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생태주의
생태적 상상력 - 거대 괴수, 가상의 생태계, 환경 아포칼립스 본문
[게임 <배틀 포 듄> 예고편의 한 장면. 이런 모래벌레는 대표적인 가상 생태계 설정입니다.]
개인적으로 사이언스 픽션에서 좋아하는 설정 중 하나는 생태적 상상력이나 가상의 생태계입니다. 현실의 인류가 만날 수 없는 거대 괴수, 멸종한 동물, 개조 동물, 외계 괴물 등은 생태적 상상력의 대표입니다. <듄>의 모래벌레, <스타타이드 라이징>의 신종 돌고래, <라마와의 랑데부>의 그 이상한 생명체가 그럴 듯한 사례입니다. 한편으로 생태적 상상력은 현재의 자연계가 어떻게 바뀔지 논할 수 있습니다. 예전부터 다양한 SF 작가들은 강대국의 산업 자본주의가 자연 생태계를 크게 파괴할 거라고 경고했고, 그런 경고는 비극적인 현실이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뛰어나게 예측했든 그저 우연이든 간에 암울한 생태적 상상력은 암울한 현실로 이어졌어요.
어쩌면 22세기에 가장 주목을 받는 SF 설정은 기술적 특이점과 함께 생태적 상상력일지 모릅니다. 때때로 이런 생태적 상상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거대 괴수와 환경 아포칼립스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고지라> 같은 영화는 좋은 사례일 겁니다. 이 영화는 거대 괴수물인 동시에 핵 발전소를 부정하는 환경 아포칼립스가 될 수 있어요. 저는 생태적 상상력이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보기 좋더군요.
소설 <듄> 시리즈의 모래벌레를 거대 괴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흔히 거대 괴수는 일본 특수 촬영물의 괴물들을 가리킵니다. 가메라, 엘레킹, 에비라 같은 것들이 거대 괴수라고 불리죠. 하지만 이건 너무 좁은 분류인 것 같습니다. 서구 SF 창작물들도 무수한 괴수들을 이야기했거든요. 아니, 어느 문화권이든 신화와 전설과 미신을 통틀어 다들 거대 괴수를 이야기했을 겁니다. 검마 판타지의 드래곤은 가메라나 에비라 같은 존재가 아니지만, 거대 괴수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거대 괴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메라나 에비라만 아니라 <후린의 아이들> 같은 소설도 좋아할 수 있겠죠. 화룡 글라우룽 역시 거대 괴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설화에도 집채만한 호랑이나 지네가 등장합니다. 이것들 역시 거대 괴수로 불릴 수 있겠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래벌레 역시 거대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듄>이 <고지라>나 <가메라> 같은 거대 괴수물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괴수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지라>나 <가메라>만 아니라 <듄>도 좋아할 수 있겠죠. 샤이-훌루드라는 거대 괴수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듄>과 <고지라>는 모두 가상의 생태계를 다룹니다. <듄>에서 생태계 변화는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아라키스 행성의 원주민 프레멘들은 좀 더 살기 좋은 기후를 바랐고, 주인공 아트레이드 가문은 끝내 환경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 행성에는 모래벌레 이외에 다양한 동식물들이 살아가고, 다들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생존합니다. 사막 행성의 가상 생태계는 소설 배경으로 중요하게 작용하죠. <고지라> 역시 가상의 생태계를 말합니다. 특히 2014년 <고지라>에서 고지라는 원자 폭탄 때문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고지라는 고대 역사부터 존재했던 장엄한 괴수이고, 선사 시대의 최고 포식자였습니다. 하지만 원자 폭탄이나 핵 발전소 때문에 고대 생태계가 현재에 깨어났고, 그래서 고지라도 인류 문명에 끼어듭니다. 비록 영화 속에서 이런 생태계 구조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으나, 가상의 생태계 구조를 배제한다면 사건 전개와 줄거리가 아주 달라지겠죠. 만화 <고지라 어웨이크닝>을 보면, 이런 가상 생태계가 좀 더 자세히 나옵니다. 이를 고대의 방사능 생태계라고 불러도 될 겁니다. 그 당시는 방사능 수치가 굉장히 높았고, 괴수들이 전부 방사능 에너지에 환장했기 때문입니다.
[시노무라를 뒤쫓는 고지라. 만화 <고지라 어웨이크닝>은 거대 괴수 생태계를 강조합니다.]
즉, 모래벌레나 고지라는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거대 괴수들이 활약하는 배경, 가상의 생태계가 존재합니다. 거대 괴수들은 생태계 내부에서 다른 동식물이나 자연 환경과 상호 작용합니다. 하지만 가상의 생태계는 그저 거대 괴수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괴수물 이외에 수많은 SF 창작물들이 이런 가상의 생태계를 논합니다. 예를 들어, <라마와의 랑데부>는 우주 탐사물이지만, 한편으로 초거대 우주선 내부의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유기물 수프에서 생명체(?)가 나타나고, 그 생명체들은 다른 생명체 및 인간과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에서 주인공 우주선은 어떤 해양 행성에 불시착하고, 승무원들은 외계 행성의 바닷속을 탐험합니다. 원주민도 있고, 기괴한 식물들도 있고, 사람을 잡아먹는 포식자도 있습니다. <별을 쫓는 사람들> 역시 전형적인 우주 탐사물입니다. 주인공 가족은 우주선을 타고 여러 행성들을 둘러봅니다. 그런 행성들의 자연 환경은 각각 다릅니다. 승무원들은 먹을 수 있는 물고기를 낚거나 유령 같은 생명체를 채집하거나 살아 움직이는 불길을 피해 달아납니다.
가상의 생태계를 외계 행성에서만 찾을 이유는 없을 겁니다. <물에 잠긴 세계>는 저런 외계 행성이나 외계 우주선을 말하지 않으나, 비일상적인 생태계를 보여줍니다. 온 세상이 물에 잠겼기 때문에 영국 런던은 열대 지역이 되었습니다. 열대림이 사방에 만연하고, 바다 악어들과 바다 이구아나들이 바닷속을 헤엄칩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런 자연 환경에 도취하고, 마침내 원시적인 공룡 시대를 연상합니다. 미래의 영국 런던이 원시적인 공룡 시대를 연상하게 하죠. 정말 장대하고 아련한 가상 생태계가 아닐 수 없어요.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직접 자연 생태계를 조작할 수 있어요. 때때로 사람들은 인공적인 생명체를 만들고, 그래서 생태계 문제가 불거집니다.
소설 <쥬라기 공원>은 가상 사파리를 이야기합니다. 쥬라기 공원은 어디까지나 동물원에 지나지 않고, 공원 경영진은 이게 진짜 생태계와 단절되었다고 착각했죠. 하지만 폭풍이 사파리를 덮쳤고, 각종 공룡들이 풀려납니다. 인공적인 공룡들은 천연의 자연 생태계와 뒤섞이고, 새로운 생태계를 이루죠. 그게 생물적 재난으로 이어질 뻔하고요. 이처럼 가상 생태계를 이야기하는 소설들은 종종 자연 환경 보존과 맞닿습니다. <듄>처럼 엄청난 환경 변화를 묘사하면서 환경 보존을 무심하게 생각하는 책도 있으나, 한편으로 <생각보다 너무 싱싱해>처럼 가상 생태계를 이용해 자연 생태계 파괴를 외치는 책들도 있습니다.
자연 환경 보존을 말하고 싶다면, 생태적 상상력이 필수적입니다. 설사 가상의 생태계를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태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가상의 생태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꽤나 현실적이고, 외계의 거대 괴수나 돌연변이 식인 식물 따위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태양열 발전기가 널리 퍼지면 어떻게 자연 생태계의 모습이 변할지 상상합니다. 그 자연 생태계의 모습은 전혀 이질적이거나 이국적이지 않으나,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분명히 생태적 상상력을 담았다고 볼 수 있겠죠. 흠, 하지만 누군가는 이게 어딜 봐서 SF 소설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듀나가 <그래비티>를 SF 영화가 아니라고 평가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에코토피아 비긴스>가 SF 소설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어요. 이 소설의 설정이 별로 생태적 상상력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죠.
만약 <에코토피아 비긴스>가 너무 현실적으로 보인다면, <와인드업 걸>이나 <인간 종말 리포트>, <붉은 화성>, <씽커> 등은 어떨까요. 이런 소설들은 정말 사이언스 픽션다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연 환경 보존과 생태적 상상력을 결합시킨 사례들일 겁니다. <와인드업 걸>이나 <인간 종말 리포트>에는 기괴한 생명체들도 등장하고, 이런 생명체들은 거대 괴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와인드업 걸>의 그 거대 개조 코끼리는 괴수물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을 겁니다. 사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정말 괴수물 같습니다.
[킴 스탠리 로빈슨은 자연 환경과 평등한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SF 작가죠.]
이처럼 생태적 상상력의 울타리 안에서 거대 괴수와 가상의 생태계와 환경 아포칼립스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작품을 한층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듄>은 거대 괴수물이 될 수 있고, 한편으로 가상의 생태계를 이야기합니다. <듄>은 환경 보존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듄>을 이용해 자연 생태계 보존이나 생물 다양성을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그런 시도나 해석이 완전히 엉터리라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고지라>는 거대 괴수물이지만, 온갖 괴수들이 서로 어울리는 가상의 생태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냥 고지라 하나만 달랑 나오지 않습니다.
게다가 <고지라>는 핵 발전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에코토피아 비긴스> 같은 소설과 함께 언급될 수 있습니다. <에코토피아 비긴스>는 자연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태양열 발전기에 주력하고, <고지라>는 핵 발전소가 괴수만큼 위험하다고 주장하죠. 뭐, <고지라>는 그저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에 불과하고 주제도 뻔하고 뻔하지만, 어쨌든 그런 뻔한 주제도 좌파적인 환경 보호론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리고 <와인드업 걸>이나 <인간 종말 리포트>는 자본주의 착취와 환경 오염을 경고하지만, 개조 코끼리나 개조 사자 등은 괴수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차이나 미에빌처럼 만약 마가렛 앳우드가 이런 쪽에 관심이 좀 있었다면, 개조 사자를 이용해 화려한 액션 장면을 썼을 수 있겠죠.
똑같은 괴수물이라고 해도 <고지라>와 달리 <퍼시픽 림> 같은 영화는 생태적 상상력과 좀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퍼시픽 림>은 괴수들의 상호작용이나 먹이 그물, 자연 환경의 영향 등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괴수가 아니라 거대 로봇이고, 괴수는 그저 샌드백에 지나지 않죠. <퍼시픽 림>은 괴수가 지구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짝 언급하지만, 거기에 본격적으로 돋보기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괴수는 병기일 뿐이고, 괴수의 역할은 거대 로봇의 샌드백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퍼시픽 림>에는 거대 괴수가 나오지 않아도 줄거리 전개에 하등 무리가 없었을 겁니다. 바닷속에서 거대 괴수가 아니라 그저 외계 로봇이 나와도 얼마든지 인류의 로봇과 쌈박질을 벌일 수 있었겠죠.
물론 영화 속의 괴수 디자인은 정말 훌륭하고, <퍼시픽 림>은 로망이 넘치는 작품입니다. (나이프헤드의 그 멋진 모습은 정말, 크~.) 영화의 작품성이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대 괴수가 나온다고 해도 <퍼시픽 림>의 설정은 생태적 상상력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입니다. 괴수의 기생충이나 괴수의 시체가 사소한 설정에 머물렀기 때문에 많이 아쉬웠습니다. 괴수의 기생충이 생물 다양성을 감소시킬 수 있잖아요. 뭐, 감독은 저런 환경 오염보다 그저 로봇과 괴수의 쌈박질을 강조하고 싶었겠죠.
이처럼 거대 괴수가 나온다고 해도 그 작품이 반드시 생태적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없을 겁니다. <크툴루의 부름>은 거대 괴수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크툴루라는 기괴하고 장대한 거대 생명체(?)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생태적 상상력과 별로 연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다양한 괴물들을 창조했으나, 그 괴물들을 생태계의 구성원이 아니라 만신전의 구성원으로 취급했습니다. 종종 저는 고지라와 크툴루가 싸우는 팬 아트를 구경하곤 합니다.
하지만 고지라와 크툴루는 전혀 다른 주제를 드러냅니다. 고지라는 분명히 생태적 상상력을 내포하지만, 크툴루는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뿜는 존재입니다. 다곤이나 슈그-니브라스, 보쿠르그 역시 생태적 상상력과 거리가 멀고요. 음, 검마 판타지 역시 온갖 괴물들을 선보이지만, 생태적 상상력에 그리 개의치 않는 듯합니다. <실마릴리온> 같은 작품은 드래곤부터 어마어마한 늑대까지 다양한 괴물들을 이야기하지만, 그런 괴물들은 생태계의 상호작용과 별로 연관이 없어요. 솔직히 <실마릴리온>을 포함해 검마 판타지 자체가 생태계를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검마 판타지 소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일 수 있죠.
[생태적인 상상력은 환경 오염과 생태 철학과 평등한 공동체 건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생태적 상상력이 언제나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생명체이고, 다른 생명체들과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외계 항성들과 행성들을 압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 자체로 딱히 감흥을 주지 않습니다. 천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 자체에 환호하겠으나, 생명이 없는 행성은 좀 시시(?)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외계 행성이 생명을 품었다면, 그게 비록 미생물에 불과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흥분할 겁니다. 우리 인류가 생명체이기 때문에. 인류는 자연 생태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래서 생태적 상상력이 그토록 흥미로울 겁니다. <고지라>와 <별을 쫓는 사람들>과 <인간 종말 리포트>는 장르와 주제와 분위기가 서로 완전히 다르지만, 모두 그런 생태적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어요.