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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언젠가 우리는 외계 인공 생태계를 조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전부가 아니겠죠.] 아무르 호랑이는 아주 멋진 야수입니다. 몸매는 육중하고 동시에 낭창낭창합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동시에 날렵하게 뛰거나 조용하게 포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르 호랑이는 강력한 전사보다 노련한 암살자에 가깝습니다. 고양이과 맹수들 중 가장 교활한 암살자는 표범일 겁니다. 상대적으로 작고 가볍기 때문에 표범은 지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노릴 수 있어요. 표범과 달리, 호랑이, 특히 아무르 호랑이는 그렇게 지형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합니다. 대신 아무르 호랑이는 육중한 체구를 이용해 목표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형을 마음대로 넘나들지 못한다고 해도, 아무르 호랑이 역시 암살자에 속합니다...
[소설 3부작. 이런 소설에게 생태 문학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을까요?] 영어 위키피디아에는 '생태 문학(eco fiction)' 항목이 있습니다. 생태 문학은 자연 환경과 인류 문명이 무슨 관계를 맺었는지 탐색하는 문학입니다. 생태 문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고 해도, 이게 대략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들 알 수 있을 겁니다. 생태 문학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이후 등장했습니다. 아마 탈핵과 녹색당, 동물 권리 운동 때문이겠죠. 같은 환경 운동 고전 역시 나왔고요. 하지만 오래 전부터 숱한 철학자들과 작가들은 자연이 문명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누군가는 인간이 자연과 싸운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인간이 자연과 화합한다고 이야기했고, 누군가는 두 가지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고 이야..
[생체 비행선의 내부 구조. 가스를 생성하기 위해 부유 고래는 뱃속에 인공 생태계를 품었을지 모릅니다.] 스콧 웨스터펠드가 쓴 소설 은 생체 비행선을 이야기합니다. 주연 등장인물들은 영국 공군 소속이고, 생체 비행선 승무원들입니다. 19세기에 찰스 다윈이 개조 동물들을 만든 이후, 영국은 개조 동물들을 산업과 군사에 이용했어요. 영국 공군은 아주 거대한 부유 고래를 만들었고, 부유 고래를 이용해 생체 비행선을 만들었죠. 은 가상의 1차 세계 대전과 레비아탄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부유 고래 비행선을 주로 조명합니다. 모종의 사건 때문에 부유 고래 비행선은 어떤 높고 외딴 산맥에 추락합니다. 혹독한 고산 지대에서 비행선 승무원들은 음식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이 먹기 위해서? 아닙니다. 비행선에게 먹이기 위해..
[표지 그림에서 보드 게임 은 정말 웅장한 공중 철갑함을 보여줍니다.] 소설 은 공중 철갑함을 보여주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공중 철갑함이라는 표현이 옳은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허버트 웰즈는 항공 전력을 묘사했으나,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그저 항공기(?)들이 공중을 날아다닌다고 언급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허버트 웰즈가 언급한 항공 병기가 공중 철갑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은 공중 전함을 이야기하는 스팀펑크이고, 스팀펑크 전쟁들이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았죠. 공중 철갑함을 묘사하는 작가들은 허버트 웰즈에게 한 번쯤 고개를 숙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왜 하필 공중 철갑함일까요? 왜 스팀펑크 작가들은 철갑함 그 자체가 아니라 공중 철갑함에 열광할까요? 거대한 함선은..
예전에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어떤 사람들은 소설을 걱정했습니다. 만약 인공 지능이 인간 고수를 이길 수 있다면, 인공 지능이 인간 소설가보다 훌륭한 소설을 쓸지 모르죠. 사실 이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이미 인공 지능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어쩌면 인공 지능 소설가들이 정말 인간 소설가들을 밀어낼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 작업이 인간의 영역이고, 기계가 그런 인간적인 영역을 뺏어간다고 한탄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 가지가 궁금합니다. 왜 예술 작업이 오직 인간임을 드러내는 작업이 되어야 할까요? 로봇이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도맡는다면, 아무도 그걸 불평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은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빨리 로봇에게 맡기기 원하겠죠. 하지만 로봇이 그림을 그리거나..
제목이 풍기는 느낌처럼 소설 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그립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유토피아 소설들이 즐겨 이용하는 전형적인 줄거리를 따릅니다. 수많은 유토피아 소설들에서 소설 주인공은 우연히 다른 문명을 방문하고, 그 문명을 둘러봅니다. 소설 주인공은 낯선 문명이 자신의 문명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문명을 비판하죠.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사회를 이상적으로 바꾸자는 주장입니다. 19세기에 SF 소설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에 이런 유토피아 소설들은 이미 수없이 나왔죠. 근대 작가들 역시 인간이 다른 행성을 방문하고 외계인들의 사회를 둘러보는 내용을 썼습니다. 당연히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은 많이 모자랍니다. 인문학적이거나 사회 과학적인 주제가 강했기 때문에 자연 과학적인 상상력은 그저 들러리에..
존 크리스토퍼가 쓴 은 사람들이 못 먹고 굶주리는 이야기입니다. 소설 제목처럼 온갖 작물들이 시들고, 식량들이 부족해져요. 사람들은 굶주리고, 굶주림은 이성과 문명이라는 가식을 벗기고, 마침내 다들 서로 죽이기 시작합니다. 좀 더 먹기 위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때리고 짓밟고 죽이고 부려먹습니다. 사회적 안전망 따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정부는 국민들을 버리고, 국민들은 신뢰와 화합을 버리고, 문명 세계는 죽고 죽이는 무법천지가 됩니다. 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미화하거나 왜곡하거나 우회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얼마나 빨리 문명 세계가 무법천지로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얼마나 쉽게 사람들이 가식을 집어던질 수 있는지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문명인이라고 생각하나, 그건 ..
존 크리스토퍼가 쓴 은 제목처럼 풀이 죽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풀은 밀이나 호밀, 보리, 귀리 같은 곡물들을 가리킵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사방으로 퍼지고, 농민들은 더 이상 각종 곡물들을 수확하지 못합니다. 전염병은 다른 식물들 역시 가만히 놔두지 않고, 따라서 소들이나 양들 역시 더 이상 목초지에서 풀을 뜯지 못해요. 이런 상황에서 감자나 비트 같은 뿌리 작물들은 여전히 멀쩡하고, 돼지처럼 뿌리 작물들을 먹고 살 수 있는 가축들 역시 안전합니다. 문제는 모든 농민이 비트나 돼지를 키우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전염병이 퍼지는 동안 국가 정부는 사태에 안일하게 대처하고, 농민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계속 농사를 지을 뿐입니다.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졌음에도 다들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지 않아요. 사태는 ..
나 , , , 같은 소설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다들 자본주의를 극단적으로 상상한 소설들이죠. 수많은 소설들에서 SF 작가들은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거대해진 세계를 상상하곤 합니다. 아마 그렇게 자본주의가 현대 문명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체계이기 때문일 겁니다. 자본주의가 뭔지 모르는 사람조차 자본주의가 현대 문명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겁니다. 어마어마한 대기업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사람들의 명줄을 움켜쥐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사람들은 대기업들에게 매달려야 하고 심지어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세상 만물은 돈으로 치환되고, 모든 것은 돈, 돈, 돈으로 흘러갑니다. 사람 목숨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회사들은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고, 상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사라집니다. 다들 경제 성장에 ..
로버트 하인라인이 쓴 는 일종의 우주 탐사물입니다. 아니, 우주 탐사보다 우주 개척물이 옳은 표현일 겁니다. 원래 제목은 '하늘의 농민'이고, 소설 주인공은 정말 농민입니다. 소설 주인공이 하늘의 농민인 이유는 주인공이 지구가 아니라 외계 위성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왜 외계 위성에서 주인공이 농사를 지을까요. 이는 우주를 개척하기 위한 발판입니다. 인류는 한창 우주로 뻗어나가는 중이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외계 행성들과 외계 위성들을 개척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그들 중 하나이고, 지구를 버리고 다른 위성으로 건너가고,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생존이나 개척을 이야기하는 SF 소설들은 항상 농사를 간과하지 않아요. 고전적인 부터 같은 최신 비디오 게임까지, 새로운 땅이나 새로운 행성에서 살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