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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생태주의
소설 은 서던 리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입니다. 이야기는 전작에서 이어지고, 여전히 X 구역의 비밀을 다루죠. 전작 에서 12차 탐사대는 X 구역의 적막한 자연 환경을 떠돌았습니다. 이 소설의 장점은 기이하고 고요하고 인적이 없는 분위기와 거대하고 낯선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된 듯한 느낌일 겁니다. 그래서 주인공 생물학자는 바위투성이 해안가에서, 사람들이 없는 뒷골목에서, X 구역의 공허한 자연 속에서 뭔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을 겁니다. 복잡하고 산만하고 빽빽하고 시끄러운 현대 문명인에게 저런 해안가와 뒷골목과 자연은 꽤나 낯선 공간으로 다가오고, 은 그런 느낌을 시종일관 유지합니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무지와 무지를 이어가는 여정 또한 매력적입니다. 이 소설은 명확한..
SF 소설들은 비일상적인 요소를 다루곤 합니다. 당연히 이런 현상들에는 어떤 원인이 있을 겁니다. 만약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거나 갑자기 돌연변이 괴물들이 인류를 습격하거나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한다면, 거기에 뭔가 분명한 이유가 있겠죠. 수많은 SF 소설들은 (상상 과학이라는 이름답게) 그런 이유를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애씁니다. 왜 죽은 사람들이 살아났는지, 왜 돌연변이 괴물들이 탄생했는지, 왜 식물들이 수정으로 변하는지…. 하지만 모든 SF 소설들이 그런 해명에 충실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어떤 소설들은 논리와 합리를 최대한 강조하지만, 어떤 소설들은 중요한 부분에서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갑니다. 이런 소설들은 설정을 자세히 밝히지 않고, 그저 전문 용어 몇 가지를 나열..
[인류 문명에게 울창한 숲들은 위험하고 적대적이고 낯설고 어둡고… 신비롭습니다.] 소설 은 말 그대로 숲이 주된 무대입니다. 어딘지 신비롭고 위험하고 야생적인 태고의 숲입니다. 어찌 보면,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가인 로버트 홀드스톡이 다른 배경도 아니고 하필 숲을 고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도시 문명과 대착점에 서있는 장소니까요. 현대적인 도시와 반대되는 곳이 무성한 숲이고, 그래서 강렬한 원시성을 잉태할 수 있죠. 사실 작중에 나오는 거대한 원시림이 아니라 뒷산만 올라가봐도 숲이 얼마나 음험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늘은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온통 가려서 빛이 안 들어옵니다. 주변은 컴컴하고, 빽빽한 줄기 때문에 시야가 멀리까지 닿지 않죠. 어떤 인류학자는 인간이 본래 평원에서 살던 동물이라 ..
만약 21세기 현대인이 몇 만 년 전의 인류를 본다면, 뭐라고 생각할까요. 아마 격세지감을 느낄 겁니다. 그 시절, 인류는 육식동물들의 위협에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질병이 퍼져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죠. 식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었고, 그들은 어떻게 지진이나 해일이나 폭설을 해석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과거 인류는 사회를 조직하는 방법을 몰랐고,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현대 문명은 전혀 다릅니다. 인류는 이제 육식동물을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육식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몰렸습니다. 질병은 여전히 인류를 괴롭히지만, 그래도 인류는 천연두 같은 질병을 지구에서 추방했습니다. 인류는 자연 재해를 분석할 수 있고,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은 생산량이 넘쳐나기 때..
셜록 홈즈와 함께 드라큐라는 세상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소설 캐릭터라고 합니다. 그래서 드라큐라의 라이벌 아브라함 반 헬싱도 인기가 많죠. 반 헬싱이 드라큐라만큼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드라큐라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무조건 반 헬싱이 나와야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 헬싱은 이성과 과학으로 음습한 악의 무리를 뒤쫓는 사냥꾼이고, 이런 사냥꾼의 이미지는 후대 창작물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습니다. 가령, 휴 잭맨이 주연한 도 그런 종류입니다. 드라큐라 이야기지만, 흡혈귀보다 반 헬싱에 더 초점을 맞췄죠. 이름도 가브리엘 반 헬싱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기반으로 탄생한 도 그런 창작물입니다. '반 헬싱의 놀라운 모험'으로 부를 수 있으려나요. 은 일종의 핵 앤 슬래..
소설 는 폐선을 해체하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입니다. 폐선 해체는 상당히 위험한 작업입니다. 낡은 배가 해안에서 좌초하면, 빈민들이 거기에서 각종 부품이나 금속을 뜯고, 그걸 시장에 내다팔죠. 당연히 별별 사고가 벌어집니다. 배 안으로 들어간 '아동' 노동자들은 유독한 가스를 들이마시거나, 좁은 틈에 끼이거나, 물에 빠지거나, 부품에 머리를 두들겨 맞는 등등 각종 사고를 당합니다. 사실 폐선 해체 작업은 정상적인 노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빈민들이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는 행위에 불과하죠. 그래서 대부분 폐선 해체 작업은 이른바 제3세계에서 벌어지거나 아주 가난한 이들의 작업이 되기도 합니다. 의 주인공 아이도 그렇게 아주 가난한 계급이죠. 그런데 이 소설은 제3세계의 비극을 고발하..
[게임 예고편의 한 장면. 이런 모래벌레는 대표적인 가상 생태계 설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에서 좋아하는 설정 중 하나는 생태적 상상력이나 가상의 생태계입니다. 현실의 인류가 만날 수 없는 거대 괴수, 멸종한 동물, 개조 동물, 외계 괴물 등은 생태적 상상력의 대표입니다. 의 모래벌레, 의 신종 돌고래, 의 그 이상한 생명체가 그럴 듯한 사례입니다. 한편으로 생태적 상상력은 현재의 자연계가 어떻게 바뀔지 논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다양한 SF 작가들은 강대국의 산업 자본주의가 자연 생태계를 크게 파괴할 거라고 경고했고, 그런 경고는 비극적인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뛰어나게 예측했든 그저 우연이든 간에 암울한 생태적 상상력은 암울한 현실로 이어졌어요. 어쩌면 22세기에 가장 주목을 받는 ..
과 은 존 발리의 단편 소설 모음집입니다. 이런 단편 모음집을 보면, 그 작가의 일관된 특성이나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작가가 좋아하는 소재, 자주 사용하는 설정 등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수많은 소재에 골고루 관심을 보이지만, 어떤 작가들은 특정한 소재를 계속 변주합니다. 존 발리는 후자 같습니다. 적어도 과 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비슷한 소재들을 다양하게 변주합니다. 그런 소재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바이오펑크가 눈에 뜨이더군요. 정확히 말하면, 신체 개조라고 해야 하겠죠. 단편 소설들 속에서 신체 개조는 여러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유전자 조작 수준이 있는가 하면, 그냥 겉모습을 변장하는 수준이 있습니다. 얼굴에 플라스틱 가면을 쓰고, 이 가면이 녹고, 얼굴에 들러붙고,..
[보드 게임 의 표지 그림은 비경 탐험의 분위기를 잘 드러낸 것 같습니다.] 소설 은 우주적 공포 소설입니다. 인류 이전에 각종 외계인들이 지구에 정착했고, 인류는 그들의 피조물에 불과하고, 그들은 언젠가 인류를 날려버릴지 모릅니다. 이 무한하고 영원불멸한 우주에서 인류는 그저 한 순간의 먼지에 지나지 않아요. 이런 감수성은 하워드 러브크래프트의 여러 소설들을 관통하고, 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은 비경 탐험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남극 탐사대 소속이고, 탐사대는 극지방에서 외계인의 유골을 발굴하거나 고산 지대에서 외계 유적지를 찾습니다. 은 남극 탐사대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주인공은 외계인의 광대한 도시와 유적지를 방황합니다. 마치 처럼. 그래서 쇼거스는 "테켈리 리!"라고 외치겠죠. 사실 ..
존 발리의 은 독특한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유토피아 구성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소설 속에서 전세계는 경제적인 디스토피아에 빠집니다. 실업률이 치솟고, 불황이 사람들을 덮치고, 모두 빈곤과 비탄과 절망에 빠집니다. 공동체 운동은 이럴 때 힘을 얻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 다양한 공동체들이 번성합니다. 각 공동체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지향하고, 자신만의 이상을 추구합니다. 누군가는 신에게 매달리고, 누군가는 난교를 벌이고, 누군가는 산업 문명을 거부합니다. 소설 주인공은 그런 공동체들을 떠도는 나그네입니다. 실업과 불황은 주인공을 사회에서 쫓아냈고 주인공은 마음을 붙일 곳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돕니다. 주인공은 어떤 공동체들이 번성하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독자는 그야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