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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공중 철갑함과 생체 비행선이 서로 격돌한다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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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철갑함과 생체 비행선이 서로 격돌한다면

OneTiger 2018. 5. 5. 19:02

[표지 그림에서 보드 게임 <윈드 갬빗>은 정말 웅장한 공중 철갑함을 보여줍니다.]



소설 <아마겟돈의 꿈>은 공중 철갑함을 보여주는 전쟁 이야기입니다. 공중 철갑함이라는 표현이 옳은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 허버트 웰즈는 항공 전력을 묘사했으나,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그저 항공기(?)들이 공중을 날아다닌다고 언급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허버트 웰즈가 언급한 항공 병기가 공중 철갑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아마겟돈의 꿈>은 공중 전함을 이야기하는 스팀펑크이고, 스팀펑크 전쟁들이 나갈 수 있는 길을 닦았죠. 공중 철갑함을 묘사하는 작가들은 허버트 웰즈에게 한 번쯤 고개를 숙여야 할 겁니다.


하지만 왜 하필 공중 철갑함일까요? 왜 스팀펑크 작가들은 철갑함 그 자체가 아니라 공중 철갑함에 열광할까요? 거대한 함선은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깁니다. 구태여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아도, 거대한 함선은 멋지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작가들은 거대한 함선에게 회전 날개나 기낭이나 반중력 장치나 기타 부유 장치들을 덕지덕지 붙이고, 마침내 함선을 공중으로 띄웁니다. 공중 함선은 로망인 것 같습니다. 아마 공중 함선이 고정 관념을 휙 뒤집기 때문이겠죠.



비행은 로망입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봤고, 비행이 자유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카로스 같은 신화는 그런 로망을 반영할 겁니다. 인간은 땅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기 원했고, 자유롭게 창공을 누비기 원했어요. 슈퍼맨이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이유 역시 비슷하겠죠. 인간은 비행이라는 로망을 슈퍼맨에게 투영했겠죠. 그래서 공중 철갑함은 그렇게 멋지게 보일 겁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거대한 배가 하늘을 날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팀펑크 작가들은 고정 관념을 뒤집고, 철갑함을 하늘에 띄웁니다. 공중 철갑함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고정 관념을 뒤집을 수 있고, 그래서 인식의 지평선을 넓힐 수 있습니다. 공중 철갑함은 그저 자유로운 함선이 아닙니다. 이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함선입니다. 똑같이 하늘을 난다고 해도, 공중 철갑함과 이카로스와 슈퍼맨은 서로 다릅니다. 공중 철갑함은 이카로스나 슈퍼맨보다 훨씬 이질적이죠. 그렇게 거대하고 묵직한 뭔가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광경은 이질적입니다. 적어도 날개옷(wingsuit)을 입은 사람은 슈퍼맨을 모방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우리는 공중 철갑함을 모방조차 하지 못하죠.



야쿱 로잘스키가 그린 <사이쓰: 윈드 갬빗>의 삽화를 보세요. 삽화에서 거대하고 웅장하고 묵직한 함선은 새들과 함께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이는 아주 이질적인 광경이고, 그래서 로망으로 승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여기에서 그쳐야 할까요? 고정 관념을 깨고 이질적인 풍경을 구현하기 위해 SF 작가는 시점을 훨씬 다른 지점으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기계 함선들이 많고 많습니다. 하지만 생체 함선은 절대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SF 작가가 생체 공중 함선을 그린다면, 생체 공중 함선은 훨씬 이질적으로 보이겠고, 훨씬 더 깊이 고정 관념을 깨뜨릴 수 있겠죠. <아마겟돈의 꿈>은 1901년에 나왔습니다. <아마겟돈의 꿈>은 20세기 극초반 소설이죠. (어쩌면 허버트 웰즈는 정말 1차 대전을 직감했을지 모릅니다.) <사이쓰: 윈드 갬빗>은 1920년대를 묘사하고요.


상대적으로 20세기 초반에 활약하는 생체 비행선 설정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콧 웨스터펠드가 쓴 <레비아탄>은 독특합니다. 사실 <레비아탄>은 성장 소설이고, 전반적인 분위기는 깊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키스 톰슨이 그린 삽화들은 놀랍습니다. 야쿱 로잘스키는 멋진 그림을 그렸으나, 저는 키스 톰슨이 훨씬 고정 관념을 깼다고 생각해요.



[이런 생체 비행선은 공중 철갑함보다 훨씬 인상적이고 독특할 겁니다.]



<사이쓰: 윈드 갬빗>과 <레비아탄>은 모두 20세기 초반 스팀펑크이고, 유럽의 (유사) 1차 대전을 이야기합니다. <윈드 갬빗>의 공중 전함과 <레비아탄>의 생체 비행선이 서로 격돌한다면, 그것 역시 꽤나 장대하고 이질적인 풍경이 되겠군요. 흠, 정말 굉장한 그림이 될 겁니다. 전투력이 약하기 때문에 생체 비행선이 패배하겠으나, 풍경 자체는 정말 굉장할 것 같아요. 묵직하고 웅장하고 탄탄한 공중 전함과 거대하고 재빠르고 살아있는 비행선…. 드넓은 창공에서 공중 전함은 포탄들을 쾅쾅 날릴 테고, 생체 비행선은 화살 박쥐들을 마구 뿌리겠죠.


<레비아탄>에서 생체 비행선은 화살 박쥐나 요격 맹금류 같은 공격 수단을 이용합니다. 이름처럼 화살 박쥐들은 화살을 먹고 토할 수 있고, 맹금류들은 날카로운 실을 적 항공기에 뿌릴 수 있어요. 생체 비행선이 공중 전함을 발견한다면, 그런 공격 수단들을 열심히 퍼부을지 모르죠. 머릿속에서 그림이 저절로 그려지는군요. <레비아탄> 시리즈에는 <윈드 갬빗> 같은 공중 전함이 등장하지 않으나, 레비아탄 비행선은 전투 순양함 괴벤을 공격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종종 레비아탄 비행선은 체펠린 비행선들과 싸우고요. 전투 순양함이나 체펠린은 생체 비행선을 심각한 위기로 몰아갈 수 있어요.



솔직히 저는 이런 생체 비행선이 별로 효율적일 것 같지 않습니다. 만약 강력한 공중 철갑함이 날아다닌다면, 생체 비행선이 공중 철갑함에 대적할 수 있을까요? 생체 조직은 금속보다 강하지 않아요. 만약 <윈드 갬빗>의 공중 전함과 <레비아탄>의 생체 비행선이 격돌한다면, 공중 전함은 생체 비행선을 아주 쉽게 추락시킬 수 있을 겁니다. 이는 마치 전차와 코뿔소가 싸우는 것 같겠죠. 아무리 코뿔소가 육중하고 저돌적이라고 해도, 전차를 이기지 못합니다. 코뿔소는 일반 차량을 뭉개거나 뒤집을지 몰라도, 전차를 상대하지 못합니다.


전차가 코뿔소를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공중 전함 역시 생체 비행선을 얼마든지 두들길 수 있겠죠. 아무리 생체 비행선이 회피 기동하고 화살 박쥐들을 뿌린다고 해도, 어떻게 생체 조직이 단단한 금속 기계를 이길 수 있겠어요. 만약 생체 비행선의 생체 조직이 포탄들을 방어할 수 있다면, 그건 너무 비약적인 설정일 겁니다. <레비아탄>의 속편 <베헤모스>는 전투 순양함과 바다 촉수 괴수가 싸우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윈드 갬빗>의 공중 전함과 <레비아탄>의 생체 비행선이 서로 격돌한다면, 아마 그런 느낌과 비슷하겠죠.



저는 인류가 크라켄 같은 괴수를 만들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해도, 전투 병기로서 이용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투 병기로서 금속 기계는 유기체 동물보다 훨씬 나을 겁니다. 이는 생체 비행선에 아무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투는 전쟁의 전부가 아니고, 생체 비행선은 정찰이나 운송, 보급을 맡을 수 있겠죠. 소설 <테메레르> 시리즈는 다양한 드래곤들을 보여줍니다. 드래곤들은 공군에 속했고, 전투 이외에 정찰이나 보급이나 운송 임무를 맡습니다. <테메레르> 시리즈는 나폴레옹 전쟁을 다룹니다.


만약 시대가 좀 더 흐르고 19세기를 지난다면, 공군에서 드래곤들이 계속 활약할 수 있을까요? 20세기가 지난다면, 비행선들과 전투 항공기들이 드래곤들을 밀어내지 않을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드래곤들이 더 이상 살아있는 전투기가 아니라고 해도, 드래곤들은 다른 임무들을 맡을 수 있습니다. 드래곤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현대 전장에서 아주 유용할 겁니다. 험지에서 보병 부대가 임시 주둔지를 차릴 때, 드래곤들은 물품들과 장비들과 인력들을 쉽게 운송할 수 있겠죠. 전쟁은 그저 거대 함선들의 1:1 싸움박질이 아닙니다.



[요격 맹금들을 이용해 체펠린 비행선과 싸우는 레비아탄 생체 비행선.]



그것처럼 생체 비행선 역시 다른 임무들을 맡을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공중 철갑함이 돌아다닌다면, 생체 비행선 승무원들은 제발 공중 철갑함과 마주치지 않기 바라야 할 겁니다. 생체 비행선이 이용하는 화살 박쥐나 요격 맹금류 같은 공격 수단은 그저 시간을 벌 뿐이겠죠. 하지만 <레비아탄> 시리즈에서 의외로 생체 병기들은 증기 기관 병기들과 곧잘 싸웁니다. 해군 크라켄이 상대 해군 잠수함을 집어삼키거나 선박을 휘감고 침몰시키죠. 공군 맹금류들은 항공기들을 추락시킬 수 있고, 그래서 생체 비행선이 체펠린 비행선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고요. 생체 비행선이 공중 철갑함에게 화살 박쥐들이나 요격 맹금류들을 어마어마하게 퍼붓는다면, 생체 비행선이 승리의 깃발을 낚아챌 수 있을지 모르죠.


어쩌면 누군가는 <윈드 갬빗>의 공중 전함이 너무 비약적인 설정이라고 지적할지 모르겠습니다. <윈드 갬빗>의 공중 전함은 정말 육중하게 생겼으나, 부양 장치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육중한 공중 전함이 날아다닐 수 있을까요? 이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윈드 갬빗>의 삽화는 별다른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요.



반면, 가스를 뿜는 거대한 부유 고래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설정일 겁니다. 생체 비행선 역시 별로 엄중하지 않은 설정이나, 적어도 공중 전함보다 나을 겁니다. 게다가 어떤 특별한 부양 장치를 사용한다고 해도, <윈드 갬빗>의 공중 전함처럼 육중한 기계가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요? 1:1 전투에서 공중 전함은 생체 비행선을 몰아붙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생체 비행선이 공중 전함보다 훨씬 빠르다면, 생체 비행선들은 기동력을 이용해 다른 전략을 펼칠 수 있겠죠. 고래가 구식 잠수함보다 효율적인 것처럼 생체 비행선은 공중 전함보다 뛰어난 기동력을 자랑할지 몰라요. 전쟁은 1:1 싸움이 아니고, 여러 전략가들이 증명한 것처럼, 뛰어난 기동력은 숫적인 우위를 이끌 수 있어요. 그런 우위가 다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고요. 이런 관점에서 생체 비행선은 공중 전함보다 나을지 모르죠.


어쩌면 누군가는 저와 다르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글쎄요, 무슨 상관이겠어요. 솔직히 이런 논의는 그저 설정 놀음에 불과합니다. 현실에 공중 철갑함과 생체 비행선은 모두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상상하고, 이질적인 감성을 느끼고, 고정 관념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이언스 픽션은 이질적인 느낌을 강조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사랑할 겁니다. 하지만 고정 관념을 깰 수 있다면, 왜 우리가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할까요?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고, 더 많은 고정 관념들을 깰 수 있을 겁니다.



<아마겟돈의 꿈>과 <사이쓰: 윈드 갬빗>과 <레비아탄>은 (가상의) 1차 세계 대전을 묘사하죠. 하지만 이런 SF 창작물들이 얼마나 자세히 1차 세계 대전을 들여다볼까요? 1차 세계 대전은 자본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에서 비롯한 비극적인 결과물입니다. 1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 유럽 사회 민주주의가 무엇을 했죠? 사회 민주주의는 전쟁을 막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래서 유럽은 1차 대전을 터뜨렸죠. 2차 세계 대전이 터졌을 때, 유럽 사회 민주주의가 무엇을 했죠? 소비에트 연방은 파쇼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외쳤으나, 유럽 사회 민주주의는 아직 정신을 못 차렸고 제대로 들어먹지 않았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역시 무정부주의 저항을 제대로 돕지 않았고, 따라서 파쇼주의를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사회 민주주의는 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해요. 사회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너무너무 사랑하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자본주의를 위해 사회 민주주의는 세계 대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유럽 사회 민주주의가 좋다고 주장하고, 무조건 소비에트 연방을 비난합니다. 소비에트 연방은 분명히 억압적인 국가였고, 따라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럽 사회 민주주의를 빨아주는 태도는 논리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게임 <사이쓰>의 올가 그림. 이런 게임이 얼마나 제대로 러시아 소비에트를 이야기할지….]



사람들이 유럽 문명을 숭배하고 사회 민주주의를 숭배하는 이유는 현대 문명에서 자본주의나 유럽 중심주의가 가장 크고 억압적인 고정 관념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이는 세뇌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은 유럽 사회 민주주의가 소비에트 연방보다 평화롭다고 말합니다. 이런 헛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념을 장악해요. <사이쓰: 윈드 갬빗>이 이런 세뇌를 깨뜨리나요? <윈드 갬빗>에는 러스비에트라는 진영이 등장합니다. 이름처럼 가상의 러시아 진영이죠. <레비아탄> 역시 러시아 군대가 생체 병기 불곰을 이용한다고 묘사하고요.


하지만 <윈드 갬빗>이나 <레비아탄>이 러시아 혁명과 적백 내전을 제대로 고찰할까요? 이런 SF 창작물들이 유럽 자본주의와 사회 민주주의가 러시아 인민들을 억압한 상황을 이야기할까요? 숱한 SF 소설들이 이런 세뇌를 깨뜨리나요? SF 작가들이 자본주의와 중앙 집중적인 권력과 유럽 중심주의에 저항하나요?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레비아탄>의 생체 비행선은 이질적인 상상입니다. 이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멋진 발상이죠. SF 작가들은 그런 것들을 내놓곤 합니다. 하지만 SF 작가들은 정말 단단한 장벽, 우리를 둘러싼 세뇌를 깨뜨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고정 관념은 그런 것임에도, SF 작가들은 세뇌를 깨뜨리지 않아요.



<사이쓰: 윈드 갬빗>이나 <레비아탄> 시리즈에서 1차 세계 대전은 그저 재미있는 소재에 불과한지 모릅니다. 이런 스팀펑크 창작물은 인민들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자세하게 조명하지 않겠죠. (성장 소설이 사회 구조를 조명하지 못할까요? 하지만 <언런던>이나 <식수 전쟁 2017> 같은 사례가 있습니다.) 반면, <아마겟돈의 꿈>은 훨씬 낫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다른 작가들보다 훨씬 낫습니다. 허버트 웰즈는 여러 한계들을 드러냈으나, 자본주의와 유럽 중심주의와 중앙 권력을 타파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하지만 허버트 웰즈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SF 작가들이 많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안락하게 SF 소설은 전복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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