에 죽음이나 파괴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입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 <심시티> 시리즈가 있죠. <심시티>는 뭔가를 죽이거나 파괴하지 않습니다. 설사 파괴한다고 해도 액션 게임이나 사격 게임이나 전략 게임과 달리 파괴는 핵심적인 목표가 아니죠. 오히려 플레이어는 여러 건물들을 짓고 거대한 도시를 확장합니다.


온갖 1인칭 사격 게임들이나 유사 로그 게임들이나 실시간 전략 게임들이 피칠갑을 해대는 반면, 이런 샌드 박스 게임들은 피를 뿜지 않고, 게임 플레이어는 피칠갑을 구경하지 못합니다. 게임 제작진들도 애초에 피칠갑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런 샌드 박스 게임들은 꽤나 건전하고 평화로워 보입니다. 아마 비디오 게임이 폭력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이런 샌드 박스 게임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못할 겁니다. 게다가 이런 샌드 박스 게임들이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레고 같은 완구가 교육적인 것처럼 <심시티> 같은 샌드 박스 게임들도 교육적이라는 뜻입니다. 뚝딱뚝딱 건물들만 짓는 과정을 보면, 그 말이 사실 같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시를 확장하는 행위는 상당히 폭력적입니다. 데이빗 하비가 늘상 지적하는 것처럼 도시는 상당히 폭력적인 공간이고 폭력적으로 성장합니다. 도시에서 부자들은 빈민들을 오염 지역으로 몰아내고, 자신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짓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파라다이스에 감히 접근하지 못합니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들과 건물들을 부양하고, 그래서 막대한 물과 식량과 동력을 소비해야 합니다. 이런 소비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환경 오염으로 이어지죠. 뉴크로부존이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지저분하지 않을 겁니다. 도시를 확장하기 위해 사람들은 계속 숲을 밀어내고 동물들을 학살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들은 자연이 도시를 뒤덮는 장면들을 자주 묘사합니다.


거꾸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도시가 확장할 때마다 자연이 사라진다는 뜻이겠죠. 도시와 자연을 완전히 구분하기는 불가능하겠으나, 도시가 늘어날수록 분명히 커다란 야생 동물들은 사라집니다. 따라서 도시를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시민들은 여러 노동이나 오염 상황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문제는 자본주의 체계 속에서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도시를 소유하나요? 누가 도시를 계획하죠? 시민들이 평등하게 도시 유지와 확장에 참가할 수 있을까요? 도시와 자본주의가 무슨 관계를 맺었는지 고려하지 않는다면, 도시라는 지리적인 공간의 진짜 면모를 볼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도시 건설 게임이 평화적이라는 말이 좀 어색하게 들립니다. 아, 건설 게임 자체는 평화적입니다. 게임 속에서 뭔가를 뚝딱뚝딱 짓는 행위 자체는 전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떻게 도시들이 성장했는지 살펴본다면, <심시티> 같은 게임이 좀 우스꽝스럽게 보일 겁니다. 건설이라는 행위만 강조하고, 건설을 둘러싼 제반 상황들을 쏙 빼버리기 때문이죠. <심시티>가 나쁜 게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어떻게 창작물이 현실의 모든 면을 반영할 수 있겠어요. <심시티>는 그저 레고 조립을 강조할 뿐이고, 그런 역할에 충실한 좋은 게임이에요. 하지만 만약 창작물을 이용해 도시를 이야기한다면, 저는 <심시티>보다 <페르디도 거리의 기차역> 같은 소설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레고 조립 놀이로 도시라는 공간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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