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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느끼고, 맛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눈과 코와 귀와 피부와 혀는 다양한 정보들을 종합하고, 뇌는 그런 정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먹거리를 찾거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우리 뇌가 인식하는 세상과 다르다면, 우리는 생존하지 못했을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존한다는 뜻은 우리가 세상을 제대로 인식했다는 반증이겠죠. 하지만 이게 완벽한 반증일까요. '통 속의 뇌'는 유명한 사고 실험입니다. SF 소설들 역시 통 속의 뇌를 이용하곤 하죠. 흔한 사이버펑크 소설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등장..
기독교 문명에서 성탄절은 아주 중요한 축일입니다. 성인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생일이기 때문에 다른 축일보다 의미가 더 크죠. 게다가 20세기 이후, 성탄절은 연말과 겹쳤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휴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탄절이라는 표현보다 성휴일(해피 홀리데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기독교 신도가 아닌 사람들 역시 성탄절을 많이 기다릴 겁니다. 나라마다 연말 휴일을 즐기는 방법은 다르겠으나, 어쨌든 사람들은 휴일을 바라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대로 놀고 싶다면, 휴일이 유일한 희망이죠, 뭐.)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은 바쁘게 휴일을 준비합니다. 수많은 상점들은 연말 휴일을 대목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축제가 벌어지고,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몰립니다. ..
르네 바르자벨이 쓴 은 소설 내용이 무엇인지 제목으로 드러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죠. 엄청난 재난은 문명을 덮치고, 쓰러지는 문명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문명이라는 안락한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기 원하나, 엄청난 재난은 그들을 계속 문명 밖으로 몰아갑니다. 사람들은 결국 안락한 울타리에서 쫓겨나고, 온갖 가혹한 상황들에 직면합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서 그들이 뒤집어썼던) 가면과 위선과 형식을 벗어던지고 본모습을 드러내죠.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보여주는 여러 특징들 중 하나는 이겁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인류 문명을 무너뜨릴 수 있고, 그래서 다양한 가면과 위선과 형식을 벗길 수 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이른바 문명인을 순식간에 야만인으로 몰..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러니까 미치광이 과학자는 SF 소설 속에서 흔한 소재입니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무조건 미친 과학자라고 번역한다면, 그건 오류일 겁니다. 종종 미친 과학자보다 사악한 과학가 더 어울리는 번역 같습니다. 아니면 외골수에 빠진 과학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 방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소설 에 등장하는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조인간의 이름이라고 오해하는, 그 이름으로 불리는 인물이죠.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미친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일반적인 기준에서 '미쳤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그보다 프랑켄슈타인은 너무 한 가지 길에 빠졌고, 그래서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죠. 그런 외골수는 결국 프랑켄슈타인을 파멸로 이끌었고요. SF 평론가들은 메리 셸리를..
[이런 장면은 비경 탐험 소설들과 비슷하나, 는 소설이 아니라 영상 중심적인 매체죠.] 제프 밴더미어가 쓴 은 SF 소설일까요. 흠, 어쩌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사실 이 소설에 치밀한 상상 과학은 없습니다. 그런 것을 찾고 싶어도 절대 찾지 못할 겁니다. 아예 작가가 그걸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은 뻔한 사이언스 판타지 소설들과 다릅니다. 이 소설은 외계인 같은 요소들을 함부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에서 탐사대는 X 구역에 들어가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뿐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논의하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합니다. 그들이 무엇을 논의하든, 결론은 허공으로 소멸할 뿐입니다. 탐사대는 수많은 현상들을 목격하나, 논리적인 설명을 전혀 붙이지 못합니다. 탐사대는..
[이 게임은 러브크래프트 소설 분위기를 잘 살렸으나, 탐사와 고고학보다 전투에 치중합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유명한 장르 소설가입니다. 아니, 이 양반을 그저 유명하다고 부른다면, 그건 너무 빈약한 표현일 겁니다. 아마 하워드 러브크래프트가 없었다면, 현대 장르 창작물들은 절반쯤 살을 빼야 했을 겁니다. 그만큼 러브크래프트는 수많은 장르 소설들, 영화들, 게임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로드 던세이니나 아서 매켄 등 다른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나, 우주적 공포라는 장르를 원숙하게 다듬었고, 다양한 이야기 형식들을 고안했죠. 듀나님이 말한 것처럼, 사실 완성도를 따진다면, 아서 매켄이 러브크래프트보다 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우주적 공포라는 장르를 창시하지 않았다고 해..
이른바 주류 소설과 장르 소설이 다른 이유들 중 하나는 비인간적인 존재일 겁니다. 주류 소설들은 인간들만 이야기합니다. 설사 이나 처럼 다른 존재를 이야기한다고 해도 현실을 넘어가지 못하죠. 사이언스 픽션은 자유롭게 현실을 벗어나고 다른 존재들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 비인간적인 존재들은 우리 인류를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어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만난다면, 인간을 훨씬 더 제대로 돌아볼 수 있겠죠. 인류를 이야기하기 위해 반드시 외계인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류를 외계인과 비교할 수 있고, 인류가 누구인지 훨씬 강조할 수 있겠죠. 그래서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 정거장으로 날아갈 필요가 있었고요. 하지만 종종 사이언스 픽션은 외부인이나 이방인이 아니라 내부인에게..
허버트 웰즈는 우리나라에서 과 , , 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네 소설들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웰즈가 다른 소설들을 썼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묻히는 듯합니다. 웰즈는 저런 암울하고 기이한 소설들 외에 유토피아 소설이나 비경 탐험 소설에도 손을 댔습니다. 비슷하게 쥘 베른 역시 나 , 같은 소설들 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나 디스토피아 소설을 썼어요. 하지만 이런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합니다. 만약 어떤 작가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 작가가 쓴 다양한 소설들을 탐구해야 할 겁니다. 특히, 단편 소설들은 양이 꽤나 많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자세히 알려줄 수 있겠죠. 그런 관점에서 는 참으로 반가운 책입니다. 이 책은 허버트 웰즈가 쓴 여러 단편들과 중편..
추리 소설들 속에서 어떤 탐정들은 전문 분야를 맡습니다. 가령, 데니스 루헤인이 쓴 추리 소설들 속에서 패트릭 켄지는 실종 사건을 전담합니다. 원래 추리 소설에서 가장 자극적인 사건은 밀실 살인 사건이나, 패트릭 켄지는 주로 실종 사건들에 끼어들죠. 사실 여러 범죄들은 성향이 다르고, 따라서 탐정들도 각자 장기를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신기술을 이용하는 범죄자가 등장한다면, 당연히 탐정 역시 신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야 할 겁니다. 이런 추리 소설은 SF 소설처럼 보이는 테크노 스릴러로 이어질지 모르죠. 사실 SF 작가들은 신기술을 이용한 범죄들을 내놓곤 합니다. 신체 개조나 가상 현실은 범죄로 쓰이기에 아주 좋은 신기술일 겁니다. 따라서 신체 개조나 가상 현실을 전담하는 탐정이나 경찰이 등장할지..
가끔 저는 '빼앗긴 자들'이라는 소설 제목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은 사회주의 공동체(무정부적인 노동 조합주의)를 묘사하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에서 아나레스 사람들은 소유하려는 욕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자기 중심적이라거나 소유적이라는 말은 모욕이 됩니다. 아나레스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기 중심적으로 굴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나레스 사람들은 서로 욕할 때, 소유주의자라고 욕해요. 따라서 저는 이 소설에게 '빼앗긴 자들'보다 '소유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훨씬 소설 내용에 어울려요. 어쨌든 아나레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동시에 소유하지 않습니다. 서로 모든 것을 함께 소유하기 때문에 사적인 소유를 최대한 멀리할 수 있죠. 그게 과연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