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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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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인류 문명과 탐지견들

OneTiger 2018. 2. 16. 19:23

[인류 문명이 멸망했을 때, 동물 동료로서 탐지견은 훨씬 활약할 수 있겠죠.]



"우리가 데리고 가야 해요, 아빠. 개는 먹을 걸 찾아낼 수도 있잖아요."


소설 <로드>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이 소설에서 어떤 남자와 소년은 무너진 세상을 떠돕니다. 작가는 왜 세상이 무너졌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으나, 인류 문명은 처참하게 멸망한 듯 보이고, 남자와 소년은 지옥을 떠돕니다. 어느 날 그들은 어디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듣고, 소년은 개를 데리고 가기 원합니다. 아마 누군가가 개를 죽이거나 잡아먹을 거라고 걱정했기 때문이겠죠. 소년은 개를 데리고 가자고 조르고, 개가 먹을 걸 찾을 수 있다고 핑계를 댑니다.


어쩌면 소년은 정말 개가 먹을 걸 찾을 수 있다고 믿었는지 모르죠. 사람들은 여러 특수견들을 이용하고, 전장에서 급조 폭발물을 찾거나, 재난 지역에서 생존자를 찾거나, 숲 속에서 사냥감을 찾습니다. 아마 소년은 그렇게 개를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는지 모릅니다. 세상이 무너졌기 때문에 소년은 탐지견이 유용하다고 생각했을 듯합니다. 비단 <로드>만 아니라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개를 연결하는 소설들은 더러 있습니다. 할란 앨리슨이 쓴 <소년과 개>를 필두로 <나는 전설이다>, <최후의 Z>, <메트로 2033>, 피터 헬러가 쓴 <독 스타>, <세계 대전 Z> 같은 소설들은 생존자와 개를 이야기합니다.



위와 같은 소설들이 모두 탐지견을 이야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년과 개>와 <세계 대전 Z>는 분명히 포스트 아포칼립스 속의 탐지견을 이야기하나, <나는 전설이다>에서 개는 그저 소설 주인공이 느끼는 외로움을 부각할 뿐이죠. 하지만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에서 저먼 셰퍼드는 그저 주인공과 함께 무너진 세상을 떠도는 동행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적을 찾거나 쫓는 탐지견 역할을 수행합니다. 아마 영화 제작진은 원작 소설에 등장하는 개를 액션이 가능한 탐지견으로 바꿔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적막과 외로움, 소외를 강조하는 소설이 액션 영화로 바뀔 때, 병든 개 역시 용맹한 탐지견으로 바뀌었죠.


사실 온갖 폭발물 탐지견이나 산악 구조견이나 영리한 사냥개를 보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탐지견이 꽤나 유용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너진 세상에서 생존자는 계속 먹거리와 약품과 무기와 기타 생존 물품들을 찾아야 하고, 위험한 적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탐지견은 소중한 동반자가 되겠죠. 만약 소설 <로드>에서 남자와 소년이 똑똑한 탐지견을 데리고 다녔다면, 훨씬 더 쉽게 먹거리를 찾거나 적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정말 탐지견이 유용한 동반자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창작 사이트를 조금 뒤져보면, 생존자와 탐지견이 함께 무너진 도시를 방황하는 그림들을 쉽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방독면과 판초 우의와 위장 전투복과 지정 소총과 생존 도구들로 무장한 전투적인 생존자가 용맹하게 보이는 탐지견과 함께 폐허를 떠도는 모습은 로망입니다. 마치 고대 전설 속의 영웅적인 사냥꾼과 사냥개처럼 보일지 모르겠군요.


제가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탐지견은 소설 <메트로 2033>에 등장하는 붉은 여단의 탐지견이었습니다. 붉은 여단은 체 게바라와 인터내셔널을 조합한 공산주의 조직입니다. 체 게바라와 인터내셔널…. 좀 괴악한 조합이죠. (체 게바라는 소비에트 연방보다 농민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았죠.) 그리고 체 게바라가 그런 것처럼 붉은 여단은 빨치산들입니다. 이 공산주의 빨치산들은 거의 순수한 공산주의 이상을 추구하고, 지하철 도시 속에서 여러 파쇼주의자들을 처치하죠. 머릿수가 적기 때문에 이 빨치산들은 대규모 전면전을 피하기 원하고, 덕분에 탐지견이 유용합니다. 탐지견이 적들을 감지하면, 은신처에서 잽싸게 도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쇼주의자들을 처치하는 공산주의 빨치산과 탐지견과 광대하고 어둑어둑한 지하철 도시. 꽤나 독특하고 잘 어울리는 조합인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은 꽤나 잘 어울리나, 정말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탐지견이 쉽게 어울릴 수 있을까요.]



하지만 탐지견이 생존자에게 항상 유용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생존자와 영리한 탐지견은 분명히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이 탄생하기 위해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죠. 무너진 도시에서 방황하는 동안 생존자가 개를 우연히 만났다고 가정하죠. 생존자와 개는 찰떡 궁합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 생존자에게 개를 다루는 기술이 없다면, 개는 도망치거나 생존자를 경계하거나 심지어 공격할지 모릅니다. 무너진 세상에서 개는 인간의 동료가 아니라 위험한 들개가 되었을지 몰라요. 세상이 위험하기 때문에 개들 역시 위험하게 바뀌겠죠.


따라서 생존자가 개를 동반자로 사귀고 싶다면, 개가 무슨 상황에 처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가 아프거나 건강한지, 개가 사람을 잘 따르거나 경계하는지, 개가 현재 사람에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지, 생존자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류 문명이 무너졌다면, 개는 전적으로 생존자에게 의지할지 모르고, 따라서 생존자 역시 개를 온전히 책임질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만약 생존자가 어느 정도 개를 다룰 수 있다고 해도 개가 무조건 똑똑한 탐지견이 되지 않을 겁니다. 개는 분명히 후각과 청각이 뛰어나고, 위험을 파악하거나 먹거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들은 아주 일찍부터 인간이 개를 사냥에 이용했다고 추측합니다. 그런 증거(벽화나 유물)들이 존재하죠. 왜 인류가 개를 키웠는지 아무도 확실히 알지 못하나, 사냥개 가설은 꽤나 가능성이 높은 가설입니다. <맘모스 사냥꾼 에일라>처럼 원시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은 SF 작가는 사냥개 가설을 묘사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어요. 고대 인류가 사냥개를 유용하게 길들인 것처럼, 만약 포스트 아포칼립스 속의 생존자가 어떤 개를 만났고, 그 개가 똑똑한 사냥개가 된다면, 그 사냥개는 유용한 동반자가 될 겁니다. 폐허 속에서 먹거리를 찾거나 사냥에 도움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모든 인간이 전문적인 생존자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개가 똑똑한 탐지견이 되지 못할 겁니다. 개가 뭔가를 전문적으로 탐지하거나 수색하려면, 개 역시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특히, 사방에 위험한 적들이 우글거린다면, 생존자는 개를 더욱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할 겁니다. 돌연변이 괴물들이나 살상 로봇들이 돌아다니는 위험 지대에서 일반적인 개와 함께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개가 방해가 될지 모르죠. 돌연변이 괴물들이 근방에 있음에도 개가 함부로 짖거나 돌아다닌다면?



어쩌면 개는 공황에 빠지고, 돌연변이 괴물에게 함부로 짖거나 멋대로 도망치거나 무모하게 공격할지 모릅니다. 오히려 개가 생존자를 위험으로 몰아넣을지 모르죠. 그때 생존자는 개를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할지 모르죠. 일촉측발의 위험한 순간에서 생존자는 개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만약 개가 정말 똑똑하다면,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침묵과 은폐를 지킬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생존자는 개가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개를 훈련시키는 것은 어렵고 지난한 과정입니다. 폭발물과 마약과 범인을 탐지하는 벨기에 말리노이즈는 멋지게 보일지 모르나, 그런 멋진 모습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을 겁니다. 단순히 앉거나 따라오라는 명령을 익히기 위해 탐지견 병사와 탐지견 양쪽 모두 엄청나게 고생해야 하겠죠. 만약 생존자가 그런 훈련 과정을 알지 못한다면, 개는 유용한 동반자가 아니라 훼방꾼이나 애물단지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생존자가 그런 훈련 과정을 안다고 해도 멸망한 세상에서 개를 훈련시키기는 만만하지 않을 겁니다. 제대로 개를 훈련시키기 위해 적어도 몇 주가 필요할지 몰라요.



[도그밋 조각상. 갑옷들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느낌을 아주 물씬 풍깁니다.]



어쩌면 개라는 생명체를 너무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는 것 같군요. 개는 그저 생체 탐지기가 아닙니다. 탐지견이기에 앞서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적어도 인간과 어느 정도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생명체입니다. 그런 생명체는 소중하고, 따라서 개를 너무 수단으로서만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죠. 하지만 <소년과 개>에서 소년이 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탐지견이 유용하기 때문일 겁니다. 탐지견이 먹이를 찾고 위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면, 소년이 개를 사랑할 이유는 없겠죠.


<로드>에서 남자가 개를 함부로 데리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개가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무슨 개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개나 데리고 다니지 못하겠죠. 개는 그저 식량만 축낼지 몰라요. <세계 대전 Z>에서 사람들은 탐지견 사육장을 세우고, 탐지견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합니다. 그런 전문적인 과정이 없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 속에서 탐지견은 유용한 동반자가 아니라 애물단지가 될지 몰라요. 개는 분명히 하나의 소중한 생명체이나, 멸망한 세상 속에서 생존자는 기본적인 생명 윤리를 따지지 못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탐지견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동물 권리와 생명 윤리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전투적인 생존자와 똑똑한 탐지견은 멋지게 보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런 로망으로 이야기를 쓴다면, 그 이야기는 동물 권리나 생명 윤리를 쉽게 무시할지 모릅니다. 숱한 사람들은 맹수들이나 위험한 동물들이 생체 병기라고 생각하고, 그런 동물들이 싸우는 광경을 즐깁니다. 숱한 사람들은 장수말벌이 사마귀를 물어뜯거나, 스테고사우루스가 알로사우루스의 종아리를 꿰뚫거나,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들이받는 장면에 열광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장면에 미사여구나 신나는 음악이나 화려한 편집을 덧붙입니다


 글쎄요, 동물이 다른 동물을 물어뜯고 피를 튀기는 장면이 아름답거나 신나거나 화려한가요? 왜 동물이 다른 동물을 죽이는 장면에 신나는 음악이 따라붙어야 하나요? 솔직히 괴수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야생적으로 피를 튀기기 때문이겠죠. 동물 싸움을 즐기는 사람들과 괴수 매니아들이 전쟁광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물 싸움에 너무 몰두한다면, 동물이 자연 생태계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뒤로 밀려날지 모르죠.



탐지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절망적인 상황을 가정한다면, 생존자 역시 탐지견을 생체 장비라는 수단으로 대할 겁니다. 그리고 숱한 작가들이 전투 병기들을 미화하는 것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가는 탐지견을 멋진 생체 장비라고 미화할지 모르죠. 그런 미화는 동물 권리를 가볍게 여길지 모르고요. 숱한 사람들이 피를 튀기는 동물 싸움에 열광하는 것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탐지견은 폭력이나 유혈 사태와 이어질지 몰라요. 왜 사람들은 동물이 저지르는 폭력과 유혈 사태에 열광할까요. 힘을 원하기 때문에? 야생적인 힘을 원하기 때문에? 그게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설사 그게 본능이라고 해도 그걸 미화할 이유가 있을까요. 탐지견이 존재한다는 사실, 탐지견이 폭발물을 찾는다는 상황은 비극입니다. 전쟁이 터지고, 폭발물이 묻히고, 탐지견이 그걸 찾아야 한다는 사실은 비극입니다. 그리고 전쟁이 터지는 이유는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억압하기 때문이죠. 탐지견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그런 부분, 동물 권리와 지배 계급이 억압한다는 부분을 놓치지 말고 묘사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우리는 인류 문명을 평등하게 만들어야 할 겁니다. 결국 해답은 평등한 사회 구조입니다.)



탐지견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죠. 위에서 저는 일반적인 탐지견들을 이야기했으나, SF 창작물 속에서 설정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유전자 조작 기술이 아주 대중적으로 퍼진다면? 대부분 개들이 유전자 조작을 거치고, 아주 똑똑해진다면? 아니면 기계처럼 개를 다루는 장치가 등장한다면? 나노 머신이 개의 머릿속에서 개를 조종한다면? 만약 이런 설정들을 밑바탕에 깔 수 있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겠죠. 어쩌면 정말 <소년과 개>처럼 탐지견이 필수적인 동반자가 될지 몰라요. 과연 그런 유전자 공학 기술이나 나노 머신들이 나타날까요. 아무도 알지 못할 겁니다. 언제 기술적 특이점을 돌파할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아무도 언제 개를 조작하는 나노 머신들이 나올지 알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SF 창작가들은 그런 설정을 떠올릴 수 있고, 그런 설정을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합칠 수 있겠죠. 만약 전문적이고 전투적인 생존자가 똑똑한 개조 탐지견을 데리고 다닌다면, 멋지게 활약할 수 있을 겁니다. 전문적인 생존자와 개조 탐지견은 위험한 돌연변이 괴물들을 회피하고, 폐허 속에 갇힌 다른 생존자를 구하고, 희귀한 먹거리나 무기를 찾을지 모르죠. 로망이 넘치는 설정이군요.



[어쩌면 이런 장면은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탐지견들을 낳았을지 모릅니다.]



여기에서 설정을 더 확대할 수 있습니다. 왜 생존자가 그저 개만 데리고 다녀야 할까요. 유전자 조작이나 나노 머신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구태여 개만 개조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새들을 개조하거나 물고기들을 개조할지 모릅니다. 만약 생존자가 그런 개조 조류나 개조 물고기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면, 훨씬 다양한 위기들에 대처할 수 있겠죠. 새들은 하늘에서 머나먼 거리를 관찰할 수 있을 테고, 물고기들은 물 속에서 뭐가 있는지 찾아볼 수 있을 테고…. (하지만 어항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개조 물고기를 언제나 데리고 다니기는 힘들겠죠.)


물론 구태여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거론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개조 동물들을 묘사하는 SF 소설들이 넘치고 넘칠 겁니다. 어제 <스타타이드 라이징>을 언급한 것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외에 수많은 SF 소설들은 개조 동물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포스트 아포칼립스 작가가 탐지견을 비롯한 동물 동료나 개조 동물을 묘사한다면, '인간을 돕는 동물이라는 역할'을 더욱 강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 천 년 전에도 지금처럼 사냥개들은 사냥꾼들을 도왔습니다. 따라서 똑똑한 사냥개와 무너진 폐허는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 될 겁니다. 그 사냥개가 개조 동물이라고 해도, 적어도 사냥개라는 원시적인 속성을 풍길 수 있겠죠.



인공 지능 로봇과 개조 사냥개는 모두 첨단 과학 기술에서 비롯했으나, 로봇과 사냥개는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길 겁니다. 똑같이 대도시 폐허 속을 돌아다닌다고 해도, 탐지 무인기를 대동하는 생존자와 개조 사냥개를 대동하는 생존자는 서로 다른 느낌을 풍기겠죠. 작가가 그런 느낌에 주목한다면, 무너진 문명과 동물 동료라는 조합을 제대로 배합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런 배합은 인간과 문명과 동물이라는 관념을 색다르게 빚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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