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쿼런틴>의 신경 모드와 생체 장비 본문
소설 <쿼런틴>은 세계가 확장하고 수축한다는 개념을 이용해 평행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평행 세계 이야기입니다. 다중 우주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주거나 우주들이 겹치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으나, 평행 세계를 꽤나 하드하게 보여주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훨씬 인상적인 소재는 생물적인 신경 모드입니다. 그렉 이건은 평행 세계만큼 바이오펑크에 공을 들였고, <쿼런틴>에는 다양한 개조 생체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주인공 탐정은 머리에 신경 모드를 탑재했습니다. 모드는 일종의 제어 장치이고, 모드 사용자는 마음대로 자신의 감정이나 근력을 조절할 수 있어요. 만약 모드 사용자가 허기를 느끼기 원하지 않는다면, 일정 시간 동안 모드는 사용자가 허기를 느끼지 않도록 조절합니다. 긴박한 순간에 모드는 사용자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고, 사용자는 수월하게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어요. 게다가 사용자가 기절하거나 공황에 빠졌을 때, 모드는 스스로 작동하고 사용자를 위기에서 구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드 사용자는 생체 꼭두각시처럼 보일지 몰라요.
모드는 사용자가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생물적인 기계입니다. 만약 이런 기계를 머리에 장착할 수 있다면, 꽤나 편리할 것 같습니다. 어떤 학생이 시험 기간에 집중력을 올리기 원한다면, 모드를 이용해 졸음과 피로를 쫓을 수 있습니다. 놀고 싶어하는 욕구 역시 제어할 수 있겠죠. 어떤 노동자에게 처리해야 할 야간 업무들이 있다면, 모드를 이용해 지겹다거나 짜증난다는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피로를 멀리 쫓고, 야간 업무를 마칠 수 있겠죠.
아마 긴박한 상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물적인 기계를 매우 반길 겁니다. 가령, 소방관들이 불타는 화재 현장에 진입해야 한다면? 소방관들은 공포를 쫓고, 근력을 키우고, 감각을 확장하는 모드를 작동시킬 수 있겠죠. 그런 소방관들은 화재 현장에서 훨씬 쉽게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쿼런틴>의 주인공 탐정은 (탐정 소설 속의 흔한 탐정들처럼) 전직 형사입니다. 형사들은 이런 모드를 유용하게 생각하죠. 모드를 이용해 지루한 잠복 수사를 효율적으로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탐정이 모드를 자유롭게 다루는 이유는 전직 형사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드를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는지 소설은 자세히 말하지 않습니다. 사설 보안 회사의 경비원들 역시 이런 모드를 이용하더군요. 아마 형사나 소방관, 의사, 군인, 경비원 같은 직종은 모드를 이용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지에서 활동하는 탐험가나 모험가 역시 모드를 이용할지 모르죠.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탐험가에게 모드는 아주 요긴한 장치일 겁니다. 만약 탐험가가 오지를 표류한다면, 모드는 두려움이나 황망함을 쫓아내고 침착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죠. 일정 시간 동안 탐험가가 음식을 먹지 못했을 때, 모드는 허기를 쫓아내고 근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
탐험가가 혹독한 툰드라 지역이나 무더운 사막 지역을 헤맬 때, 모드는 탐험가가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줄 겁니다. 아마 이런 장비가 싸구려는 아니겠죠. 평범한 일반인들 역시 이런 생물적인 장비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겠으나, 그렉 이건은 일반인들이 모드를 이용하는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쿼런틴>은 주인공 탐정을 줄곧 따라가고, 주인공 탐정은 모드를 자주 사용하는 일반인과 만나지 않습니다.
주인공 탐정은 뒷골목에 돌팔이 의사들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돌팔이 의사들은 싸구려 나노 로봇들을 제작하고, 그래서 아무나 쉽게 모드를 착용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여기에는 엄청난 부작용이 따릅니다. 누군가가 돌팔이 나노 로봇들을 주입하기 원한다면, 그 사람은 뇌가 망가질 부작용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뒷골목의 돌팔이 의사들은 신용이 없고, 부작용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돌팔이들에게 거금을 쥐어준다면, 그 사람은 생물적인 신경 모드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음, 신경 모드의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일지 모르겠어요. 경찰이나 소방관이나 탐험가가 장착하는 모드를 일반인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쿼런틴>만으로 알아내기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저는 경찰이나 소방관의 신경 모드가 매우 비쌀 거라고 생각하고, 일반인들은 그런 모드를 구입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은 졸음을 쫓거나 야간 업무를 처리하는 보다 단순한 신경 모드를 원하겠죠. 일반인들이 경찰 신경 모드를 착용한다고 해도 그걸 어디에 쓰겠어요. 일반인들은 위험한 범죄자들과 싸우지 않아요.
위에서 의사를 아주 잠시 언급했으나, 의사들은 생물적인 신경 모드를 장착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은 생체 기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생체 기술자들이 생물적인 모드를 탑재하는 행위가 윤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신경 모드는 사용자를 꼭두각시로 만듭니다. 범인을 체포하거나 화재 현장으로 돌입하기 위해 경찰이나 소방관은 신경 꼭두각시가 될지 모릅니다. 의사 역시 신경 꼭두각시가 될지 모릅니다. 환자가 무슨 고통을 느끼든, 의사는 기술적인 치료만 추진할지 몰라요. 의사들은 그런 상황이 비윤리적이라고 간주하고, 그래서 신경 모드를 탑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의사들이 신경 모드를 탑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의사들 역시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는 인공 지능 의사와 비슷하게 보일지 모르겠군요. 인공 지능 의사는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을 겁니다. 과연 이런 인공 지능에게 의사가 될 자격이 있을까요? 그저 치료 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무나 의사가 되지 못할 겁니다. 왕년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증명했듯 생체 기술자(의사)는 생명 윤리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수의사는 좀 더 다를지 모르겠군요. 대부분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이 다르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동물 권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고요. <쿼런틴>은 지독한 자본주의 디스토피아이고, 당연히 동물 권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겁니다. 그렉 이건은 가축이나 야생 동물을 묘사하지 않았으나, 어쩌면 의사들과 달리 수의사들은 신경 모드를 장착했을지 모릅니다. 동물들이 무슨 고통을 받든, 수의사들은 수술이나 치료를 추진하겠죠.
음, 어쩌면 가축들이나 사역 동물들 역시 신경 모드를 탑재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신경 모드들은 가축들이나 사역 동물들을 정말 살아있는 꼭두각시로 만들겠죠. 어떤 농민도 가축들이 말썽을 부리기 원하지 않을 겁니다. 가축들은 신경 모드를 탑재하고, 공장식 축산 우리에서 꼭두각시처럼 살아갈지 몰라요. 우리가 비좁고 불결해도 가축들은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신경 모드는 그런 불만을 억제하겠죠. 뭐, 어떤 사람들은 신경 모드를 탑재한 돼지가 비위생적이라고 주장할지 몰라요. 사람들이 먹는 돼지고기에 나노 로봇들이 묻었다면? 이런 주장은 축산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지 모르죠.
<쿼런틴>에서 그렉 이건은 축산업계를 한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개인적인 망상일 뿐입니다. 하지만 <쿼런틴>으로 축산업계와 신경 모드를 상상하는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범위를 좀 더 넓힐 수 있겠죠. 경찰이나 사설 경비원이 생물적인 모드를 탑재한다면, 경찰견이나 경비견은 어떨까요. 소설 속에 경비견이 등장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 아마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경찰이 생물적인 모드를 탑재한다면, 경찰견이 탑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유전 기술자가 경찰견을 개조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물적인 모드는 경찰견을 충직하고 예민한 생체 탐지 기계로 바꿀 겁니다. 신경 모드는 경찰견에게 지시할 겁니다. 경찰견은 인간에게 복종하고, 다른 잡념들을 멀리 내쫓고, 열심히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을 겁니다. 배가 고프다고 해도, 경찰견은 음식 냄새를 맡지 않고 범인이 남긴 냄새를 맡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동물 학대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쿼런틴>에 그런 경찰견이 있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자본주의 디스토피아 속에서 누가 동물 권리를 챙기겠어요.
<쿼런틴>으로 이런 설정들을 상상하는 행위가 그저 망상에 불과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설정 놀음'은 그 자체로 즐거운 과정이고, 재생산을 위한 과정일 될 수 있습니다. <쿼런틴>에서 영감을 받은 누군가는 신경 모드를 탑재한 경찰견을 이야기할지 모르죠. SF 소설들을 뒤적이면, 분명히 그런 경찰견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서 설정을 훨씬 넓힐 수 있겠죠. 만약 인류가 거대한 생체 병기를 만든다면, 그게 괴수 병기이든 생체 우주선이든, 이런 나노 머신들이 반드시 필요할 겁니다.
인류가 거대한 생체 병기를 조종한다면, 신경 모드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겁니다. 인류가 생체 우주선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죠. 현실적인 기계 우주선처럼 우주 승무원들은 각종 기계 장치들을 이용해 생체 우주선을 조종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반면, 현실적인 기계 우주선과 달리 우주 승무원들은 나노 머신들에게 명령할지 모르죠. 나노 머신들은 생체 우주선의 신경들을 자극할 테고, 지시대로 생체 우주선은 움직이겠죠. 흠, 이는 <쿼런틴>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설정 같군요. 하지만 어떤 밀리터리 SF 소설이나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은 이런 생체 우주선을 이야기할지 몰라요.
생체 병기나 생체 개조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쿼런틴>은 흥미로운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주로 평행 세계를 이야기하나, 생물적인 모드 역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소재입니다. 그렉 이건은 주인공 탐정이 세계를 확장하기 원했고, 그래서 이런 생물적인 모드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원래 그렉 이건이 이런 생물적인 모드에 관심이 많을지 몰라요. 평행 세계들이 확장하고 수축하는 이야기 역시 놀라우나, 개인적으로 평행 세계보다 생물적인 모드가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생물적인 모드는 기술적 특이점과 비슷할지 모릅니다. 생체 공학적인 특이점으로 부를 수 있겠죠.
만약 인류가 생체 병기를 이용한다면, 생체 수술보다 생물적인 모드가 훨씬 중요할지 몰라요. 현실적인 동물들, 호랑이나 백상아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생명체입니다. 만약 인간이 호랑이나 백상아리를 마음대로 조종한다면, 구태여 백상아리를 개량할 이유가 없겠죠. 이런 기술을 비단 생체 병기에만 적용할 이유는 없겠죠. 양봉업자는 꿀벌들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테고, 마후트(코끼리 조련사)은 인도 코끼리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겁니다. 인도 코끼리가 생물적인 모드를 탑재한다면, 적어도 더 이상 꼬챙이에 찔리지 않겠군요.
생태학자들이 울창한 밀림 생태계를 탐사하고 싶다면, 생물적인 모드를 탑재한 코끼리는 아주 유용할 겁니다. 마후트조차 필요하지 않겠죠. 생태학자들은 코끼리에게 직접 명령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코끼리는 정말 살아있는 꼭두각시일 겁니다. 병기가 아니라고 해도 이런 생체 장비는 동물 권리를 무시할 수 있어요. 신경 모드는 고통을 주지 않겠으나, 살아있는 꼭두각시는 분명히 동물 권리를 무시하는 상황입니다. (자유 의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생물적인 신경 모드가 자유 의지를 침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신경 모드가 동물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다고 반박할 겁니다. 피터 싱어가 설명한 것처럼 동물 권리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에 주목합니다. 신경 모드는 고통을 차단합니다. 누군가가 커다란 상처를 입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고 해도, 신경 모드는 아픔이나 슬픔을 차단할 수 있어요. 자유 의지? 만약 자유 의지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 세상의 모든 애완견 주인은 동물 권리를 침범할 겁니다. 미래에 신경 모드 코끼리가 등장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쿼런틴>은 슈뢰딩거의 고양이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 윤리들을 던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