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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사회 구조를 주목하지 않는 <청의 6호> 본문

SF & 판타지/디스토피아, 아포칼립스

사회 구조를 주목하지 않는 <청의 6호>

OneTiger 2018. 1. 20. 12:18

[거대 고래 잠수함은 인상적이었으나, 이 애니메이션은 자본주의 문제에 절대 관심이 없어요.]



예전에 <청의 6호>라는 OVA에 생체 잠수함이 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체 잠수함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으나, 솔직히 애니메이션 자체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어요. 멋지게 폼을 잡고 쓸데없는 헛소리를 나열하는 이야기에 시간을 낭비하기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청의 6호>를 보기 전에 몇몇 감상평을 읽었습니다. 역시 진부하고 편파적인 의견을 읊어대는 창작물에 불과한 것 같더군요. 애니메이션의 핵심 주제는 환경 오염입니다. 환경 오염이 너무 심해졌기 때문에 어떤 천재 과학자는 남극 기지를 탈취했고 거기에서 각종 수인들과 생체 병기들을 만들었습니다.


과학자는 기후 변화를 일으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수장시켰습니다. 경악스러운 사건이죠. 미치광이 과학자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고 바다가 대륙들을 집어삼키기 바랐습니다. 청이라는 집단은 이런 악랄한 계획에 맞서 싸우고, 청의 6호는 청이라는 집단에 속한 잠수함들 중 하나입니다. 미치광이 과학자는 도시나 군사 기지를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생체 병기들을 만들었고, 6호 역시 그런 생체 병기들과 싸웁니다. 특히 무스카라는 거대한 인공 고래는 꽤나 파괴적인 괴수입니다.



생체 잠수함이라는 소문과 달리 무스카는 잠수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보다 거대 괴수에 가까웠어요. 무스카 자체는 잠수함만큼 거대한 고래이고, 빠르게 헤엄치거나 강력한 음파를 쏠 수 있습니다. 잠수함이 어뢰를 쏜다고 해도 무스카는 그걸 유연하게 회피할 수 있고, 파괴적인 음파는 잠수함을 깨뜨릴 수 있어요. 무스카는 분명히 대단한 괴수이나, 제가 기대하는 생체 잠수함과 많이 달랐습니다. 사실 이런 동물을 배라고 부르지 못할 노릇이겠죠. 무스카가 어설프거나 얄팍한 설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소문을 듣고 너무 기대한 제 자신이 잘못이죠.


저는 단순한 괴수가 아니라 생체들로 이루어진 함선을 기대했습니다. 생체 조직들이 함선을 이루는, 그런 설정을 보고 싶었어요. 무스카와 잠수함이 싸우는 모습은 굉장하게 보였으나, 괴수와 잠수함이 싸우는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악당들의 주력함 유령선 역시 생체 전함이 아니더군요. 그저 거대한 고래가 전함을 등에 매달았을 뿐이었어요. (어쨌든 전투 장면에서 흐르는 경쾌한 음악은 꽤나 거슬렸습니다. 왜 다들 전투 장면에 멋지거나 신나는 음악을 집어넣는지…. 전쟁이 애들 장난처럼 보이나.)



솔직히 저는 <청의 6호>를 끝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 돈이 아까워도 끝까지 보기가 힘들더군요. 유치찬란한 고문이라고 해야 할까요. 물론 이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을 겁니다. 취향은 각자 다르겠죠. 만약 <청의 6호>가 헛소리들을 열심히 늘어놓지 않았다면, 저는 끝까지 봤을 겁니다. 하지만 이 OVA 역시 탐욕스러운 인류가 환경을 오염시켰다고 운운합니다. 흔한 개똥 철학이죠. 정말 탐욕스러운 인류가 자연 환경을 오염시켰나요? 그 탐욕스러운 인류가 누구입니까? 누가 인류이고, 누가 인류가 아닙니까? 자연 환경을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아닌가요?


이 세상에는 환경 운동가들이 많고, 자연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경 보호에 관심이 없으나, 그런 사람들 역시 무분별한 벌채나 핵 발전소나 온실 가스를 좋게 생각하지 않아요. 게다가 이 세상에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빈민들 역시 수두룩합니다. 그런 빈민들은 자연 환경을 오염시키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어요. 자, 이런 수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아닌가요? 당연히 그들은 인류입니다. 하지만 왜 <청의 6호>는 탐욕스러운 인류를 주절거리나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청의 6호>가 계급 투쟁과 자본주의를 주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 환경이 오염되는 이유는 인류가 탐욕스럽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력을 주체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벌채를 하고 싶지 않아도, 핵 발전소를 짓고 싶지 않아도, 공장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 임금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매달려야 합니다.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계속 단기적인 이윤에만 매달려야 합니다.


자연 환경을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심지어 자본가들조차 자연 환경을 지키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체계는 그걸 막습니다. 따라서 <청의 6호>는 사회 구조를 지적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죠. 저는 OVA 제작진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인민들이 무슨 잘못이겠어요. 비논리적인 사회 구조를 숭배하는 기득권들, 특히 지식인(을 빙자하는 사기꾼들)이 문제죠. 그런 지식인들이 지배 계급에게 굴종하기 때문에 OVA 제작진 역시 헛소리를 믿었겠죠. <청의 6호>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 역시 헛소리를 믿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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