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SF & 판타지 (1277)
SF 생태주의
[이런 튼튼하고 육중한 모습은 전사가 아니라 성직자입니다. 치유사 범주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롤플레잉 게임 에는 기본적인 네 클래스들이 있습니다. 전사, 성직자, 도적, 마법사는 기본적인 클래스들입니다. 전사는 모험가 일행을 보호하고 근접 전투를 맡습니다. 성직자는 상처들을 치료하고 언데드를 퇴치합니다. 도적은 정찰과 함정 분해와 기습 공격을 맡습니다. 마법사는 불덩어리와 번개 줄기를 날리고 적들을 지지고 볶습니다. 에는 네 클래스들 이외에 다른 많은 핵심 클래스들과 온갖 파생 클래스들이 있으나, 전사와 성직자와 도적과 마법사가 기본이기 때문에, 데모 게임 플레이가 보여주는 것처럼, 간단한 던전 탐험들은 전사와 성직자와 도적과 마법사를 이용합니다. 여기에서 성직자는 가장 방어적입니다. 전사는 장검으로..
[킴 스탠리 로빈슨의 '강연',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아마노 코즈에의 '만화'는 다른 형식들에 기반합니다.] 다른 많은 생명체들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몸이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형태를 유지해야 하고, 이것을 위해 우리는 화학적인 질서를 특정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영양분을 소모해야 합니다. 영양분을 소모하기 위해 우리는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모든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극지 이누이트 할머니부터 아마존 열대 밀림 소녀까지, 예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포스트 모더니즘과 해체 이론이 상대성과 차이를 떠든다고 해도, 여기에는 상대성과 차이가 없습니다. 예외 없이,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입니다. 우리에게는 특정한 형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를..
'동전의 양면'은 어떤 현상 속에서 대조적인 두 특징이 함께 존재한다고 가리킵니다. 어떤 두 특징이 대조적이거나 적대적이라면, 두 특징은 대립하고 멀어져야 합니다. 만약 대조적인 두 특징이 어떤 현상에 필수적으로 속해야 한다면, 이건 모순 같을 테고, 사람들은 이것을 '동전의 양면'이라고 부를 겁니다. '야누스의 얼굴' 역시 비슷한 의미입니다. 야누스에게는 대조적인 두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밖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안을 가리킵니다. 밖과 안은 대조적이나, 야누스에게는 두 얼굴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동전의 양면'과 '야누스의 얼굴'은 비슷한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두 가지가 똑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동전의 양면'은 모순적인 현상을 가리키고, '야누스의 얼굴'은 가식적인 성향을 가리킬 ..
[인간 생존자들은 외계 생명체들을 몰아냅니다. 이건 정복이고, 외계 생명체들은 '네이티브'인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텍스트를 해석할 때, 사람들은 여러 방법들을 이용합니다.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평론가들은 여러 방법들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함정이 될지 모릅니다. 특히, 여러 해석 방법들 중에서 몇몇 방법은 치명적인 오류가 될지 모릅니다. '유사성의 함정'은 유사성들을 이용해 교집합을 만듭니다. 이런 유사성들은 착각인지 모릅니다. 두 텍스트 사이에서 평론가가 어떤 유사성들을 찾는다면, 유사성들이 근본적인 공통점이 아님에도, '유사성의 함정'은 유사성들을 묶고 교집합을 만들 겁니다. '생산 조건의 함정'은 선천적인 것이 후천적인 것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
[만약 이런 환상적인 고대 바다에 프로토스테가가 없다면, 이게 '무'인가요, 아니면 '부재'인가요?] 12월 25일은 아주 특별합니다. 12월 25일이 아주 특별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에게 이건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평소에 어떤 모태 솔로들은 옆구리가 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겨울 날씨가 춥다고 해도, 이런 모태 솔로들은 주머니 속의 손난로가 그저 생체 난로에 불과하다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날짜가 12월 25일에 가까워진다면, 이런 모태 솔로들 역시 옆구리가 너무 허전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아무리 모태 솔로에게 강철 같은 심장이 있다고 해도, 연인이 옆구리를 채우지 않는다면, 모태 솔로는 눈물에 젖은 글뤼바인을 홀짝이고 12월 24일을 보내야 할 겁니다. 12월 24일에는 이런 기대..
독자가 소설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독자가 에밀리 브론테 소설을 펼치고, 하퍼 리 소설을 펼치고, 실비아 플래스 소설을 펼치고, 도리스 레싱 소설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납니다. 에밀리 브론테와 하퍼 리와 실비아 플래스와 도리스 레싱은 다양한 소설들은 썼으나, 이런 소설들에는 근본적인,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은 글자 매체입니다. 독자가 소설책을 펼치는 순간, 독자는 글자 세상을 만나고 글자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독자가 다른 작가들을 찾는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언어가 무엇이든, 소설은 글자 매체입니다. 우리처럼, 만약 외계인들이 소설들을 쓰고 읽는다면, 외계인 소설들 역시 글자 매체일 겁니다. 반면, 우리..
박문영 작가가 쓴 은 여자들만의 공동체를 이야기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자들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유구한 격언(?)처럼, 남자들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지상에는 오직 여자들만 있습니다. 남자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소설 은 어떻게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가 바뀌는지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사라졌기 때문에, 지상에 오직 여자들만 남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상적인 여자들만의 공동체를 이룩할지 모릅니다. 여자들은 21세기 아마조네스 사회를 이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페미니즘 유토피아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여자들만의 공동체에서 돌봄 노동은 가장 ..
소설 은 무인도 생존 이야기입니다. 무인도 섬에서 생존자들은 많은 것들을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다행히 만물 박사 덕분에, 생존자들은 작은 문명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작은 문명이 아주 놀랍고 안락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심지어 어떤 생존자는 무인도 문명이 스팀펑크 판타지로 발전할 거라고 꿈꿉니다. 19세기 서구 근대화는 찬란한 진보로 이어질 겁니다. 과학, 논리, 이성, 계몽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무인도 문명은 철도를 깔고, 기차를 만들고, 스팀펑크 판타지가 되고, 찬란한 진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생존자는 이런 멋진 꿈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런 꿈에는 여자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존자가 멋진 스팀펑크 판타지를 꿈꾸고, 찬란한 진보를 떠들고, 19세기 서구 근대화를 찬양한다고 해도, 이런 멋진 ..
[디즈니 공주들은 다양합니다. 다른 공주들보다 어떤 공주는 거대하고 생태적인 영역으로 나갈지 모릅니다.] 애니메이션 에서 바넬로피 본 슈위츠는 이른바 디즈니 공주들과 만납니다. 공주 대기실에는 여러 디즈니 공주들이 있고, 여기에서 바넬로피 본 슈위츠는 그들과 만납니다. 만약 가 사이버펑크가 아니었다면, 바넬로피는 다양한 인터넷 사이트들에 들어가지 못했을 테고, 바넬로피와 디즈니 공주들은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이건 가 전형적인 사이버펑크라는 뜻이 아닙니다. 솔직히 이 애니메이션은 전형적인 사이버펑크보다 메타 창작물에 가깝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은 온갖 다른 창작물들을 빌려오고, 오마쥬들과 패러디들을 늘어놓고, 이른바 제4의 벽을 깹니다. 아무리 이 애니메이션에 사이버 스페이스가 나온다고 해도, 애니메이션 ..
이름처럼, 사이언스 픽션은 (자연) 과학을 이용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 적극적으로 과학 기술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런 특징은 다른 예술 사조들과 사이언스 픽션을 크게 구분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들과 함께 전형적인 자연 과학자들을 머릿속에 떠올립니다. 하지만 사이언스 픽션에서 '사이언스'는 그저 단순한 (자연) 과학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종종 사이언스 픽션에서 '사이언스'는 과학적인 사고 방식, 과학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 과학이 만드는 오해와 착각과 불신, 과학 그 자체보다 과학이 만드는 여러 부수적인 영향들을 가리킵니다. 만약 사람들이 첨단 과학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과학은 진보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 될 겁니다. 과학은 저주, 공포, 마술이 될 겁니다. 유전자 조작 작물이 가난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